“Absolutely No!(절대 안 됩니다!)” 

전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회장 빌 게이츠의 아이들은 마음껏 컴퓨터 게임을 즐길 수 있을까?
"Absolutely No!" 빌게이츠의 단호한 대답이었다. 2007년 2월 20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회의에서 빌 게이츠는 자신의 집안을 실례로 들며, 아이들의 컴퓨터 사용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빌 게이츠의 맏딸인 제니퍼는 한 때, 컴퓨터를 모르는 컴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자기 아버지가 개발한 컴퓨터에 푹 빠진 아이들과 친해진 후 사정은 달라졌다. 제니퍼는 친구들에게 ‘비바 피냐타(viva pinata)’라는 게임을 배워와서는 밥도 안 먹고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그 게임에 빠져든 것이다.  

                                         <로마에서 즐거운 가족 여행을 보내고 있는 빌 게이츠와 그의 가족들> 

제니퍼는 생전 처음 접한 이 게임에 흠뻑 매료되었다.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는 어쩔 수 없이 맏딸 제니퍼에서 하루 45분이라는 시간제한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이용시간을 1시간으로 늘려줬다. 게임과 인터넷에 몰두하는 자녀에 대해 빌 게이츠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적정한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인터넷에서 어떤 곳을 방문하고, 무얼 보는지 부모가 살펴보고 관리해야 한다”
이렇듯 천하의 빌 게이츠도 아이들의 컴퓨터 사용시간을 제한하고 감시했다.

2008년 문화관광부 산하 게임산업진흥원에서 펴낸 게임백서(
http://www.gitiss.org/)에 따르면 집에서 컴퓨터 게임 이용 시 제약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조사에서 응답자의 50.4%가 부모로부터 아무런 제약을 받고 있지 않다고 했다. 즉, 많은 부모가 아이들이 게임을 몇 시간을 하더라도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이 게임에 심하게 몰입한다면 시간을 제한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사실 이 외에는 별다른 답이 없다.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이들도 시간제한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도 한번 게임을 시작하면 시간이 엄청 빨리 흐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가 시간제한을 두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아이들은 크게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단지 한참 재미있을 때, 게임을 그만둬야 하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모든 아이들은 게임을 하는 것에 죄책감이 있다. 게임을 하면서도 왠지 부모에게 미안하고 본인이 뭔가 잘못된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이런 죄책감을 아이들이 많이 느낀다면 행동이 위축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증세가 올 수도 있다. 그것은 부모가 그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길수록 더욱 심해진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면 더 이상 게임에는 유희의 의미가 없다. 언제 부모가 올지 모르는 조급함은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주어 부작용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이제 부모들이 정확한 시간을 지정해두되 허락된 시간만큼은 당당하게 게임을 즐기게 해줘야 한다. 빌게이츠도 그렇게 했다. 다시 말해, 시간을 정해주고 게임을 허락한다면 “네가 게임을 즐기는 것이 절대로 옳은 행위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으니 1시간 동안만 해라”라는 태도를 보이면 안되다. 게임 자체가 나쁘다는 편견을 심어주는 것보다, 약속된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잘못이라는 점을 아이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눈치 보지 않는다.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만약 어떤 날은 부모가 피곤해서 6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도 모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약속한 2시간을 지켜야 한다고 컴퓨터를 끄며 제지를 가한다면 아이들은 운이 좋은 날은 더 할 수 있고 운이 나쁘면 2시간 정도만 하게 된다고 믿고 만다. 

즉, 아이들이 약속을 지키는 것만큼 부모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항상 정확한 시간을 체크해주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이는 비단 게임뿐 아니라 육아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일관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게임을 알아야 아이와 통한다

차영훈

뮤진트리 2009.04.17

조애리 기자 (joaeri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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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은 실존인물이었다? 영국 역사상 최고의 첩보원 다스코 포포프의 삶
어딜가나 미녀가 따르는 최고의 첩보원... 진주만 침공 예견

한때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007 제임스 본드.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원작은 소설이다. 저자 이안 플레밍은 영국 첩보부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으며, 덕택에 제임스 본드의 모델이 이안 플레밍 자신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소설 속 제임스 본드가 워낙 팔방미인 '엄친아'인 탓에, 그런 소문을 믿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소설 속 007만큼이나 영화같은 인생을 산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소설 007시리즈가 발표되기 십여년 전인 1940년대 영국의 첩보원으로 활약했던 다스코 포포프(Dušan Duško Popov, 1912~1981)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의 스파이 활동은 영화 속 007과 비교했을 때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

1912년, 세르비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다스코 포포프는 선천적으로 플레이보이의 기질을 갖고 있었다. 염문설이 끊이지 않았고 어느 곳에 가든지 미녀와 사귀었다. 천부적인 첩보원으로서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언어의 천재였던 그는 빠르게 스파이들의 핵심이 되었다.
 


다스코 포포프, 1912~1981

처음으로 스파이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1940년 2월, 친구인 존 니의 전보를 받으면서부터이다. 존은 포포프가 1936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재학시절에 알게 된 친구로, 전보 내용은 2월 8일 세르비아 호텔 앞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포포프는 모르고 있었지만 당시 존 니는 나치 간첩으로 고용되어 있었다. 그 만남은 포포프를 이용해 영국 내에서의 교류를 넓히고 정보를 수집하여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영국 문서보관소가 새롭게 공개한 기밀문서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940년, 히틀러의 정책에 반감을 지녔던 포포프는 독일군에게 이용되기 싫어 주도적으로 베오그라드 주재 영국 상무관을 찾아가 영국에 정보를 제공하고 독일의 정보망을 흔들 수 있기를 바랬다. 며칠 뒤, 런던은 이 계획을 승인했다. 포포프는 자신이 계획한 '이중 플레이'에 의해 독일 간첩조직에 진입하여 이중간첩 생활을 시작했다.

기밀문서에는 또 포포프가 보이지 않는 잉크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그의 관련 문서에는 날짜가 적힌 문서와 보이지 않는 잉크로 적은 엽서, '이미 열어 봄' 또는 '검사'라고 찍힌 우편물, 여자친구에게 보낸 편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비밀정보. 이 손수권에 화학약품을 묻히면 글씨들이 나타난다. ⓒ예문

1941년 7월, 포포프는 미국에 파견되어 첩보조직 내에서 활동했다. 그의 독일인 상사가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를 좌시할 수 없다"라고 말했을 때 포포프는 이미 진주만을 기습하려는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영국 정보국의 동의를 얻은 포포프는 미국 주재 유고슬라비아 신문 특파원의 신분으로 뉴욕으로 건너 가 독일 정보기관이 지시한 임무를 완수한 뒤 미연방조사국에 '일본이 미국을 침공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영국 정보국과 연락을 취한 미 연방조사국 국장 애드가 후버는 포포프를 소환했다.

영국 정보국이 이미 포포프의 신분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연방조사국은 이를 의심했으며, 국장은 포포프가 풍류를 즐기며 프랑스 영화배우와 종일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포포프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후버는 결국 그를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사기꾼 같은 간첩이다. 당신이 여기 온 이후 나치주의자라는 한 놈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경찰 조직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6주 동안 호화로운 호텔에 머물면서 영화배우들이나 쫓아다녀 우리 법률을 심각하게 파괴했다. 심지어 내 부하를 세뇌하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러자 포포프는 후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미국에 온 것은 당신들이 전쟁에 대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나는 각종 방식으로 당신들에게 엄중 경고했다. 확실하게 말하겠는데 장소와 시간, 방식은 모르지만 미국은 틀림없이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5개월 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이런 만남에 매우 실망한 포포프는 착잡한 기분으로 미국을 떠났다.

1942년 11월, 포포프는 다시 영국에 나타났다. 연합군은 독일에 허위 경보를 보내고 독일에 대해 연속적으로 '스타지 행동'과 '마키아벨리 계획'을 실시하여 독일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스타지 행동'을 통해 영국은 독일 정보기관에 허위 정보를 제공하여 영국이 칼레 항 일대에서 대규모 상률 작전을 준비중이라고 알렸다. 그래서 독일 폭격기들을 영국 황실공군 기지로 유인하여 사정권으로 끌어들였다.

'마키아벨리 계획'에서 포포프는 위조 문서와 서신을 영국 장교의 시체와 함께 파도에 실려 보내 스페인 해안에 닿게 했다. 그 문서들 속에는 그리스 침공에 대한 기밀서류가 있었고, 독일군은 그 시체 속에서 '의외'의 정보를 얻게 되었다. 아울러 포포프는 독일인들에게 건네는 보고서 속에 많은 영국인과 미국인이 스코틀랜드에서 진행되는 낙하산부대 훈련에 참여했고, 영국에서 최근 일어난 비행기 실종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등의 소식을 전했다. 베를린 당국은 즉시 사틴 섬에 부대를 증강하고 잠수함을 크레타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그 결과 시칠리의 방어력이 약화되어 패튼 장군이 쉽게 진격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44년 5월 초순, 정보가 넘쳐나자 이중간첩의 업무도 늘어났다. 그들은 정보를 진지하게 조작하고 연구하여 연합군의 전략 계획에 발을 맞추고 적들에게는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정보를 물샐틈없이 정확하게 조작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과연 약간의 착오가 독일 정보기관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1944년 5월 중순의 어느 깊은 밤, 영국 정보국의 한 인물이 포포프에게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적에게 발각되기 전에 헝가리 리스본으로 가 다른 대원들을 피신시킨 뒤 벨기에로 도망치라는 내용이었다.

