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고 나서 남은 엔화와 달러화>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자가 급증하고 있다. 2010년 7월에는 하루 평균 약 10만 명이 공항에서 출국하고 있다고 한다. 즐거운 여름 휴가를 마치고 해외 공항에서 지갑을 살펴보면, 많든 적든 외화가 남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많은 이들이 "다음에 쓰면 되지" 하고 그냥 집에 처박아두거나, 공항에서 초콜릿이나 작은 기념품을 사는 데 써버린다. 비싼 환전수수료를 물어가면서 도로 원화로 바꾸는 것이 어쩐지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율변동이 심한 현재 시점에서 외화를 묵히거나 써버리는 것은 더 아까운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남은 외화를 사용해서 재테크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외화예금이다. 외화예금은 문자 그대로 환전없이 외화상태 그대로 예금하고 출금할 수 있는 예금이다. 미국 달러 외에 유럽연합 유로화ᆞ일본 엔ᆞ영국 파운드ᆞ캐나다 달러ᆞ호주 달러ᆞ뉴질랜드 달러ᆞ홍콩 달러ᆞ싱가포르 달러 등이 대표적인 외화예금 대상 통화들이다.
 
외화예금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예금통장을 만드는 것처럼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을 가지고 가면 간단하게 외화예금 통장을 만들 수 있다. 외환예금도 은행예금처럼 외화보통예금과 외화정기예금으로 나뉜다. 외화보통예금은 이자율은 낮지만 입출금이 자유로운 장점이 있으며, 외화정기예금은 일정 기간 돈이 묶이긴 하지만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매월 일정 금액을 적립하는 형식으로 외화예금 재테크를 하고 싶다면, 자유적립식 외화예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물론 현재 미국 금리가 제로 금리에 가까우므로 당장은 금리가 박할 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달러 가치가 변동하면 달러화 예금도 예전과 같은 2~3%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한 예로 과거에 은행과 연기금의 고위직을 거친 한 금융권 인사는 10년 전부터 엔화를 꾸준히 예치해왔다. 당시에는 엔화 예금 금리가 매우 낮고 가치도 떨어졌었지만 지난해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큰 이익을 보았다. 특히 2008년 초 수개월 동안 원/엔 환율이 20~30% 급등하며 바보스럽다고까지 여겨졌던 투자가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환율 상승은 고스란히 외화예금 가입자들의 수익률로 직결된다. 외화예금을 원화로 인출할 경우 1% 수준의 환전 수수료가 부과되지만, 환차익은 예금이자와 달리 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 다는 것도 장점이다. 예금 중인 달러화 등을 급하게 쓸 일이 생길 경우에 대비하려면 분할 인출 기능이 있는 외화예금 통장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예치 기간에 따라 5회까지 금리를 손해 보지 않고 인출이 가능한 통장이 나와 있고, 가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외환 거래시 예금에 따라 송금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등 우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물론 환율 하락으로 손실을 겪을 우려가 있는 것은 다른 투자와 마찬가지다. 통상적으로 해외 통화가 강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면 외화 예금에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환율은 변동성이 큰 만큼 리스크도 크다. 자신의 재테크 규모와 실제 외화 필요를 감안해서 운용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해외 여행을 마치고 남겨둔 외화를 다시 우리 돈으로 바꾼다면 외화를 살때와 팔때 수수료를 두 번 내게된다. 남은 외화에 수수료를 들이거나 집에 묵혀두느니 외화예금을 이용해 재테크도 하고, 언젠가 있을지 모를 또 다른 해외여행에 대비하는 것은 어떨까? 단, 동전은 입금되지 않으니 여행 막바지에는 되도록 동전을 사용하고 지폐를 보존하는 쪽이 좋겠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1초 만에 재무제표 읽는 법

고미야 가즈요시 | 김정환 옮김

다산북스 2010.07.01


조애리 기자 (
joaeri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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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업무상의 실수는 나름의 경험이고, 실무에서 차차 배워나가면 되기에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작은 실수를 치명적 실패로 만드는 잘못된 사과방법이다. 잘못된 타이밍,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의 말이 오히려 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 고개를 들고 자신의 잘못을 떳떳이 인정할 수 있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결정적 순간, 나를 살리는 사과의 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 성실한 태도로 사과한다.

사과하는 것은 모욕이 아니라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의 표현이다. 미국의 학자 수잔 자코비는 말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사과할 때는 땅을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눈을 보며 말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진심을 전달할 수 있다면서요. 어머니는 제게 솔직해야 한다는 훌륭한 사과의 방법을 알려주셨죠. 어떤 일이건 거짓으로 꾸며서는 안 되죠"

- 정정당당하게 사과한다.

사과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일종의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일이다. 그러므로 숨을 필요도 없고 창피해할 필요도 없다.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비굴한 태도는 사과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 최대한 빨리 사과한다.
사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 문제의 결과나 상대방의 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바로 사과할 수 없을 때에는 늦더라도 사과의 뜻을 꼭 전하는 것이 좋다. 

- 체면을 버리고 잘못을 인정한다.

어떤 사람은 잘못을 하면 갖가지 이유로 자신을 보호하고 행여 체면이라도 깎일까 봐 끝까지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체면을 세우면서 하는 사과는 오히려 역효과만 낳는다. 잘못했을 때는 먼저 용감하게 잘못을 인정해야 상대방도 관대하게 용서해줄 수가 있다. 