포포프는 곧 리스본으로 가 조직원들의 피신을 도우려 했다. 그러나 때가 이미 늦어 활동 중이던 첩보원들은 나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하기 하루 전에 그는 연합군을 도와 노르망디가 아닌 다른 지역에 상륙할 것처럼 독일군을 속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포포프는 2차대전 기간 동안 수많은 첩보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첩보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신비로운 사람들로서 못 들어가는 곳이 없으며, 없는 곳이 없다. 승리해도 자랑할 수 없으며, 실패해도 변명할 수 없다. 나의 무기는 거짓과 기만이다. 나 자신도 살인처럼 정상적인 사회 규칙을 위배하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임무라는 생각에 불안감을 갖지 않는다."


다스코 포포프의 만년의 모습. ⓒ예문

영국은 전쟁이 끝나고 2년 뒤인 1947년에 포포프의 공적을 인정하여 그에게 OBE(Order of The British Empire,영국 제국 훈장)를 수여했다.

포포프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내가 위험한 삶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진지한 태도로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주)예문과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발칙한 군사학

장지리|야오샤오화 | 송철규 옮김

예문 2009.12.31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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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으스스한 유적지, 카타콤의 유래와 역사


사람 뼈로 만들어진 제단, 벽에 난 구멍마다 시체가 들어찬 어두운 통로……. 공포 영화의 배경 묘사가 아니다. 지금도 로마 근교를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볼 수 있으며, 기독교의 성지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고대의 지하무덤, 카타콤의 모습이다.

카타콤은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이 교우를 묻기 위해 만든 지하무덤이었다. 2~4세기 로마제국에는 사람이 죽을 경우 화장하거나 성벽 안에 묻어야 한다는 법률이 있었다. 이 법령은 모든 로마 시민들에게 엄격하게 적용됐는데, 기독교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한 교우는 땅에 묻어야 부활과 영생을 누린다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이었다. 자신들의 신앙을 보호하면서도 로마제국의 법령을 어기지 않기 위해 부유한 기독교도들은 성 밖 도로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 이런 무덤을 카타콤(Catacomb)이라고 불렀다. 최초의 기독교도 무덤은 이처럼 도로 양편의 공터에 세워졌다.

초기의 카타콤은 2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비교적 소박한 동굴 형태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동굴에 묻히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자 곧 거대한 지하묘지가 형성됐다. 로마의 지하묘지 대부분은 4층으로 되어 있고 좁은 통로와 계단이 체계적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졌다. 망자의 사체는 동굴의 벽에 구멍을 뚫고 안치했다.

원래 이 지하묘지는 '파수리'라고 불리던 전문가들이 지은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십분 발휘해 로마 지하에 거대한 지하세계를 건설했다. 지하묘지의 통로는 여러 층으로 나뉘어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었는데, 각 층은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돼 있었다. 그들은 이런 작업 이외에도 바위를 정교하게 다듬어 이 지하묘지가 인공이 아닌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동굴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솜씨를 발휘했다.

도굴을 막고 사체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초기 작업자들은 복도를 좁게 그리고 미로처럼 만들어 구조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여간해서는 출구를 찾거나 되돌아갈 수 없도록 했다. 이는 망자의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지하묘지는 어둡고 습하기 때문에 공기 중에는 악취가 만연했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지하묘지에 들어선 사람들은 누구나 이 절대적인 어둠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카타콤의 갱도 ⓒ예문 

그런데 3세기 무렵, 이처럼 음습한 지하묘지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로 인해 자유롭게 집회를 가질 수 없게 되자 기독교도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로마의 성 밖에서 은밀히 모였다. 이때 가장 안전한 장소가 바로 지하무덤 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자 발렐리아누스 황제는 지하공동묘지를 색출했고, 묘지 출입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가장 많은 기독교도들이 카타콤으로 숨어든 것은 '피의 시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였다. 이 시기 기독교도들은 종교가 드러나는 즉시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주민 전체가 기독교도로 들어난 마을은 그대로 불태워졌다. 발각된 기독교도들은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검투대회에서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기도 했다. 이러한 박해를 피해 수많은 기독교도들이 음습한 묘지 속으로 숨어들었다. 카타콤의 갱도는 미로와 같이 복잡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추격하는 로마 병사들을 따돌리는 데 적합했다. 미로 속을 헤매다 시체로 발견되는 병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길을 잃는 여행객들이 왕왕 발생하기 때문에 로마 당국은 카타콤은 일부만 개방하고 있다.) 이처럼 지하묘지로 피신한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기도하며 구원을 얻었다. 죽은 자를 묻기 위해 만들어진 카타콤이 기독교도들의 목숨을 살리는 안식처가 된 것이었다.
 


카타콤의 내부. 곳곳에 새겨진 그리스어가 보인다. ⓒ예문

카타콤은 로마뿐 아니라 이탈리아 다른 도시들에도 존재했다. 이러한 지하묘지는 훗날 프랑스에도 지어졌는데, 그 면적이 거의 파리 시내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하다. 18세기에 도시가 급성장하며 묘지가 부족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리시는 신원미상의 묘지를 폐기하고 유골들을 지하터널에 납골했다. 그 결과 300km에 달하는 지하터널 벽에 인골이 빼곡히 박히게 되었다. 로마의 카타콤과 유래나 의미는 다르지만, 유럽에서 로마 카타콤을 모티브로 하는 지하묘지가 계속해 지어졌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오늘날 카타콤은 기독교 순례자들이 반드시 찾아가는 성지가 되었다. 박해와 순교, 무수한 죽음과 공포를 이겨낸 신앙의 힘이 깃든 곳, 카타콤은 가장 성스러운 동시에 가장 으스스한 유적지 중 하나이다.


<이 기사는 (주)예문과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발칙한 고고학

후즈펑 | 송철규 옮김

예문 2009.12.05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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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타우로스는 실존했다? 식인황소에 바쳐진 인간제물의 진실

크레타의 왕이 아테네의 소년 소녀들을 데려다 식인황소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쳤다는 신화를 들어보았는가? 그런데 이러한 신화 속 이러한 이야기가 완전히 상상의 산물만은 아님이 밝혀졌다. 크레타 왕국의 유적에서 살해당한 청소년들의 유해가 발견된 것이다.

지중해로 둘러싸인 발칸 반도 남부에는 아름다운 나라 그리스가 자리 잡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인류 문명의 발원지 중 하나로 손꼽히며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리스 신화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그런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크레타(Creta)섬의 미궁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 신화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드물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크레타 섬에는 미궁이 있었다고 한다. 미궁은 크레타의 왕 미노스(Minos)가 만든 것으로 황소에게 사람을 바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미노타우로스라 불리는 반인반수의 식인황소였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제우스 신이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와 결혼해 낳은 아들이었다. 그는 강력한 힘을 지닌 국왕으로 도시국가연합을 세우고 법전을 제정했다. 점점 자신의 권력에 도취한 미노스는 어느 날 제사에 쓸 황소를 보고, 신에게 바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 나머지 좋지 않은 다른 황소를 보고, 신에게 바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 나머지 좋지 않은 다른 황소와 그 황소를 바꿔치기했다. 이에 화가 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그의 자식들 가운데 소머리를 가진 괴물이 태어날 것이라 예언한다.

후에 이 예언은 현실이 됐다. 왕비 파시파에가 미노스가 바꿔치기한 황소에게 그만 반해버린 것이다. 황소를 사랑하게 된 왕비는 고민 끝에 암소의 몸통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황소와 사통했다. 그 결과 머리는 황소고 몸은 사람인 괴물이 태어났으니, 크레타인들은 이 괴물을 '미노타우로스'라 불렀다. 다 자란 미노타우로스는 도끼를 휘두르며 사람을 잡아먹고 궁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왕비가 낳은 엄연한 왕자를 죽일 수는 없는 일. 왕은 천재 건축가 다이달로스에게 부탁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무수히 많은 통로와 방이 있어 한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들어진 미궁의 중앙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두기 위해서였다.
한편 미노스 왕은 또 다른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했다가 사망하자, 아들의 복수를 위해 아테네에 군대를 파견했다. 결국 아테네인들은 항복했고, 9년에 한 번씩 7명의 소년과 7명의 소녀들을 미노타우르스에게 바치게 됐다. 껌껌한 미로 속을 헤매던 아테네의 아이들이 미노타우로스와 마주칠 때면, 미궁에는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미궁의 비극이 끝난 것은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 덕분이었다. 자진하여 희생제물이 되기로 한 왕자가 크노소스 궁전에 도착하자, 그를 본 공주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그를 본 공주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어떻게 해서든지 테세우스를 구하고 싶었던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마술 검과 실뭉치를 주면서 실을 입구에 매어놓고 가닥을 풀면서 들어가라고 일렀다. 왕자는 미노타우로스를 찾아 미궁 속으로 들어갔고 한 차례의 격투 끝에 마술 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찔러 죽였다. 왕자는 다시 실을 좇아 미궁을 빠져나왔고 공주와 함께 아테네로 돌아갔다. 


크레타 섬 유적에서 발견된 황소 경기 장면. 크레타 섬에서 황소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동물이었다. ⓒ예문

신화 속의 왕 미노스는 과연 실재하는 인물일까, 아니면 신화 속의 가상 인물일 뿐일까.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Thukydides)의 저서에도 미노스 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의문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미노스 왕조가 있었다는 크레타 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문은 19세기 말, 영국학자 아서 에반스(Arthur Evans)에 의해 비로소 풀렸다. 그는 1893년 아테네에서 삼각형 또는 사각형 형태의 문자와 부호가 새겨져 있는 돌을 발견했다. 이 돌이 크레타 섬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된 그는, 이듬해 크레타 섬으로 가 폐허에서 대량의 상형문자 파편들을 수집했고 이후 25년에 걸쳐 크노소스 궁전의 유적지를 발굴했다.