- 몸으로 잘못을 인정한다.
보디랭귀지는 내면의 진실한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입으로만 잘못을 시인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때로 보디랭귀지에서 드러난다. 상대방이 신경 쓰는 것은 사과하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태도다. 태도가 진실할수록 사과의 말도 진실하게 들린다. 

- 간단하게 일의 경과를 설명한다.

구구절절하게 변명할수록 상대방의 양해를 얻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사과를 할 때는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 일의 경과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방도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능력이 닿는 한 잘못은 빨리 바로잡는다.
자신의 잘못으로 상대방에게 비난을 받을 때는 반드시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 능력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면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한다. 

- 해명하기 전에 사과부터 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해명하기 전에 우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순서다. 할 말이 있을 때는 충동적으로 말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겸손하게 말한다. 

- 말이 어려우면 다른 방법을 찾는다.

차마 말하기가 쑥스러울 때나 상황과 장소 때문에 말로 사과하기가 어려울 때는 다른 방법으로 사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꽃을 보내거나 사죄의 동작을 취하고 눈빛을 보내보자.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나의 미래를 바꾸는 힘 습관

쑤춘리 | 김락준 옮김

예문 2007.09.01


민혜영 기자 (
mumu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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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보수적 사회'라고 하면 여성에게 정숙과 절제를 요구하고, 성적인 어필을 억압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특히 양갓집 규수들이 외출도 마음대로 못 했던 조선시대 후기라면 더욱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통념과는 반대로,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가면서 사회가 보수화될수록 여성 한복은 점점 에로틱한 실루엣을 갖게 된다.

 조선 전기와 후기 여성의 복식. 조선 전기의 상하 1:1 비례, 
 H-실루엣에서 후기 상박하후의 실루엣(기녀의 삼회장저고리)으로의 변화를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그림. ⓒ소나무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못지 않았으며 외출도 자유로웠던 조선 전기, 여성 한복은 저고리의 길이가 길고 속옷이 단촐해서, 겉보기에는 밋밋했지만 활동하기는 편했다. 하지만 유교가 서민 생활 깊숙이 자리 잡게 된 조선 후기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은 폐쇄·억압된 사회 속에서 경제권과 독립적 지위를 잃고 남자에게 의존해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활동능력보다는 남자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의 복식은 이성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도구로 발전하게 된다.
저고리는 작고 몸에 꼭 맞게 변해 여성의 상체를 가녀리고 앳되어 보이게 하고, 풍성한 치마와 대조를 이루어 한층 에로틱한 실루엣을 만들었다. 머리엔 검고 큰 가체(加髢)를 얹어 풍성하게 만든 후 갖은 보석으로 장식했는데, 이 역시 하얀 피부, 가녀린 상체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 후기 여성의 가체, 단소화된 저고리.
여성 복식에 에로틱한 면이 강조된다. ⓒ소나무

이러한 실루엣을 내기 위하여 각종 속옷이 발달하게 된다. 즉,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져 허리에 입던 치마도 차츰 가슴 쪽으로 올라가고, 가슴을 더욱 납작하게 만들기 위한 허리띠(아래그림, 좌), 거둠치마(치마를 걷어 올려 속바지를 드러낸 옷)등이 유행한다. 속옷이 겉으로 드러나게 됨에 따라 속옷 바지의 배래선이 곡선으로 변하고, 바짓부리의 아래쪽을 더 곱게 누빈다든가 더 좋은 옷감을 쓰는 등 속옷의 원래 기능을 넘어서 장식적이고 보여주기 위한 옷으로 발전한다.


여성의 허리띠(가슴 가리개). ⓒ소나무



거둠치마와 장식화된 속옷 바지. ⓒ소나무



여성의 속옷바지. ⓒ소나무


전통적으로 패션은 상층 계급으로부터 하층 계급으로 전파되어 왔다. 서민들로서는 그들이 동경하는 계급의 옷을 부러워하고 따라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조선 전기에는 계층 구별이 엄격해서 신분에 따라 복식 착용이 제한되었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경제가 발전하면서 상하 계층의 복식이 혼용되기에 이른다. 이전에 엄하게 제한되던 상층 계급의 복식을 하층 계급에서도 입기 시작한 것이다.

양반층만 입을 수 있었던 삼회장저고리를 기녀들도 입게되었고, 최상층에게만 허용되던 가체는 부유층이 늘어난 조선 중기부터 부녀자들 사이에서 폭넓게 유행하여 후기로 갈수록 그 크기가 더욱 커지게 된다. 특히 조선 후기 여자의 가체는 집 열 채를 호가할 정도로 값이 비쌌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각종 금은보화로 장식한 떨잠, 머리꽂이 등을 장식하여 사치로 인한 폐단이 심했다.

이는 사회 기반 산업인 농업의 발달로 상거래가 활발해지고 경제가 활기를 띠는 과정에서 자본을 축적한 새로운 계층이, 본인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신분 질서로 제한되어 있는 계급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면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인다.