에반스가 발굴한 궁전은 현재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온(Iraklion)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다. 궁전에는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1,500여개의 궁실이 분포돼 있는데, 높은 지역에 잇는 서쪽 건물은 대다수가 2층집이고 낮은 지역에 위치한 동쪽 건물들은 4층집이 주류를 이룬다. 각 궁실들은 복도, 계단, 대청 등으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어 미로에 빠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이 궁전은 명실상부한 미궁임에 틀림없다. 왕실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힘든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크노소스 궁전의 일부. 전설 속의 미궁은 크노소스 궁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예문 

결국 신화 속의 미궁은 크노소스 궁전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노타우로스의 존재와, 아테네의 소년 소녀들이 그의 먹이로 바쳐졌다는 이야기 역시 사실인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궁의 존재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후세에 덧붙여진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리라 믿었다. 그러나 곧 '아테네 아이들이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졌다'는 대목이 신화 속 허구만은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다.
크레타 왕국의 문화가 제일 찬란했던 기원전 2300~1500년경은 바로 미노스 왕조의 시기였다. 미노스 왕의 강인함과 현명함, 통치력에 힘입어 나라는 번성기를 맞이했다. 에게 해의 여러 섬들은 미노스 왕조의 신하를 자청했으며, 아테네도 공물을 바쳐야 했다. 당시에 미노스 왕조가 고도의 문명을 꽃피웠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크노소스 궁전의 내부. 지금 보아도 화려하고 세련된 무늬의 벽장식과 벽화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예문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원전 1500년경, 크레타 섬의 모든 도시들이 동시에 파괴됐다는 점이다. 크노소스 궁전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밀이 드러난 것은 1967년, 고고학자 스피리돈 마리나토스에 의해서였다. 크레타 섬에서 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는 화산으로 이루어진 산토리니(Santorini) 섬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해발 566m에 불과한 이 화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기원전 1500년경 산토리니 화산이 폭발하며 섬 자체가 순식간에 두꺼운 화산재 속에 매몰됐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화산분출이 얼마나 맹렬했던지 이집트 상공에도 3일간 연속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됐다고 한다. 곧이어 화산분출로 인해 발생한 높이 50m의 해일이 크레타 섬을 강타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스피리돈 마리나토스는 크노소스에 닥친 재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갑작스런 굉음에 놀란 크노소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이어서 돌과 흙이 뒤범벅된 화산재가 엄습했다. 불똥과 시커먼 연기를 동반한 화산재는 순식간에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화산과 지진으로 인한 해일이 해안을 덮쳐 육지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다."

순식간에 화산재로 뒤덮인 덕분에 크노소스 궁전과 그 일대는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화려하게 채색된 벽화와 도자기, 생활물품들이 다량 발굴됐으며 문자가 기록된 진흙판도 수만 장이나 출토됐다. 그런데 그 진흙판 가운데서 뜻밖의 문구가 발견됐다. '아테네에서 여자 7명, 남녀 어린이 각 7명씩을 공물로 바쳤다', 이는 미노타우로스의 신화에서 전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곧이어 발굴된 섬의 지하에서는 200여 구의 인골이 발굴됐는데, 이중 상당수가 10~15세 남녀 청소년의 것으로 밝혀졌다. 유골의 뼈에는 칼에 긁힌 흔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후 버려진 것이다.
한편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어느 신전에는 사제와 그의 조수 여러 명이 제사를 진행하던 도중 화산폭발을 맞이한 듯 쓰러져 있었다. 신전에는 제사용 도자기 그릇과 제단이 남아있었는데, 제단에 누워있는 제물을 본 고고학자들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165cm 정도 키의 젊은 남성이었던 것이다. 제단 주변에서는 제물의 피를 받기 위한 그릇과 날카로운 청동칼도 발견됐다. 제물이 된 대상은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아테네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크레타 왕국에서는 실제로 인신공양이 이루어졌다. 아테네인들은 바다 건너 섬에서 행해진다는 무시무시한 제의에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들은 크레타 왕국에 공물로 사람을 바치고 있었다. 여기에 미노스 왕조의 강력한 왕권과 크레타 왕국의 황소숭배 풍습이 어우러져 식인 황소와 같은 신화적 존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아테네 인들의 상상력은 크레타의 횡포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줄 영웅 테세우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신화와는 달리 오늘날 유적은 인간제물의 비극이 크노소스 왕국이 멸망할 때에야 비로소 끝났음을 보여준다.


<이 기사는 (주)예문과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발칙한 고고학

후즈펑 | 송철규 옮김

예문 2009.12.05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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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모헨조다로는 기원전 1500년경 사라진 인더스 문명의 도시이다. 그런데 이 유적지에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과 비슷한 수준의 방사능 함량을 가진 물질이 발견됐다면? 더욱이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서사시에 묘사된 고대의 전쟁에 흡사 핵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가 들어있다면…?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다.

파키스탄 신드(Sind) 지방 남쪽에는 반원형의 폐허가 있다. 이곳은 낮에는 강한 모래바람 때문에 눈조차 뜨기 어려우며, 밤이면 추위가 엄습하는 사막이다. 오랫동안 현지인들에게 '죽은 자의 언덕'으로 불렀던 이 폐허에서, 1922년 우연히 동물의 모습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자가 새겨진 몇 개의 석각 인장이 발견됐다. 그 후 60여 년 동안의 고고학 조사와 발굴을 통해 이곳이 기원전 2600년경 건설된 고대도시의 유적지, 모헨조다로(Mohenjo-Daro)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은 폐허가 된 모헨조다로 유적지 ⓒ예문

모헨조다로는 청동기시대 인더스 강 유역에 세워진 웅장한 도시였다. 독특한 점은 성벽과 공공건물, 일부 도로와 상하수도를 모두 불에 구운 벽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시규모로 볼 때 당시 인구는 약 40,000여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의 도로는 대부분 동서와 남북으로 열을 맞추어 곧게 뻗어 있으며 서로 교차한다. 수천 채의 집들은 바둑판처럼 정렬돼 있었다. 모든 집은 6~10개의 방과 정원으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 우물과 깨끗한 욕실을 갖추고 있었고, 잘 정돈된 배수구로 폐수를 내보냈다. 또한 외벽 안쪽에는 쓰레기 전용 배출구가 있어서 주민들은 이 통로를 통해 쓰레기를 바깥쪽 도랑으로 버렸다. 그 도랑은 다시 하수도 체계와 연결됐다. 이처럼 정돈된 오물 및 오수 처리체계는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도시는 문명발전의 중요한 지표이다. 일부 학자는 모헨조다로처럼 발달된 도시계획은 1,000여 년 뒤 고대 로마시대에서나 볼 법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모헨조다로가 한창 번성했을 무렵은 대다수 인류가 동굴에서 살거나 나무와 진흙으로 엮은 엉성한 집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모헨조다로에서 출토된 청동 인물조각상. 모헨조다로에서 발굴된 세련된 예술품들은 고대 인도인들이 우월한 문명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문

그러나 기원전 1500년 무렵 어느 날, 모헨조다로는 갑자기 모래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는 이곳 주민들이 짧은 시간 내에 도시를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모헨조다로 주민들이 도시를 버리고 이주했다면, 어째서 다른 곳에서는 비슷한 도시문명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이런 수수께끼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옛날 모헨조다로 지역은 넓은 인더스 강의 영향으로 초목이 무성하고 관개시설을 통해 드넓은 옥토가 있어 찬란한 인류문명을 꽃피웠던 곳이라고 한다. 후에 지나친 방목과 개간으로 생태균형이 파괴되면서 땅이 척박해졌고, 뜨거운 태양 아래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고 강한 바람이 잦아지면서 끝내 사막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만으로는 수만 명에 이르던 주민들의 실종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혹시 대지진 같은 재해가 도시를 파괴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어디에서도 지진 등 재앙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전염병이 주민들을 내몰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주민들은 왜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 같은 수준의 도시를 재건하지 않았을까? 이외에 다른 민족의 침략설을 제기한 사람도 있으나, 모헨조다로 같은 문명이 인근의 원시 야만족에게 정복당했으리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모헨조다로가 인도어로 '죽은 자의 언덕'을 뜻한다는 것이다. 혹시 이 이름 이면에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일련의 유골들은 이런 의문에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 길가의 유골들은 재난이 미처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발생한 듯 누워있었는데, 이 유골들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희생자들과 비슷한 정도의 방사선 함량이 검출됐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은 폐허에서 마치 원자탄이 터진 마냐 지상에 남아있는 충격파와 핵 복사열의 흔적을 찾아냈다. 유적에서 발견된 대량의 점토와 광물 파편을 분석해본 결과 섭씨 1,400~1,500도에서 용해된 것임이 밝혀졌다. 이런 온도는 당시의 제련기술로는 이를수 없는 수치였다.

모헨조다로 거리 곳곳에서 발견된 검은 유리덩어리들은 이러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유리처럼 결정화된 돌 파편들을 분석한 결과, 짧은 시간 내에 섭씨 1,500도 이상의 높을 열을 받았다 급속하게 식는 과정에서 고체화된 돌이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이 암석들은 핵폭발로 인해 발생한 고열이 주변의 암석을 녹여 만들어지는 트리니나이트(Trininite, Atomite 또는 Alamogordo Glass라고도 함)와도 매우 유사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고열을 발생시켜 지면에 흔적을 남기고 돌을 유리질화 시킬 사건은 단 하나, 핵폭발뿐이다. 

"구르카는 빠르고 강력한 비마나(전차의 이름)를 타고 브리시스와 안타카의 도시를 향해 단 한 발의 발사체를 쏘았다. 이 무기는 마치 온 우주의 힘이 응집돼 있는 듯, 태양의 만 배만큼 밝은 불과 연기의 백열 기둥을 솟구쳐 오르게 했다. …강력한 벼락, 거대한 죽음의 메신저는 브리시스와 안타카의 모든 사람들을 재로 만들어버렸다."
기원전 10세기경에 있었던 바라다족의 전쟁을 기록한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한 장면이다. 시는 당시의 전쟁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공중에서 폭발이 있었고, 곧 섬광이 이어졌다. 남쪽 하늘에서는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는데, 태양처럼 밝은 불빛이 하늘을 둘로 갈라놓았고, 집과 거리와 모든 생물이 이 갑작스러운 불길에 모두 타버렸다. …무서운 열기가 동물을 쓰러뜨렸고 강물을 끓게 했으며 물속의 고기들이 익어 죽었다. 시체는 마치 마른 나무처럼 타버렸고 머리카락과 손톱은 떨어져 나갔다. 날던 새는 공중에서 타죽었으며, 식물은 모두 오염됐다."
폭발로 인한 섬광, 밝은 불과 연기의 백열 기둥, 강물을 끓게 할 정도의 열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를 읽고 영화 속 핵전쟁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원자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조차 고대 인도 서사시에 나오는 이 기록이 마치 핵폭발 후의 상황 같다고 했을 정도이다.

 

역사 이전의 전쟁을 기록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여기에 묘사된 전쟁장면은 핵전쟁 장면을 연상시킨다. ⓒ예문

핵전쟁을 연상시키는 전쟁장면이 고대인들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면,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핵폭발 증거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도 없는 신화 속 전쟁들이 실재한 것이었고, 고대문명이 정말 핵폭발로 인해 일시에 소멸된 것이라면? 핵전쟁에 대한 위험성이 끊임없이 대두되는 21세기, 모헨조다로를 둘러싼 섬뜩한 추측과 마하바라타 속 전쟁 이야기는 과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주)예문과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발칙한 고고학

후즈펑 | 송철규 옮김

예문 2009.12.05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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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에 없이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가 너무 복잡해져서 사람들은 매 초 딜레마를 만나야 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은 당장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옳고 그름마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닥쳐온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다. 유네스코의 미래전망 분과와 철학 및 인문과학 분과는 1997년부터 줄곧 ‘21세기의 대화’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 토론에는 전 세계의 과학자, 지성인, 작가, 정책결정권자들이 참여하여 미래를 전망하고 사회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귀중한 논점을 제시한다. 

아달베르토 바레토는 빈민가의 지역사회 정신보건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온 브라질의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가난과 소외과 물질적인 영역을 넘어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황폐화하는지 꿰뚫어본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마치 유령처럼 자기 존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아달베르토 바레토는 공동체 치료를 통해 자존감과 희망을 되찾는 길을 제시한다.



소외와 마음의 병
아달베르토 바레토

나는 12년 이상을 브라질 포르탈레자(Fortaleza) 근방에 위치한 거주자 28만 1,000명의 한 파벨라(파벨라favela. 브라질의 슬럼가, 빈민가, 뒤이어 나오는 파벨라두는 파벨라의 주민을 말한다.)에서 일해왔다. 포르탈레자는 인구 200만 명의 대도시이다. 여러 파벨라의 주민들이 가뭄 때문에 농촌에서 빠져나와 도시로 이주했고, 소외를 야기하는 불공정한 경제정책이 빚어낸 조용하고 보이지 않는 전쟁의 가담자들이 되었다. 외관상 무기가 없는 이 전투는 개인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 이 이주의 움직임이 그 개인들을 어떤 상실의 과정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이 과정은 경제적 빈곤화로 시작하여 문화, 전문 지식, 사회적 관계와 자긍심의 빈곤화로 이어진다.

대도시로의 도착 자체가 가장 뿌리 깊은 쓸쓸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도시는 그들을 환영하지 않으며,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주자들은 도시 주변의 외곽, 빈민 지대에 머무른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이 단지 악몽에 지나지 않음을 그들이 깨닫는 데에는 아주 짧은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제 일련의 또 다른 문제들이 시작된다. 어디에 살아야 하나? 수단도 없이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어떻게 아이들을 부양할까? 직업 훈련도 받지 않고 어떻게 일자리를 구할 것인가? 파벨라두(favelado)가 된다는 것은 지옥의 고통을 겪는 유령이 되는 것만큼이나 불안하고 절망스러운 일이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추구하지만,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는 결코 그를 보거나 듣지 못한다. 추방당한 이들의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 친숙한 주제들은 아마도 인정받지 못한 삶, 살아갈 공간을 가질 권리가 없는 삶의 실질적인 감정을 담아내고 있을 것이다. 지옥의 고통에 빠진 유령은 21세기 브라질에 나타난 마음의 질병들의 원형일까?


공동체 치료의 고안

이러한 맥락에서, 맨 처음 우리는 파벨라 인권 센터의 중개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가서 정신의학적인 상담을 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단지 일회적이었던 이 개입들을 통해, 우리는 예를 들면 실직당한 남편을 두고 집도 먹을거리도 없는 여성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한 개인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늘 자문하곤 했다. 대학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또한 개인적이고 생의학적인 틀을 넘어서, 가족과 공동체의 수준으로 배려를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대학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양성하는 것은 그 사람이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배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수많은 사람이 즉각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고 있는 파벨라의 상황에서는 효력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의 작업 방식을 바꿔야 했다. 또한 우리는 구원자의 모델, 해결책을 실어 나르는 전문가의 모델과 단절하고, 빈곤함을 넘어 인간적 그리고 문화적인 잠재력을 보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 빈곤함에 너무도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예외 없이 강연을 열고 싶어 하고 약품들을 주거나 조언을 주고 싶어 하지만, 그런 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이 도전에 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과 1주일에 한 번씩 만남을 가졌고, 우리가 '공동체 치료'라고 불렀던 것을 발전시켰다. 관건은 자각과 집단적인 반성의 공간, 모든 사람이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을 표현하도록 시도해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고함 소리가 난무하고 폭력이 곧 행동으로 옮겨지고 가장 강한 자가 이기는 공간이 이 파벨라에서, 우리는 대담하게도 '이 고통을 말'로 옮길 수 있도록 대화와 표현의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었다. 이 계획은 야심찬 것이었지만 결실을 가져왔다.

이러한 만남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 집단이 치료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집단 속에서 사회조직이 공고해지고, 사회적 소속감이 일깨워지는 것은 바로 고통에 대한 상호적인 표현과 개인적인 경험들의 교환, 타인에 대한 지지와 애정 어린 관계, 문화적 가치의 강화를 통해서이다. 개인들은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결국 성공적으로 더 나은 사회 통합에 이른다.

우리는 여기에 여러 해 전부터 우리가 채택해오던 R.A.P, 즉 '적극적 참여 행위 연구(Recherche Action Participative)'의 방식을 접목했다. 이 방식은 대학이 지식 생산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거부로 정의되며, 일반인을 향한, 일반인의, 일반인을 위한 지식에 호소한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마음의 질병들이 집단 자체에 의해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 안에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그들이 그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필요는 있다.

이 모델은 우리가 이미 브라질의 가난한 13만 개의 공동체와 함께 작업하는 브라질 가톨릭교회의 기관인 아이들의 목자(Pastorale del'Enfance)와 협력하여, 2,600명의 정신 보건 요원-우리는 이들을 공동체 정신 치료 전문의로 부른다-을 양성한 이래, 오늘날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이 정신 치료사들은 정신의학적인 어떤 해석이나 성찰을 행하는 대신,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찾도록 집단을 동원한다. 가령 집단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불면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면, 정신 치료사들은 다른 구성원들이 과거에 유사한 상황을 경험한 바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다른 구성원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병의 원인이 되는 세 가지 근본 축

: 버림받음
여러 파벨라 지역의 주민들은 사회로부터 거절당해 버림받았다는 감정과 애도의 감정에 빠져 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부축해주지 않는다. 이런 버림받음의 영향들은 개인적인 수준에서 나타나고, 신체적 외관에서도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때 이른 주름들, 갈라진 치아를 가진 턱, 덥수룩한 머리. 그 영향들은 여러 명이 되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가족들은 거리에서 살아간다. 버림받음의 영향들은 또한 사회적인 수준에서도 표면화된다. 허술한 건축, 마분지와 목재 조각들로 이루어진 동네 모습은 이러한 삶의 이야기들, 가족의 조각난 실존, 개인적 실존이 지닌 내면의 상처를 반영하고 있다.

이 버림받은 상황을 극복하는 데에는, 매우 다양한 제각각의 방법이 존재한다. 지역 단체들과 조합들은 생필품과 음식물을 한데 모아, 연결망을 구축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 젊은 사람들은 모여서 종종 범죄에 빠지고, 그들 중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은(우울증, 알코올중독, 약물 중독과 같은) 정신병적 대응물에 빠져들기도 한다.

종교적인 의식에 호소하기도 한다. 종교적인 예식들은 점점 집단적 카타르시스의 장소가 되고 있다. 신체가 느끼는 고통의 감정은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영혼을 움직인다. 가톨릭적인 것이든, 아프리카계 브라질의 토속 종교적인 것이든, 개신교적인 것이든 간에, 일반적으로 모든 종교적 의식은 실존에 중점을 둔 진정한 배려가 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삶의 가혹함 때문에 생기를 잃은 영혼을 사랑하게 된다. 일부 종교들은 위협적이기도 하다. 특히 펜티코트스파(펜티코티즘(Pentecôtisme). 성령의 작용을 강조하고 생활의 성성(聖性)을 역설하는 미국에서 발생한 종교운동)의 새로운 교회들과 하나님 왕국의 범세계적인 교회(최근 들어 파리에 등장한)는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모든 문화적인 믿음을 거부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여러 세대를 거쳐 내면화된 준거 모델들과 단절하기를 권하고 있다. 이들이 야기하는 것은 사실상의 정체성 상실이며, 모두가 전적으로 따라야 하고, 다른 종교를 부정함으로써 긍정되는 종교적 가치에 맞추어진 거짓된 자아의 탄생이다. 악을 몰아낸다는 구실로 인간에게서 그 자신, 그의 믿음들, 그의 비판적인 생각, 그가 가진 가치들, 그리고 그의 영혼을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프리카계 브라질 종교인 움반다(Umbanda)와 같은 다른 종교들은 정체성 형성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동거하는 새로운 가족 형태 안에서 환대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정체성 형성의 다양한 이미지들은 민초들의 문화를 존중함으로써 좀 더 관용적인 형태의 공동체에 어울리는 것이 될 수 있다. 