반면에 상향 전파도 동시에 일어난다. 천한 신분인 기녀들의 복장을 상류층도 입게 된 것이다.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사람들의 미(美)에 대한 욕구도 높아졌다. 동시에, 유교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 때문에 생활에 자유가 없었던 양반 계층 여성들은, 별 제재 없이 맘껏 멋을 내며 자유로운 생활을 누렸던 기녀들의 복식을 동경하여 모방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거둠치마이다. 원래 노동을 위해 치마를 걷어 입던 하층 계급의 입음새가 남성들의 시각을 자극하기 위한 도구로 변형되고, 이것이 다시 상층 계급까지 유행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여성 복식에 에로틱한 면이 강조된다. ⓒ소나무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인가

최준식|윤지원|이춘자|허채옥|이강민

소나무 2010.06.25


정다운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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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취업문을 어렵게 돌파한 신입사원들은 각자 포부와 야망을 품고 회사에 첫발을 내딛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잡무의 산 뿐이다. 복사, 커피타기는 기본이고 짐 나르기, 정수기 물 갈기, 은행 심부름, 우체국 심부름... 허드렛일은 전부 막내의 몫이다. ‘대학 나와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한숨이 나오지만 동기들도 다 같은 처지니 하소연 할 곳도 없다.
하지만 하찮게 보이는 잡무 담당이 오히려 일을 배우고 회사에 적응할 최고의 환경이라는 것을 알면, 잡무를 보는 눈이 예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같은 잡무 다르게 하는 세 가지 관점, 사례별로 알아본다.


잡무, 일을 배울 절호의 찬스다
-회사원 조씨는 입사해서 하루에 커피 심부름만 60잔, 복사만 5시간을 했다. 그는 "커피 심부름, 복사가 무슨 업무냐고 푸념했지만 신기한 건 그렇게 3개월이 지나니까 웬만한 일은 다 알게 됐다"며 "특별히 배우지 않은 일까지 알게 되었다"고 신입사원 시절을 회상했다. 커피 심부름을 하면서 상사들의 면면을 익혔고 잠깐씩 엿들었던 말들로 회사의 돌아가는 상황도 금세 알 수 있었다.
-유명 케이블 방송 업체에 입사한 이씨. 편성 업무를 맡고 있었지만 주요 업무 외에 영업사원들의 전표 처리까지 맡아서 해야 했다. 처음에는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이 회사에 들어왔나 하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전표처리 업무를 몇 달간 하면서 팀 내의 '돈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나름 ‘스펙’을 쌓아놨을지는 모르지만 회사에서 신입사원은 그냥 초보일 뿐이다. 사람 이름부터 업무 하나하나까지 모두 새롭게 배워야 할 일뿐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붙들고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회사에는 없다. 이럴 때 새로운 환경과 업무를 익히기에는 잡무만큼 좋은 일거리가 없다. 물론 멍하니 하라는 일만 한다고 익혀지는 것은 아니다. 눈치껏 할 일을 찾아다니면서 어깨너머 공부를 해야 한다.

현장감각, 신입 시절에 키워라

-대형 마트에 취직한 권씨는 오피스 대신 현장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매장 점퍼 차림으로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이 양복 입은 오피스맨들과 비교되어 괜한 자격지심에 의기소침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 동안 매장에서 신입 시절을 보내다 보니 누구보다 대형 마트 유통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권씨는 현장을 겪지 않았다면 고객과의 소통법, 협력사원들의 관리 방법, 물류의 중요성 등을 쉽게 체득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사원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까지 오른 성공한 기업인들도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이구택 포스코 전 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포항제철에 입사한 후, 사원 시절을 공사 현장에서 보냈다. 콘크리트 작업장에서 밤을 새기 일쑤였고, 밤새 콘크리트를 실어 나르는 레미콘 기사들의 차에 동승해 그들이 졸지 않게 잠을 깨워주곤 했다. 그렇게 4년을 보내며 그는 책에서 배울 수 없었던 살아 있는 공부를 했고, 이것은 이후 회사생활 내내 큰 자산이 되었다.

장교로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사병만의 속사정이 있듯이, 평사원 시절에만 접할 수 있는 경험과 분위기가 있는 법이다. 여러 거래처와 고객들이 직접 오가는 현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입사하자마자 현장에 떨어졌다면 오히려 행운으로 생각할 일이다. 흔히 ‘감각’이라고 부르는 능력은 실제 일 돌아가는 곳의 분위기와 사람들을 몰라서는 결코 키울 수 없다.

잡무야말로 돋보일 기회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한 임씨. 하지만 상사가 시킨 일은 복사하기였다. 두툼한 서류 뭉치를 안고 복사기 옆에 우두커니 서서 복사만 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복사기를 돌리며 멍하니 있던 어느 날 상사가 다가왔다.
"○○씨, 지금 복사하고 있는 거 말이야. 무슨 내용이야?"
"…"
상사가 허를 찔렀다. 임씨는 복사를 하면서 괜한 시간만 때운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관련 업무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 후 자신의 불찰을 자책하며 잡일 속에도 배울 게 있다며 되뇌었다.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국내 유명 회계법인에 입사한 이씨. 꿈에 그리던 회계사가 되었지만 막상 처음 한 일은 조서 박스 정리, 보고서 검사 등 단순 업무 일색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음에는 울컥했다. 하지만 그는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대신 사소한 일이라도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단순히 박스 정리만 할 게 아니라 보고서 내용을 꼼꼼히 살폈고, 시험 준비를 하면서 배웠던 내용이 실무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기억해 두었다. 결국 그의 태도는 선배들의 눈에 띄었고 이씨는 동기들 중 제일 비중 있는 일을 맡을 수 있었다.

잡무는 누가 하나 똑같은 일이라고? No! 절대 그렇지 않다. 일상적인 업무일수록 잘못하면 바로 표가 나고, 빠르고 꼼꼼하게 처리하면 많은 사람의 눈에 띄게 된다.