: 치안 불안
치안 불안의 분위기는 사회 내부를 폭력과 분열로 들끓게 만드는데, 이는 그 분위기가 양산하는 비이성적인 행위들이 주는 공포로 인해 자극받고 지속된다. 파벨라에서 비행과 범죄, 공격 본능과 같은 폭력은 실업과 맞물려 더 심해진다. 부자가 자신의 키보드를 통해 가상세계의 웹에 들어간다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반사회적인 인터넷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다른 사회단체들에까지 뻗어나간다. 나는 폭력 문화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이 폭력 문화는 모든 선진국의 패러다임이고,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첨단 기술적 대항-문화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TV가 폭력, 특히 모든 파벨라 지역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까지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요소로서 치안이 상호 간의 신뢰를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치안이 보장된 삶은 또한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본능을 지배하여 그것을 삶을 지탱할 힘으로 변형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도 하다.


: 자존감의 상실
가장 비극적인 비참함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파벨라두의 내면화된 비참함, 말하자면 무능력이라는 깊이 박힌 감정이다. 그들은 더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으며, 소외되었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상실했다. 이 자존감의 상실은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가령 침묵 같은 것을 통해 드러난다. 브라질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입술이 침묵할 때에는, 장기들(organes)이 말을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이 사람들이 집단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들이 타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그들에게서 박탈하지 않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가족 내에서도 아이들을 깔보는 억압적인 교육은 아이들의 자존감의 상실은 직업상의 실패를 초래한다. 일자리는 구했지만 한 달 이상 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불안감이 하도 커서 결국 그만두고 마는 것이다.

공동체 치료 기간과 병행하여, 우리는 자존감을 일깨우는 집단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잠재력과 자신의 문화가 가진 잠재력을 재발견하도록 하고, 또 이 잠재력을 한데 모아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인 동력을 만들어내도록 할 목적에서 말이다. 이 동력은 그들 각자가 자기 역사의 주체가 되고 자신의 존재를 책임질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예방 정치를 위하여

버림받음과 치안 불안, 자존감의 상실과 관련된 문제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염려해야 하는 사태이다. 이 문제들로 인해 사회 내부가 폭력과 분열로 들끓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이 야기하는 공포와 비이성적인 행동들은 긴장과 절망, 불안의 분위기를 가중시키는데, 이것은 오직 집단적으로 활동하는 참여제도가 있을 때에만 해소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들이 없거나 효력이 없을 때, 개인들은 자신의 규칙과 제도를 창조한다. 이 '자신의 일에만 충실한 각자'는 동족상잔의 폭력을 한층 더 강화시킨다.

고통을 받는 개인들이 창조적 활동을 하도록 복돋워주는 적합한 수단을 고안하는 것은 반드시 고유한 개인적 가치들과 이전에 실추된 문화적 가치들에 근거해야 한다. 이 새로운 수단은 참여적이고 공동체적인 맥락 속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선험적인 가치 체계를 자신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각자가 지닌 경험과 다양성의 관점에서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낳는 것은 바로 집단이다. 이러한 접근은 고통을 설명하는 모델과 이 모델이 함축하는 개입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것을 치료 전문가들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모델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선형적이고 환원적이다. 예를 들면 화학요법을 권장하는 생의학 모델이나, 때로는 교육적이지만 때로는 억압적인 행위들을 외부로부터 강요하는 사회적 모델이 그러하다.

개인의 자기 계발은 사회집단을 변화시키는 요인으로서, 절대 권력을 지닌 근대의 복지 국가 모델과 같은 간섭주의적 모델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 모델은 종속을 강화하고 창조성을 질식시킨다. 예산 투자를 기다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소외된 개인의 사회문화적 자본을 실제로 활용하여,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수동적인 희생자의 지위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하여 그 개인이 사회 재건의 책임을 함께 떠맡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존재로서 비판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정겨운 사회적 유대를 촉진시킬 만한 장소, 그래서 생활공동체에 새겨진 문화적인 소속감을 솟아나게 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은 주체에게 필수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소에서 유대로 이동하는 일이며, 단 한 사람이나 정책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주리라고 기대하는 개인적인 모델을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해답이 공동체적인 것에 있다고 확신한다. 참여 운동을 시작해야 하며, 이 운동을 통해 각자는 집단이 하나의 전체로서 완전하게 발전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집단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자존감의 상실은 자기에 대한 앎과 관련하여 무지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정체성 회복의 장소들을 마련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학문적인 지식은 결국 소위 대중적 지식을 인정하고 한데 아울러야 한다. 소외당한 자들의 자존감 회복은 21세기가 지닌 마음의 질병들에 맞선 투쟁의 초석이 될 것이다.

치료 요법을 실시하는 동안 내가 들은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끝마치고 싶다. 세상의 혼란과 무질서에 반항하는 자신의 아들을 진정 시키기를 바랐던 한 아버지가 세계 지도를 작은 조각들로 찢어버리고는, 세상을 바꾸기를 원했던 아들에게 그 지도를 자기 방식으로 다시 맞추라고 요구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그 지도를 다시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분이 흐른 후 아들은 그 지도를 다시 복원했다. 매우 놀라는 아버지 앞에서, 아들은 아버지가 그 지도를 찢기 전에 그 지도의 뒷면에 한 사람의 초상화가 그러져 있던 것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의 유일한 관심은 그 사람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었고, 그 사람을 되찾으면서, 세상을 되찾았던 것이다.


<아달베르토 바레토 Adalberto Barreto>
정신과 의사이자 민족학자. 세아라 연방 대학 의과 대학 교수, 통합된 지역 사회 정신 보건 운동의 브라질 총괄 책임자이다. 그는 노르데스테의 빈민가 지역들, 특히 포르탈레자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는 여러 저작을 출간했으며, 그 중에는 L'Indien qui esten moi(1996)가 있다. 엘리안 콘티니Éliane Contini의 저서 Un Psychiatre dans la favela(1995)는 그의 경험을 기술하는 데 바쳐진 것이다.


<이 기사는 (주)문학과지성사와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제롬 뱅데 | 이선희|주재형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8.06.30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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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에 없이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가 너무 복잡해져서 사람들은 매 초 딜레마를 만나야 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은 당장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옳고 그름마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닥쳐온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다. 유네스코의 미래전망 분과와 철학 및 인문과학 분과는 1997년부터 줄곧 ‘21세기의 대화’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 토론에는 전 세계의 과학자, 지성인, 작가, 정책결정권자들이 참여하여 미래를 전망하고 사회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귀중한 논점을 제시한다. 

사회학자, 소설가, 수필가, 기자, 방송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프랑스의 여류 저술가 드니즈 봉바르디에가, 우리 삶을 조각조각 해체하고 속박하는 현대의 시간 활용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간의 속박과 영혼의 질병
드니즈 봉바르디에

오늘날, 누가 아직도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을까? 글쓴이 나 자신은 현대적 시간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텔레비전 기자인 관계로, 나는 시간을 조각조각 나누고, 시간을 조롱하고, 끊임없이 시간에 맞서 싸워야 하는 직종에 종사한다. 다른 한편, 작가로서 나는 시간에, 이 거의 우회해갈 수 없는 글쓰기의 시간에 복종해야만 한다. 고백컨대 시간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사로잡는다. 이러한 시간에 관한 불경이 영혼에 야기하는 질병을 분석하는 임무는 정신과 의사와 정신분석가에게 맡기겠다. 나는 단지 이와 같은 시간과의 끊임없는 경주가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몇 가지 생각을 따라갈 것이다.



드니즈 봉바르디에. 저술가.


오늘날의 사회와 시간

오늘날의 사람들은 하나 이상의 시계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시계들 중의 일부는 땅 위에서뿐만 아니라 물속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방수 처리가 되어 있다. 그렇지만 사실 물에서는 시간이 멈춘다. 이제 집 안의 모든 방 안에서, 모든 공공장소에서 시계를 발견할 수 있다. 단 카지노는 예외인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통 도박꾼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생 전체를 따기 위해(또는 잃기 위해) 건다!

우리는 또한 휴대전화 중독과 같은 새로운 정신적 질병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기다린다는 관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사생활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모두가 "나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처럼 사회가 모든 인간의 활동을 단축시키도록 강요하는 방식에 대해 성찰해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의학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기관들을 좀 더 내구력 있는 인공적인 기관들로 대체하려고 들 뿐만 아니라(이에 대해 우리 모두 매우 만족스러워한다). 어떻게 하면 외상의 치유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우리의 보건 체계에서, 시간은 바로 돈이다! 요즘의 그 대단하다는 외과 수술들을 받으면, 여러분은 아침에 악성종양을 제거하고 나서 정오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환자가 병원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체계적인 방식으로 줄어든다.

이와 비슷하게 퀘벡에서는 빈소에서 망자들을 공개하는 기간이 전통적으로 3일이었으나 하루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죽은 사람들이 곧바로 매장하거나 화장해달라고 유언으로 요구하는 일도 있다. 고인과 가까웠던 이와 같은 통과의례는 더 이상 존중되지 않는다.