딴에는 실무에서 실력을 보이고 싶겠지만, 결국에는 신입사원, 능력은 다들 고만고만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는 잡무야말로 자신을 어필할 기회다. 뭐니뭐니해도 신입사원의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잡무는 신입사원에게 숙명과도 같다. 잡무를 받고 푸념만 하기보다는 이 일을 경험과 배움의 기회로 삼을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 득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잡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순간 스스로 잡부가 될 뿐이다. 긍정적인 사고로 매사에 의욕적으로 임한다면 일의 경중을 떠나 나중에는 모두 자기 재산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여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신입사원필살기

박희진 외 머니투데이 산업부

메디치미디어 2010.04.05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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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우리가 알던 공부법은 모두 틀렸다.
곽세운이 말하는 '대한민국식' 영어 공부법 

한국 영어만 생각하면 숨이 막혀온다. 60~70년 동안 문법 위주 방식으로 가르쳤던 대한민국의 영어교육 방향이 틀렸다는 것이 확실히 드러났다면 이 방식에 대해 재고해볼 만 한데 무슨 신앙심을 가진 듯이 종전의 방식대로 계속해나간다.

대부분의 학원∙학교들은 문법60~70% 독해30~40%의 비율로 영어 공부를 시킨다. 이것은 지난 수십 년간 변함이 없는 비율이다. 학생들에게는 입을 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눈으로만 문제를 푼다. 가장 기본적인 인식의 전환은 이루어져 있지 않고 한국인의 영어에 가장 큰 장애가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가 일치되지 않는 것이 진짜 큰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 장애물을 없애기 위한 대책에 대한 견해도 일치되어 있지 않다.
앞에서 말한 가장 큰 장애는 우리말의 어순이 영어가 속하는 인도유럽어족의 어순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순이 다르니 하나씩 하나씩 문법에 따라 조립을 해야 한다. 그러나 말하는 것을 조립하는 것은 허공에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한 줄 이상을 조립하는 것은 불가능해져 버리고, 간단히 말하다가는 포기하고 말게 된다.  

90년대 말 미국 출장을 여러 번 가면서 조립을 하는 수준으로는 절대 영어를 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조립을 하는 지침서에 해당하는 문법은 폐기하고 자동적∙반사적으로 문장이 나오도록 연습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큰소리 영어 학습법을 고안하게 됐다. 
 

문법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대부분 직독직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문장을 쪼개서 부분 부분 해석한 후 합쳐서 전체의 뜻을 파악하도록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잘못된 습관이 들게 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에 나오는 한 문장을 예로 들어 보자.

“He was standing very still, holding it tightly with both hands while the crowd pushed and pulled all around him.”

이런 문장이 있으면 문법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분들은 이렇게 끊어서 해석하며 설명한다.

“그는 서 있었다/ 아주 조용히/ 그것을 양손으로 꽉 잡고서/ 군중들은 밀고 당기는 동안에/ 온통 그의 주변에.”
이렇게 한 다음에 이것을 합쳐서 “그는 온통 그의 주위에서 군중들이 밀고 당기는 동안에 그것을 양손으로 꽉 잡고서 아주 조용히 서 있었다”라고 해석해준다.
이렇게 나누어서 해석한 다음에 합쳐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전혀 직독직해가 아니며 영어를 이런 식으로 하면 기본적으로 영어를 영어로 이해할 때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큰소리 영어학습법은 완전히 다르게 알려준다. 해설을 한꺼번에 해주는 것이다. 즉 “그는 온통 그의 주위에서 군중들이 밀고 당기는 동안에 그것을 양손으로 꽉 잡고서 아주 조용히 서 있었다”라고 한 번만 쓱 말해줄 뿐이고, 아주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조금 더 해설을 해줄 뿐 세세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 학생들은 어떻게 부분 부분의 뜻을 알게 되는가? 그날 한 것을 일곱 번 내지 열다섯 번 큰소리로 읽으면 그때 부분 부분의 뜻이 더 쉽고 더 빨리 터득된다.
이렇게 스스로 의미를 터득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끊어서 해석하지 않고도 영어를 바로 영어로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영어를 가르치는 대부분의 분들이 부모님과 학생들에 대해 상담할 때 대부분이 이렇게 말한다. “문법을 배워야 영어를 체계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면 소위 문법에서 도사인 강남, 분당, 목동, 평촌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분들 또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분들은 그렇게 체계적으로 문법을 배워서 알고 있어서 쓰기와 말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주 악의적으로 해석한다면 문법 자체가 사기일 수도 있다. 국어 문법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거리낌 없이 국어를 쓰고 말하고 듣고 읽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서 국문법의 용언∙어간∙어미∙형태소 등을 배우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불규칙동사 등에 대해서 배우면 그 쉽던 국어가 갑자기 낯설고 어려워진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식 영어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영어교육에서 없어진다면 학생들이 영어로 인해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오히려 영어로 인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데도 영어가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곽세운

서른여덟에 영어를 시작해, 영어 공부를 해보지도 않은 세 자녀를 6개월 만에 동년배의 원어민 수준으로 끌어오린 사람이 있다. 영문법은 완전히 배제하면서 철저히 입으로만 익히는 이 영어 학습법을 통해 자신의 두 자녀를 세계적인 명문대학에 입학시켰고 한 자녀는 유사자폐를 앓고 있음에도 토익 만점을 받는 결과를 얻었다.또한 이 방법으로 지도한 학생들을 민사고, 국제중 등 명문학교에 입학시켰다. 최근 그가 그동안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영어 학습의 노하우를 엮은 책을 출간했다.  



<이 기사는 다산북스와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큰소리 영어학습법

곽세운

팝콘북스 2010.02.08


정다운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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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모멸, 반복되는 '죽음의 이야기'
철학가 사사키 이타루가 말하는 1Q84 - 이 소설은 문학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이 소설은 잘못되어 있다. 픽션에 '옳고 그름'이 문제가 되는가 라는 당연한 의문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의문 이전에 이 소설은 결정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소설이다. 왜 그럴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전에 옴진리교 사건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또한 옴진리교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가 전했던 강력한 이야기에 저항할 수 있는 이야기, 원리주의적인 컬트 집단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그것이 자신과 같은 소설가의 책무라고 했다. 진지한 발언이며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우선 이 점을 확인하고 들어가자. 소설에 나오는 '선구'처럼 신좌익 붕괴 이후 출현한 사이비교단에 공통된, 특히 옴진리교에서 전형적인 형태로 발언되는 언설이 있다. '바르드의 인도'라는 세뇌 비디오에서 아사하라 쇼코의 말, "너는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절대로 죽는다. 죽음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언설이다. '어차피' 죽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죽음의 공포'를 부추겨서 행동으로 몰아세우는 이야기다. 더구나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행하는 '어떤 것'도 사실 '죽음' '절멸'과 표리일체인 구제를 위해 존재한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음과 절멸인 것이다. 본래 종말론은 이 세계에 끝이 있다는 사고방식이기에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종말이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종말론이라 이름한다. 하지만 옴진리교적인 종말론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종말이 오기를 바란다. 그들의 논리 근저에 흐르는 것은 "어차피 죽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죽고 싶다. 그리고 내 죽음과 이 세계 전체의 절대적인 죽음, 즉 멸망을 일치 시키고 싶다"는 기묘한 욕망이다. 자신의 죽음과 세계의 죽음이 일치되고 '모든 것'의 종말이 '하나'가 된다는 꿈같은 절대적인 향락의 순간, 그것이 누구나 바라는 종말의 순간이라고 한다.

죽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선동함으로써 죽음으로 더 나아가는, 그리고 스스로의 죽음과 세계의 멸망이 일치하는 절대적 순간으로 이동한다. 이것은 나치적인 언설이다. 토마스 만은 일찌기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나치스의 본질이란 전쟁을 위한 전쟁, 스스로가 내포된 죽음과 멸망을 위한 전쟁이다"라고 말이다. 푸코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도 나치스는 결국 '자살'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더구나 세계와 함께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히틀러는 텔레그램71호에서 이 세계 다른 모든 민족을 멸망시킴과 동시에 "독일인의 생존조건을 파괴하라"고 명령한다. "내 죽음의 순간이 모든 타자, 모든 세계의 죽음, 즉 멸망의 순간과 일치한다"는 명제를 '절대적 향락'으로 꿈꾸고 있었다. 이 죽음의 이야기, 죽음을 선동하는 이야기, 그리고 모든 죽음이 일치하는 순간으로 가는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항해야 하는 이야기의 전모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옴진리교적인 이야기에 대항할 것이라고 확실히 말했다. 그러므로 이 죽음의 이야기에 대항해야 한다. 그렇다면《1Q84》는 과연 그런 소설인가? 그렇지 않다. 완전히 거꾸로다. 이 '죽음의 이야기'는 반복된, 그리고 강화된 죽음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주인공 중 하나인 아오마메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이 세계의 생을 모멸하며, 반대로 그것을 해소해 줄 죽음과 멸망을 사랑하며 그 속에 빠져 있다. 어느 노부인이 이끄는 단체에 속해서 아오마메는 살인을 한다. 이 단체는 강간이나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한편, 그 행위자인 남자를 차례로 죽여 간다. 아오마메는 그 집행자로서 사람들을 죽인다. 아이스픽이라는 지극히 남근적인(팔루스, Phallus) 무기로 남성을 살해하는 팔루스 사냥을 한다. 그리고 아오마메는 이따금 롯폰기 등지의 바에서 남자 사냥을 한다. 그 파트너가 된 아유미라는 경찰도 권총을 무척 좋아한다. 따분하고 평범한 '팰릭 걸'(서구의 터프한 전사적인 여성들에 반해 일본의 세일러 문을 비롯한 전투미소녀를 구별하여 전자를 팰릭(Phallic) 마더, 후자를 팰릭 걸이라 한다. 팰릭은 '팔루스=페니스를 가진'이라는 의미로 일종의 완전성을 상징한다 -역주)들의 이야기다. 그 자체는 그냥 괜찮다고 해두자. 하지만 '피로 범벅된 팔루스적인 여성들에 의한 팔루스 사냥'에 대해 두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치만 아오마메 씨 (……) 이 세상은 이치도 안 통하고 친절한 마음도 부족한 것 같아"/"하지만 이제 와선 교환도 안 되지"/"반품유효기간은 벌써 지나버렸고" / "영수증도 내다버렸어" / "그래도 뭐 상관없잖아. 이런 세상 따위 눈 깜짝 할 사이에 끝나버린다구" 아오마메가 말했다. "그거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 "그리고 왕국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거야" / "아, 어떻게 기다려" 아유미가 말했다.