시계의 관습적인 시간은 그것이 풍요 사회의 시간이냐 제3세계의 시간이냐에 따라 높은 가격이 매겨지거나 아니면 싸구려로 취급된다. 우리와 같은 서구 사회에서 시간이란 자원은 아마도 경제 시스템에서 가장 값비싼 재산일 것이다. 주식시장은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 즉각성 덕분에 불타오른다. 눈 깜빡하는 순간이 100만 달러의 소득으로 혹은 손해로 변해버린다. 수익성을 계산해보면, 시간이란 항목은 최고의 중요성을 갖는다. 하나의 재화를 이루는 각각의 요소에는 시간 지수가 있다.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 소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 낡은 것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 그리고 곧이어 제거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같이 말이다. 따라서 미래의 고인이 유언을 통해 자기가 죽은 뒤 친지들이 애도하는 데 들일 시간을 〔미리〕 확정해놓는 행위는,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간에 대한 이와 같은 상업적 접근을 통해 정당화된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혐오스러운 계산에서 사건들, 마음의 상태들, 행복과 불행의 단편들 등 우리의 삶에서의 몇몇 측면을 예외로 할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빠르게 살아가기

다른 한편, 여가 활동을 짜는 과정에서 더 이상 고독에는 어떤 시간도 남겨두지 않는다. 북미 지역에서는 모든 것이 분단위로 구성된다. 그런데 여가란 정의상 자신의 시계를 쳐다보지 않는 것, 그리고 시간의 압박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25년 이상 TV에서 일해왔다. TV는 시간의 적이다.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지 않은 시간, 또는 우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시간에 대한 성마름이 아니라면 무엇이 채널 돌리기란 말인가? 언젠가 우리는 채널 돌리기가 지식의 전달, 아이들의 집중력, 타인과의 관계 구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몇몇 철학자는 이미 시작하고 있는 일이다. 채널 돌리기는 분명 젊은 사람들이 수업 시간 동안 수업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 관련이 있다. TV 앞에서 채널을 돌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자신의 선생님을 '채널 돌리듯'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순식간에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창조적인 고독의 시간, 또는 잃어버린 시간과 자유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독특한 정신적 추진력으로 시간의 이 상업적 모델을 떨쳐내고, '선함과 좋음을 관조'하는 데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성인군자 시대에 흔히들 말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조금씩 조금씩 인간으로부터 그 자신을 앗아가는 이 고통 없는 인원 모집에 맞서, 인간이 거의 저항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랑의 관계가 꾀하는 바는 일종의 조화로운 완벽함으로의 희귀이다. 행복이 당신을 엄습해올 때, 당신은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그렇다면 다른 감정들처럼 사랑도 앞으로는 그에 도달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다 해놓았을 몇몇 사람만의 희귀한 특권이 되지 않을까? 예전에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우리는 사랑의 관계가 점점 짧아지는 경향을 띤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미에서는 두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한다. 각자의 삶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새겨진 이 정서적 삶의 파열들은, 그것들이 진행되면 될수록, 각자가 가질 수 있는 자기 확신을 조각조각 가져가버리는 경향이 있다.

시인은 말한다. "오 시간이여, 너의 비행을 멈추고 그대, 자비로운 시간들이여, 당신의 흐름을 멈추시오." 지나간 과거의Passé 시인 라마르틴을 우리는 정말로 넘어선 것일까dépassé? 어쩌면 우리의 관례적인 인사말인 "어떻게 지내세요?"가 "시간 있어요?"라는, 끔찍하면서도 슬프게도 그토록 자주 쓰이는 이 다른 문구로 바뀌는 것을 모면하기 위해, 우리는 더더욱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드니즈 봉바르디에Denise Bombardier>
의사소통에 관한 사회학 박사이며, 수필가이자 소설가이다. 라디오-캐나다Radio-Canada의 기자인 그녀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TV 방송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저술한 많은 책은 성공을 거두었다. 주요 저서로는 Une enfance à l'eau bénite(1985), La Déroute des sexes(1993), 특히 최근의 Ouf(2002)가 있다. 또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클로드 생-로랑Claude Saint-Laurent과 함께 Le Mal de l'âme. Essai sur le mal de vivre au temps présent(1988)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주)문학과지성사와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제롬 뱅데 | 이선희|주재형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8.06.30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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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에 없이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가 너무 복잡해져서 사람들은 매 초 딜레마를 만나야 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은 당장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옳고 그름마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닥쳐온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다. 유네스코의 미래전망 분과와 철학 및 인문과학 분과는 1997년부터 줄곧 ‘21세기의 대화’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 토론에는 전 세계의 과학자, 지성인, 작가, 정책결정권자들이 참여하여 미래를 전망하고 사회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귀중한 논점을 제시한다. 

조지 아나스는 ‘과학과 지식, 그리고 전망’을 주제삼은 대화에서 유전과학의 발달에 주목하였다. 유전과학은 우리에게 기술과 함께 전에 없었던 새로운 ‘관점’ 역시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관점은 다른 인간을 보는 관점인 동시에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이기도 하다.


 

유전자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유전학적 종족 말살이라는 미래의 가능성

조지 아나스

21세기가 인간유전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새로운 유전학 기술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서로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변화시킬 뿐만 이니라, 더 중요하게는,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서로를 바라보는 바로 그 방식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갖는 피상적인 인식 때문에 종종 인종주의가 생겨나곤 했다. 간단히 정의하면, 인종주의는 '인종이 인간의 변별적 특성들과 능력들을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유전자 사냥, 특히 인종 분류를 따라 구별된 집단들에 대한 유전자 탐구는 DNA 배열 특징에 기초해 있는 '유전자주의' (아직 공식적으로 승인된 용어는 아니지만, 나는 이 용어를 유전자가 인간의 변별적 특성들과 능력들을 결정한다는 이론으로 정의하려고 한다)에 이를 수 있다. 이 유전자주의는 그 결과로서 인종주의만큼이나 파괴적인 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

새로운 유전학이 가져올 두번째 결과는 우리의 새로운 힘을 우리 자신을 변형시키는 데 이용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더 나은 아기,' 심지어는 다음-인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부류를 창조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는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경고했던 사태이다. 헉슬리의 세계는 어떤 검사를 통해 이루어진 세계였는데, 이 검사를 통해 유전적으로 '우등한 자들'이 범주적으로 '열등한' 인간을 노예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그보다 더 있음직한 결과는 유전학적 종족 말살이다. 이는 기존의 인간들의 새로운 인간들을 제거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위험들을 각각 간략하게 설명하고, 그것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유전적 보편성, 아니면 유전자주의?

유전체학의 커다란 희망은 다음과 같다. 즉 유전체학이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두 같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러한 증명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들 내에 구별을 만들려는 경향을 버리고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유전체학은 이미 과학이 맡은 부분을 완수했다. 일례로 지난여름 인간 게놈의 밑그림이 발표된 이후,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크리스 스트링어Chris Stringer는 "우리들은 모두 피부 밑으로는 아프리카인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유전학자들도 다른 말들을 통해 동일한 지적을 했다. 한 유전학자는 "인종은 단지 피부 두께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학자는 "인종에 관한 어떤 것도 과학적이지 않다. 인종의 경계를 규정하는 어떤 종류의 어떤 유전자형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사적 부문에서 게놈 지도를 작성하려는 시도의 선두주자인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는 "인종은 사회적 개념이지 과학적 개념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지난 10만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이동하여 세계〔곳곳〕에 이주한 소수의 같은 부족들로부터 진화했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며, 따라서 유전학자들은 이러한 반인종주의의 메시지를 일반 사회에 알렸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유전학의 메시지는 인종주의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그것의 사악한 형제인 유전자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것이 유전자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매사추세츠 과학기술연구소의 유전학 지도자인 에릭 랜더Eric Lander는 우리 모두가 99.9퍼센트 유전적으로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0.1퍼센트의 차이가 우리의 게놈 속에서 300만 개의 변이들을 구성해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유전적 변이들 하나하나가 유전적 속성에 기초하는 차별을 지지해줄 사이비 과학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주요 게놈 연구자들은 이 점을 인정해왔으며, 고용과 건강보험, 생명보험과 신체장애보험에서 유전자상의 차별을 금지하는 입법 조치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것들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차별의 유일한 격투장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게놈에 관한 우리의 지식이 우리가 우리 삶의 가능성들을 바라보는 방식, 심지어는 우리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에 끼치게 될 영향들이다. 유전학자들은 게놈 암호를 이해한다면 분자 수준에서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분자나 원자 혹은 아(亞)원자 수준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완전한 몸을 가진 인간존재로서 살아간다. 인간을 유전자들의 집합으로 보는 이러한 환원주의적 시각이 바로 유전자주의의 핵심에 있다.

그 하나의 예로 이제는 사라진 인간 게놈 다양성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종종 '사라지고 있는 세계의 부족들'로 칭해지는, 약 700개에 달하는 세계의 고립된 민족 집단들로부터 DNA 샘플들을 모으고자 노력했다.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서 보면, 그 집단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 것보다 과학이 그들로부터 DNA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전 세계에 있는 토착민은 몹시 완강하게 이 프로젝트를 거부했고, 그들의 인권이 미덥지 않고 환원주의적인 이 프로젝트보다 상위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들은 모두 피부 밑으로는 아프리카인이다"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DNA 중 차이를 만들어내는 0.1퍼센트 내에서 유전적 차이들을 찾아내려고 마음먹는다면, 우리가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들 서로에 대해서 그런 차이들을 이용할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철학자 에릭 유엥스트Eric Juengst는 이 점을 잘 지적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인구 유전체학의 잠재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차이들을 기술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면, 그것은 불가피하게 과학적 쐐기를 생산하여 이미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사회적 균열 안에 박아 넣게 될 것이다."