이런 내용은 두 번 반복된다. 아오마메는 종말과 죽음에 빠져있다. 그녀는 항상 말끝에 '죽고 싶다'고 하며 무척 강하게 '삶'을 모멸한다. 1980년대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향수하며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데도 자신의 인생을 '의미 없고 역겨운, 남겨진 찌꺼기 같다'고 한다. 노부인의 의뢰로 '선구'의 리더를 살해해야 하는 힘든 임무 앞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내겐 잃을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일도 이름도 도쿄에서의 지금 생활도, 내게는 별반 의미가 없는 것들이에요"라고 말이다. 공허하고 역겨운 삶에 대한 묘사는 그 밖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아오마메는 삶을 경멸하고 죽음에 경도되어 있으며 종말을 동경하고 팔루스적인 흉기로 팔루스를 가진 남성을 살해하고, 그러다 지치면 팔루스를 사냥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유미는 마음속에 '결락'을 안고 있다고 묘사된다. 그 결락을 메우기 위해 죽음과 팔루스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오마메에게는 하나의 구원이 존재한다. 아유미와 달리 자신 속에는 결락이 아닌 '사랑'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열 살 때에 종교단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로 따돌림을 당했던 자신을 감싸 준, 또 하나의 주인공 덴고에 대한 20년 동안의 사랑이 있다고 한다. 

삶의 모멸과 죽음과 종말에 대한 갈망, 그리고 팔루스 향락에 덧칠된 아오마메를 그 세계에서 구제해 줄 유일한 것은 덴고에 대한 사랑이다. 죽음과 종말 이야기의 탈출구로서 그녀는 이미 사랑을, 사랑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덴고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아오마메는 항상 죽음을 말한다. 그에게 안기면 "그 자리에서 당장 죽어도 상관없어, 정말"이라고 한다. 어쩌다가 그를 만나게 되면 "어쩌면 그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몰라. 헤클러&코흐로 그를 우선 쏴 죽인 후에 내 뇌수를 쏴서 뚫어버릴 지 몰라" "하지만 대신 그를 위해 죽을 수 있어. 그걸로 됐어. 난 웃으면서 죽을 수 있어"라고 말이다. 그녀의 내부에서 덴고에 대한 사랑은 결정적으로 죽음과 결부되어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1Q84》는 이야기가 전개됨으로 써 다른 현실이 창조되는 테마로 일관되어 있는데,《1Q84》라는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여겨지는 <공기 번데기>라는 소설이 존재한다. 그것은 덴고가 후카에리의 원고를 철저하게 리라이팅해서 태어난 소설이다. 그 소설을 아오마메가 읽는 장면이 나온다. 그 소설 바로 그 장면에서 아오마메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덴고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 있다, 그의 몸속에 있다, 그의 체온으로 감싸여, 그의 심장박동에 이끌리고 있다, 그건 분명 그의 문체일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바로 뒤에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것이 왕국이야,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되었어. 언제라도."

결국 아오마메의 덴고에 대한 사랑이란 죽음이다. 아오마메의 이야기는 한없이 피로 얼룩져 죽음과 팔루스로 갇혀 버린다.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굳이 병렬해서 보여주려는 하루키 특유의 아이러니컬한 표현이 이 작품 속에도 나타난다. 아오마메는 '가정내 폭력을 휘두르는 비열한 남자들'과 '편협한 정신을 가진 종교적 원리주의자들과 똑같을 만큼'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으로 '변비'를 든다. 아오마메는 가정내 폭력을 휘두르는 비열한 남자들을 살해하고 종교적 원리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그렇다면 변비 때문에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루키적인 아이러니는 이 지점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다. 재미있지도 않고 감흥도 없다. 또한 하루키는 아오마메의 입을 빌어 팔루스로의 직접적인 폭력이 '세계의 종말'이라고 한다. 가벼운 농담일지 모르지만 지극히 썰렁하기만 하다. 아오마메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 죽음, 팔루스, 종말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증거로서만 유효할 뿐이다.

다짐해두지만, 결코 등장인물의 행동이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아오마메의 행동이나 사상이 정치적으로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이 소설은 정치적이나 윤리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사하라 쇼코적인 죽음의 이야기에 대항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아오마메 이야기에는 어떤 저항도 없었을 뿐 아니라 옴진리교의 죽음의 이야기를 강화시키기까지 했다.

이제 덴고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한 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주인공이며 아오마메를 구제해 줄 사랑의 대상인 덴고가 하는 일은 '선구'의 리더가 하는 일과 완전히 동일하다. 아오마메는 '선구'의 리더를 살해하러 갔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묘한 공감이 싹튼다. "당신을 살해하지 않아도 될 1984년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말해버릴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 후카에리의 아버지이기도 한 리더는 아오마메의 덴고에 대한 사랑도, 어느 시점에 갈라져 나온 '1Q84'년의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아오마메가 깨닫고 잇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죽이러 간 것은 그가 자신의 딸인 후카에리를 포함한 교단의 나이 어린 소녀들을 강간했기 때문이지만, 실제로 그의 말을 들어보면 후카에리를 비롯한 소녀들은 '공기 번데기'에 의해 만들어진 복제품이었다. 더구나 그의 행위는 강간이 아닌 '다의적인 교접'이며 그럼으로써 마치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리틀 피플'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이것은 '퍼시버(지각자)'인 소녀들과 '리시버(수신자)'인 리더의 교접에 의해 이루어지며 수신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덴고도 그와 동일한 행동을 한다. 후카에리라는 퍼시버와 덴고는 그야말로 교접을 했다. 리라이팅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말이다. 그럼으로써 현실 세계 그 자체를 생성해내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점도 동일하다. 분명 '리틀 피플'이 만들어낸 '공기 번데기'에 의해 후카에리의 실체인 '마더'와 그 복제품인 '도터'는 분열하며, 전자는 덴고와 후자는 아버지인 리더와 '교접'하는 것이다. 하지만 후카에리 자신이 "나는 어디에선가 도터와 바뀌어버린 것 아닐까"라며 자신과 도터의 차이가 부정확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므로 '동일'하다.