피부색의 차이를 분자적 차이로 대체함으로써 인종주의가 남긴 자리를 유전자주의가 이어받는 것을 막는 일은 쉽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두 개 조치는 반드시 취해져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우선 유전자 프라이버시genetic privacy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의 유전자도 권한 부여를 명시하지 않고서는 분석될 수 없다. 물론 어떤 '유전자 신분증'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두번째로, '인종들'간의 유전자 차이들을 파악하는 것을 취지로 하는 사이비 과학적 프로젝트는 거부되어야 한다.


유전학적 종족 말살이라는 미래의 가능성

차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게놈들을 선별해내는 것은 더 많은 차별의 여지를 만들어낸다. 유전공학에 의한 '더 나은 인간' 만들기를 시도하기 위해 새로운 유전학을 이용하는 것은 차별을 넘어 제거로까지 치달을 수 있는데, 이는 유전학적 종족 말살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선동적인 언어는 정당화되는가?

유전공학의 프로젝트는, 간단하게는 클로닝으로 알려져 있는, 처세포 핵 전이를 통한 인간의 유전자 복제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실존하는 한 인간의 유전자 복제물이 되는 아이를 창조하기 위한 클로닝 작업은 복제아clone child의  개성과 자유를 훼손하고, 동시에 그 아이를 우리 자신의 의지와 과학기술의 생산물로 만듦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우롱한다. 물론 당장의 위험은 다음과 같다. 즉, 생산물이라는 점에서 복제된 아이들의 인권이 의문시될 것이며, 원본의 복제물이라는 점에서 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류의 시민으로 취급받고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처신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닝은 유전공학 프로젝트의 시작에 불과하다. 다음의 단계들은 유전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려는 시도, 그다음에는 초인이나 다음-인간을 창조하여 유전적 특성을 '개선'하거나 '향상'시키려는 시도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전학적 종족 말살이라는 전망을 가장 개연성 높은 귀결로 낳게 되는 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이다. 그 까닭은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우리가 다음-인간들이 우리와 동등한 권리와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거나 또는 다음-인간들이 우리를 그들과 동등한 사람으로 볼 가능성이 극도로 희박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리가 그들을 위협적인 자들로 여겨서, 그들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가두거나 아니면 그냥 먼저 그들을 죽이려고 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아니면 반대로, 다음-인간이 우리(보통의 흔한 인간)를 노예로 삼거나 우선적으로 대량학살되어야 할 인권이 없는 열등한 하위 종으로 여기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유전학적 종족 말살'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는, 유전자 차이에 근거한 종족 말살의 가능성, 이것이 바로 종을 개조하는species-altering 유전공학을 잠재적인 대량학살 무기로 만들고, 책임 없는 유전공학자를 잠재적인 생물학적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책임 없는 유전공학자를 잠재적인 생물학적 테러리스트로 만든다. 조금은 과장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르완다에서의 종족 말살을 막기 위해 미국이 조치를 취하지 못한 사실에 대한 분석이 보여주듯, 행위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반드시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다. "종족 말살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경우도 정치적·도덕적·상상적 결함들에서 기인하지, 정보의 결함들에서 기인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유전학의 희망적인 측면은 유전학이 우리를 새롭게 그리고 좀 더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견인차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바클라브 하벨Vaclave Havel이 우리의 '종적 의식'이라고 말한 바 있는 것을 형성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이 종적 수준의 의식을 통해 우리의 유전과학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을 생각해보고, 예견 가능한 재앙을 막기 위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새로운 유전학의 잠재적인 폐해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생명 윤리가 요청되어왔다. 그러나 생명 윤리가 의사-환자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형성된 개인의 결정에 초점을 두고 있는 한, 생명 윤리의 종(種) 전체에 걸쳐 있는 문제들과 대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다. 생명 윤리가 도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잠재적으로 훨씬 더 효력을 갖는 기틀은 국제 인권이란 말과 그 실천이다.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인간사회의 주변부에서 활동하는 이단 종파나 그 밖의 이들이 인간 복제를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세계에 어떤 계기를 마련해준다. 세계가 여태껏 극도로 어려웠거나 혹은 불가능했던 방식들로 예방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계기 말이다.

특히, 유네스코의 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세계 선언, 그리고 전 세계 사람과 정부가 보여준 인간 복제 계획에 대한 압도적인 반발은 인간 종의 보전에 관한 공식적인 조약의 체결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지금 이를 제안하는 것이 합당하고 책임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이 조약은 종 개조 기술과 종을 멸종 위기에 빠뜨리는 실험을 모두 금지해야 한다. 특히 인간존재가 지닌 유익한 근본적인 특성들에 대한 개조를 꾀하는 과학기술들을 금지해야 한다(이런 개조는 인간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에 클로닝-무성 복제-을 추가함으로써 유성생식을 선택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그 결과 우리의 특성들도 선택 가능한 것이 되는 방식으로, 아니면 배아의 유전암호를 바꿈으로써 그 결과로 나온 아이가 인간의 아종이나 혹은 새로운 종의 일원으로 간주되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종을 멸종 위기에 빠뜨리는 실험들이란 종 전체를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실험들이다. 이종 이식을 위해 돼지의 기관을 이용하려는 요즘 유행하는 기획들이 그런 실험들인데, 이 기획은 HIV와 유사할 수 있는 새로운 치명적 인간형 바이러스를 생겨나게 할 위험이 있다.

이 조약은 또한 감시하고 검토할 수 있는 본부를 가진 민주적이고 책임 있는 시행 메커니즘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종을 개조시키거나 멸종시키는 범주 안에 있는 어떤 실험도 이 본부의 우선적인 조사 검열과 승인 없이는 합법적인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과 기업들의 개입이 생명 종에게 해가 되기보다는 훨씬 유익할 것이라는 점을 그들 스스로 증명하도록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이 조약은 종을 개조시키고 멸종 위기에 빠뜨리는 개입에 대해 환경운동의 사전주의 원칙 입장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우리에게 과학이 자기 마음대로 우리를 이끌고 가도록 내맡겨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측면과 종적 자멸의 위험을 높이는 측면 양쪽 모두에서 너무 강력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서로에 대해 지는 상호적 책임을 더 이상 방기할 수 없다.


결론

나딘 고디머는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에 관한 그녀의 기존 관념을 뒤흔드는 시사적 소설 『가정의 총』에서, (친구를 죽인 한 젊은이의 부모인) 해럴드Harold와 클로디아 린드가드Claudia Lindgard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린드가드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 만일 인종주의자가 다른 색의 피부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며, 피부색이나 종교, 국적이 당신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믿거나 믿고자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의사인 클로디아는 피부 아래에서는 살과 피, 그리고 고통이 모두 같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해럴드 역시 자신의 신앙을 통해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를 닮은 신의 피조물이며, 누구도 다른 이보다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둘 중 아무도 운동에 참여하거나, 항의하거나, 공개된 시위에서 행진을 하거나, 이러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의견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것이 실패한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혈액형과 같이 변경할 수 없이 결정된 문제인 듯 말이다.

아파르트헤이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행동이 취해져야 한다. 비록 린드가드 집안의 사람들은 행위의 유전적 결정주의를 믿는 것 같지만, 당면해 있거나 임박할 우려가 있는 인권유린 앞에서 아무런 행위를 취하지 않도록 유전암호화되어 있거나, 그런 행위를 변명해 줄 어떤 유전자(혹은 혈액형 특성)도 없다. 유전자주의에 직면하여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우리는 다 함께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촉진하고, 인간에 대한 클로닝과 유전공학을 막아야 하며, 존엄과 평등에 근거해 있는 보편적 인권을 촉진하고 보호해야 한다.

종적인 차원에서의 행동이 없다면, 유전자주의는 지구상의 가장 파괴적인 병폐로서 인종주의를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인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조지 아나스 George J . Annas>

보스턴 대학의 보건과 법학부, 생명 윤리와 인권학부 교수이다. 저작으로는 The Rights of Patients(1975), Some Choice: Law, Medicine, And The Market(1998), Health  and Human Right(1999) 등이 있다.


<이 기사는 (주)문학과지성사와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제롬 뱅데 | 이선희|주재형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8.06.30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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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동물을 만난다- 상상동물원

 

                                              「해리포터」의 그리핀과 「나니아 연대기」의 켄타로우스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퍼시 잭슨의 번개도둑」까지, 판타지 영화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사자 몸통을 가진 그리핀, 반인반마 켄타로우스,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메두사까지.
2011년 6월 개관하는 울산박물관에서는 영국박물관 소장유물 가운데 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상상의 동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은「신화 속 동물」전시회를 개최한다. 영화 속, 그리고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온 상상의 동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 있는 박물관 개관 기념 전시회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유럽산 상상의 동물들이 모이는 것일까? 한국산 상상의 동물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2011년 6월에 유럽산 「신화 속 동물」들을 만나기 전에, 한국의 「신화 속 동물」들을 이 곳 상상 동물원에서 만나보자.
 
상서로운 동물 상상동물
고구려 사람들은 하늘세계에 사람 머리의 새나 짐승, 날개 달린 물고기나 사슴 같은 신비한 동물들이 살고 있으며, 이 상상의 동물들은 하늘에서 별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기린 - 평화로운 세계의 상징
 


유니콘처럼 외뿔이 달린 말이나 사슴처럼 그려진 기린은 세상에 성인이 태어나고, 세상이 살기 좋을 때 나타난다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전설의 동물이다.
삼실총 벽화, 무용총 벽화, 안악 1호분 벽화 등에 기린이 등장한다. 그러나 같은 기린을 상징하는 그림이지만, 외뿔이라는 큰 특징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천마, 비어 - 하늘을 숭상하는 상상동물 


하늘 세계를 달리고 또 날아다니는 말 천마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고기 비어. 고구려 사람들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까지 하늘을 날게 할 만큼 하늘 세계를 숭상했다.

양수, 천추, 만세 - 불로장생의 상징 


불멸 또는 재생(再生)의 상징인 고대 이집트의 상상동물 ’피닉스(phoenix)’처럼 불을 밟고 걸어 다니는 신비의 불새, 양수. 삶이 끝없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꿈이 불사조의 모습에 담겨 있다.
천추와 만세라는 상상동물도 새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 얼굴을 한 인면조 형태인 이들 역시,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길리 - 행운의 상징
 

독수리의 얼굴과 날개, 사자의 몸통을 지니고 있다는 그리핀과 반대로 동물의 머리를 달고, 새의 모습을 한 길리는 복과 행운을 누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상상동물이다.

유럽의 상상동물들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신비감을 주었지만, 고구려에서는 상서로운 징조를 주는 동물들로 생각되었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미리 가 본 북한유물박물관

전호태

한림출판사 2009.08.25

조애리 기자 (joaeri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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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diaspora).
그리스 어로 ‘흩어진 사람들’을 의미하며, 우리말로는 이산(離散)이라고 번역한다. 고국, 가족,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처지를 말한다. 인류사에서 유대인들의 처지가 디아스포라의 전형이다. 한민족의 경우도 근현대사에서 디아스포라를 경험했다. 예컨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사람들과 재일교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이 명실공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한지도 수 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떠나고 들어오고 있다. 나나 내 가족이 어느날 이민을 결심해서 이주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이주자가 갑자기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제 디아스포라는 나와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대학교 남호엽 교수는 저술 <글로벌화와 다문화가정의 이해>를 통해, 디아스포라가 무엇인지, 디아스포라를 겪는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밝히고 있다.


디아스포라 주체와 정체성의 공간
-<글로벌화와 다문화가정의 이해> 중에서

근대사회는 이주의 시대이며,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이동은 자연스러운 삶의 형식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주 현상은 익숙한 곳의 테두리를 벗어나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과정이다. 이주자들이 낯선 곳에 직면하는 현실이 예사롭지 않다. 근대사회에서 이주 현상은 중립적이지 않고, 그 자체로 사회정치적인 과정이다. 이주 주체에게 새로운 공간은 뿌리내림과 정체성의 도전 장소이다. 특히 이주자들은 디아스포라(diaspora)의 처지에 있으며, 그(그녀)는 다문화사회의 소수자라고 말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주체는 분열적인 존재 양태를 보인다. 디아스포라 주체에게는 일상생활의 관행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국민 국가가 만든 제도들이 억압적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에게는 조국(선조의 출신국), 고국(자기가 태어난 나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의 삼자가 분열해 있으며 그와 같은 불열이야말로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라고… 다수자는 대부분 자신의 선조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에 '국민'으로 속해 있다. 즉 조국·고국·모국이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삼자의 지배적인 문화관이나 가치관은 서로 많이 다르고 자주 상극을 이룬다"(서경식 2007:114).

디아스포라 주체는 분열적인 자아를 가지며, 이것 때문에 삶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이 고통은 단지 심리적인 차원, 주관적인 정서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개입한다. 이른바 국민국가가 질서화한 일상생활의 관행들이 있으며, 이것은 디아스포라 주체들에게는 삶의 질곡이 되기도 한다.

서경식 선생은 일본에서 대학교수로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이다. 재일한국인으로 그는 해외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항상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여권의 재입국허가 기한을 확인해야 한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교육을 받고 세금을 내면서 학자로서 살아가고 잇는데, 해외에 나갔다가 입국할 때 '허가' 여부가 기한에 의해 조건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테니 설명을 덧붙이자면, 내 국적은 한국이기 때문에 나는 대한민국이 발행한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해외여행을 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나 자라고, 직장과 집이 있고, 가족과 친구가 사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내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일본 법무성의 '재입국허가'가 필요하다. 나는 일본에서 '특별영주'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돼 있다. 이것은 재일외국인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안정된 법적 지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입국허가 없이 일본 밖으로 나가면 다시 입국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원칙적으로 재입국허가 없이는 재입국할 수 없다."(같은 책 p.194)

국민국가는 안정된 질서를 추구하며, 애매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 즉 이미 정해져 있는 경계들 주변 언저리에 서 있는 주체들에게는 매우 억압적이다. 국민국가의 경계는 안과 밖의 구분이 뚜렷하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경계는 매우 차별적이다.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적인 이유이든 경제적인 이유이든 간에,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 상당한 통제 기제가 작동한다. 이 경우 경계는 절대 고정 불변의 상황인가, 통제 기제가 추구하는 의미의 질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존엄하게 해주고 있는가? 경계가 가변적이라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지향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전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통제 기제가 자연화된 것에 불과하다면, '해체'와 '재구성'이 가능하다면, 역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져본다. 사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모색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경식 선생은 왜 일본에서 태어났는가? 그의 부친은 왜 일본으로 이주했는가? 왜 그의 가족들은 고난의 인생을 살았는가? 이러한 문제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태평양 전쟁과 전후 일본사회의 성립, 한반도의 분단 등과 같은 역사적 국면들이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역학 기제가 자리한다.

서경식 선생과 가족들의 생애사는 주로 정치적인 문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표면화된다. 물론 디아스포라 현상의 근원에는 경제적인 차원들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의 팽창 과정 속에서 근대 사회는 모순이 응축 되었고, 이러한 상황이 개인사나 가족사에도 개입하고 있다. 그런데 디아스포라의 상황은 단지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디아스포라의 사례들은 인류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다문화사회의 전형으로 미국사회를 언급한다. 미국사회는 이주의 역사 그 자체이다. 원주민들이 사는 땅에 유럽 백인들의 이주가 있었고, 곧바로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이주했다. 특히 흑인 노예들의 이주는 비자발적인 선택 혹은 강제 이주의 상황인 만큼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 하여 'Black Atlantic diaspora' 상황이 발생하면서 다인종, 다종족, 다문화사회의 전형을 창출했다(Dwyer 2005: 501). 물론 20세기에 와서 수많은 아시아계 디아스포라가 미국 사회에 편입되기도 했다. 아울러 유럽의 경우도 다른 지역에서 이주 현상이 발생하였고, 디아스포라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이렇게 디아스포라는 소속감의 장소가 여러 곳이며 여러 경계들을 넘나드는 삶의 형식이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주체는 고정된 '뿌리들' 혹은 기원들에 도전하는 정체성을 가지며, 초국가적인 결속과 연결을 선호한다(Dwyer 2005: 501). 이렇게 디아스포라 공간을 사유하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직면하는 실체들 중 하나가 바로 경계(boundary)이다. 디아스포라 주체에게 현실은 항상 경계들의 등장이며, 이 경계들과 관계 설정이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즉 디아스포라 공간은 포함과 배제, 소속감과 타자성, '우리들'과 '그들'의 경계들이 경합하는 지점이다(Dwyer 2005: Fortier 2007: Crang 1998). 따라서 디아스포라 공간은 곧바로 정체성의 장소들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한다.

정체성의 장소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계를 확보하고 있다(Pratt 1999). 하나의 장소가 고유성을 가지려면 다른 장소와 관계를 설정하면서 차별화 계기가 있어야 한다. 차이나타운이 하나의 장소로서 독특함을 유지하려면 그 장소 내부에서 고유한 성질들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장소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자적인 경관들, 사회적 관행들이 있어야 한다.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그 장소에 자리한 경관과 관행들에 애착과 소속감을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경관과 관행들이 누군가에게 이질적인 느낌의 구조를 만든다면 그 사람은 외부자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장소는 일정한 차별화 전략의 산물이며, 그 장소는 영역화(territorialization) 과정이 작동한 결과물이다(Paasi 1997). 여기서 정체성의 장소는 공간 스케일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그 장소는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 고장, 우리 지역, 우리나라가 된다. 그래서 향토와 모국은 각각 지역적인 스케일과 국가적인 스케일에서 애착심을 야기하는 장소이다.

장소에 대한 애착은 장소감(sense of place)에 기초한다(Rose 1995).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애착이 가는 공간은 동일시의 장소감을 부추긴다. 나와 우리는 그 장소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디아스포라 주체들에게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주근로자로 와서 안산시 원곡동에 거주하는 사람은 그곳에 위치한 이슬람사원을 찾는다. 다문화마을로서 원곡동과 이슬람사원은 이주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생활공간이다. 그곳에서 단지 의식주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마음의 의지처가 필요하며, 그 역할을 종교시설이 해낼 수 있다. 그래서 안산시 원곡동은 다문화마을 특구로서 장소화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이슬람사원과 같은 경관들이 그곳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아울러 디아스포라 주체들에게 '배려의 정치'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바로 '장소의 정치'가 된다. 즉 다문화주체들이 소속감와 동일시라는 심리 기제가 발생할 수 있는 근거로서 장소 만들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에서 다문화장소의 탄생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다문화장소는 국토의 순결을 망치는 외래사조인가? 국토가 새로운 다양성, 역동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걸음 더 나아가 이미 한반도에 살아왔던 사람들은 다양한 이주의 결과물들이 아닐까?


남호엽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hynam@snue.ac.kr
이민자를 위한 <한국사회의 이해> 강좌 운영 실행연구」, 「초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에 나타난 다문화교육의 논리」, 「지역학습에 있어서 민족정체성과 지역정체성의 관계」 외


<이 기사는 (주)사회평론과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

이인재

사회평론 2010.03.22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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