'동일'한 행동을 한다는 말은 '교접'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더는 자신의 딸(의 도터)을 강간한다. 즉 '교접한다'. 요컨대 이는 근친상간이다. 이 때 그는 리틀 피플의 의지에 "거역할 수 없었다" "내가 그것을 원한 게 아니다"라며 수동성을 강조할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후카에리와 '교접하는' 장면에서 덴고는 '심한 무력감' '자신의 의사로……컨트롤할 수 없다'고 말하며 '모든 것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체는 완전히 마비되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고 묘사된다. 아오마메도 어릴 적부터 가입되어 있던 '증인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인생을 그렇게 보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결국 이곳에서는 모두가 피해자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옛날에 자신이 가해자가 되는 상황에 공포를 느낀다고 했었다. 이 소설에서는 모든 가해자 전원이 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수동적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진술한다. 모두 '시스템'에 종속된 '계란(하루키의 예루살렘상 수상식에서의 연설 '높고 단단한 벽과 그에 부딪쳐 깨지는 계란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계란 쪽'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 계란이 강간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데도 말이다.

자네는 죽으면 덴고는 구제된다는 리더의 말을 믿고 아오마메는 마지막에 자살을 한다(자살미수일 가능성도 남아 있지만). 사랑 때문에 하는 자살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죽음의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 내지는 사랑을 상실한 이야기로 대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한성의 이야기,
'어차피 당신은 유한하다, 때문에'라는 위협의 이야기다. 더구나 앞에서 서술한대로 아오마메의 사랑은 죽음 그 자체다. 그 사랑의 대상인 덴고는 러더와 완전히 동일한 행동을 한다 ─ 결국 그 지점에서 중요한 시선이 드러난다.《1Q84》의 세계, 달이 두 개 떠 있는 세계는 덴고와 후카에리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의해 창조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앞에 나왔던 에피그램(epigram: 경구, 또는 짧은 풍자시 -역주)이 말하는 것처럼 "이곳은 보여지기 위한 세계, 모든 것이 다 만들어진 것, 하지만 나를 믿으면 모든 것이 진짜가 된다"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것이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야말로 아사하라 쇼코의 말이 현실로 나타나 사람을 죽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덴고와 후카에리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의해 만들어진 《1Q84》속 '현실'의 '진짜' 세계도 결국 공포와 죽음의 세계이며 죽이거나 살해당하며 죽음을 열망하고 종말을 갈망하는 것이다. 결국 덴고의 이야기도 '죽음의 이야기'이며 아사하라의 이야기와 전혀 다르지 않다. 조금만 더 부언해 보자.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은 '죽음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반복하고 강화한 소설을 '들려주고' 그것을 전 세계에 산포함으로써 어떤 현실을 만들어내려는 것일까? 거칠게 표현한다면, 하루키가 하는 행동은 아사하라 쇼코의 행동과 다르지 않다. 덴고가 하는 행동이 리더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몇 번이라도 반복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윤리적 정치적으로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현실을 만들어낸다는 '문학' 전쟁에서 스스로 대항하겠다고 확언했던 죽음의 이야기를 반복 강화했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은
문학적으로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무릇 이야기로써 이야기와 싸울 수 있는가, 그것은 20세기 문학의 유산을 무시하는 행동이 아닌가. 하고 싶은 말은 아직 많지만 이쯤에서 자중하겠다. 그런데 이 소설은 구성상 BOOK3를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루키 스스로도 그 다음을 쓸 것인지 곰곰이 생각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BOOK3는 나올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사하라 쇼코에게 대항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단언한 이상, 이 소설을 이렇게 끝맺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소설가로서 그의 의무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세계적 작가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가 다음 권에서 내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고 아사하라적·원리주의적·나치스적인 죽음의 이야기를 전복시킬 수 있는 진정한 소설을 완성시킬 것이라 믿는다. 그 완성을 바라 마지않는 바다.
 


지은이 사사키 이타루(佐佐木中)
1973년생. 철학가, 이론종교학가. 저서로《야전(夜戰)과 영원: 푸코·라캉·르장드르》등이 있다. 
 



<이 기사는 (주)도서출판 예문과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

가토 노리히로 | 박연정 옮김

예문 2009.12.31


정다운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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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한 남편과 아내가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원하던 이 부부는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는 마녀의 집 정원에 탐스럽게 자란 상추(라푼첼)를 보고 너무 먹고 싶어졌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마녀의 정원에서 상추를 뽑아다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며칠 후 아내는 또다시 상추가 먹고 싶어 괴로워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다못해 다시 한 번 마녀의 정원으로 상추를 뽑으러 갔다가 그만 마녀에게 들키고 말았다....

▲ 동화는 호러에서 시작되었다. 

위 이야기는 1812년 12월 25일 첫 선을 보인 독일 그림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12번째 이야기의 시작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등장한 그림 형제의 이 책은 전 세계 독자들이 어린 시절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직접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책의 표제에서 볼 수 있듯 그림 형제도 민담의 전달과 수용은 가정에서 우선되어야 하며, 그 대상은 어린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어떤 경우라도 고대의 민족적 자산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야콥 그림(Jacab Ludwig Karl Grimm)의 신념은 편집의 중요 원칙이기도 했다. 그러나 1812년 출간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은 너무 재미가 없었으며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이 책의 출판을 고대하던 이들로부터도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원문을 훼손한다는 야콥 그림의 우려에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적 요구에 따라 빌헬름 그림(Wilhelm Karl Grimm)의 주도하에 7차례 증편과 개편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1815년의 2집부터는 민담에 알맞은 어법과 통속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문구 등 대중의 언어와 행동을 수용하는 민담양식들이 점점 구체화되었다. 1857년 최종적으로 빌헬름 그림의 아들 헤르만 그림(Herman Grimm)에 의해 200편의 민담과 열 편의 어린이 성담이 수록된 지금의 최종본이 출간되었다.

▲ 그림형제의 12번째 이야기: <라푼첼>

옛날에 한 남편과 아내가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원하던 이 부부는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는 마녀의 집 정원에 탐스럽게 자란 상추(라푼첼)를 보고 너무 먹고 싶어졌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마녀의 정원에서 상추를 뽑아다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며칠 후 아내는 또다시 상추가 먹고 싶어 괴로워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다못해 다시 한 번 마녀의 정원으로 상추를 뽑으러 갔다가 그만 마녀에게 들키고 말았다. 미녀는 처음에는 무섭게 화를 냈으나, 남편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상추를 가져가는 대신 아이를 낳으면 자신에게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드디어 아이가 태어나자 마녀는 아이에게 '라푼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데리고 가버렸다.
라푼첼은 아주 길고 예쁜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로 자라났다. 그러나 라푼첼이 열두 살이 되자 마녀는 소녀를 숲 속의 문도 계단도 없이 꼭대기에 조그만 창문 하나만 있는 높은 탑 안에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탑으로 올라갈 때면 밑에서 "라푼첼, 라푼첼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다오."라고 외친 후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타고 탑으로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속을 지나던 한 왕자가 라푼첼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탑 아래까지 왔다가, 마녀가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타고 탑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마녀가 돌아가자 왕자도 "라푼첼, 라푼첼.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다오."라고 외치자 라푼첼의 머리카락이 내려왔다. 왕자는 라푼첼의 황금 머리카락을 타고 탑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 라푼첼은 낯선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으나 두 사람은 금세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라푼첼은 왕자를 따라 탑에서 내려가기로 약속하고 왕자에게 탑에 올 때마다 자신이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 비단실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다리가 다 만들어지기도 전에 라푼첼은 마녀가 왕자보다 더 무겁다고 무심결에 말하는 바람에 왕자의 존재가 발각되고 말았다. 화가 난 마녀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그녀를 황량한 땅으로 쫓아버렸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마녀가 걸어놓은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탑 위로 올라온 왕자는 라푼첼 대신 마녀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다시는 라푼첼을 볼 수 없을 거라는 표독한 마녀의 말을 듣고 절망한 나머지 탑에서 뛰어내려 가시에 눈이 찔려 그만 장님이 되고 말았다. 왕자는 풀과 나무뿌리로 연명하며 라푼첼을 잃은 슬픔에 잠겨 황량한 벌판을 방황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간 곳에서 왕자의 아들과 딸 쌍둥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라푼첼을 만나게 되었다. 라푼첼과 왕자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았으며, 기쁨과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라푼첼의 눈물이 왕자의 두 눈에 떨어지자 왕자는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왕자는 기쁜 마음으로 라푼첼과 쌍둥이를 데리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

▲ <라푼첼> 속 모티프 알아보기

<라푼첼>은 1812년 야콥 그림에 의해 처음으로 그림 동화에 수록되었다. 처음에는 왕자가 일인칭 주인공으로 서술되어 있었으나, 야콥 그림은 이야기를 민담에 어울리는 구조로 개작했다. 특히 <라푼첼>의 특징적인 문구인 "라푼첼, 내가 올라갈 수 있도록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줘."의 서술문을 "라푼첼, 라푼첼.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다오."의 노래로 바꾸고, 이 민담의 발생 시기로 추정되는 10세기나 11세기에 어울리는 리듬을 수용해 구전 민담으로서의 특성을 강화시켰다.
또한, 독일어로 '상추'를 의미하는 '라푼첼(Rapunzel)'은 ‘상추를 먹으면 임신이 된다'는 민간의 속설을 연상시키는 소재로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설적이라는 초판본의 지적을 받아들여 <라푼첼>의 경우에도 어린이를 고려한 언어와 문체상의 통일을 기하기 위한 수정이 이루어졌다. 1812년 판본에서 라푼첼은 "왕자와 즐겁게 지내던 어느 날, 이상하게 자신의 옷이 껴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빌헬름 그림은 1819년 판본부터 전후 문맥상 아무런 논리적 설명 없이 라푼첼의 임신 사실을 드러내는 이런 직접적인 어구 대신 "왕자와 라푼첼이 아내와 남편처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표현으로 수정했다. 또 두 사람의 비밀도 라푼첼 스스로 "고텔 부인, 당신은 젊은 왕보다 더 끌어올리기가 어렵군요."라고 말함으로써 라푼첼의 순진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사건의 진행을 유도하는 문장으로 수정했다.

여성의 머리카락은 여성성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특히 금발과 관련된 이미지는 최고의 여성성으로서 그림 동화의 여자 주인공들을 인증하는 표시로 폭넓게 수용되었다. '라푼첼'의 머리카락은 그림 동화에 등장하는 모든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자 주인공들을 한데 묶는 황금색 끈이라고 할 수 있다.

외견상으로 라푼첼을 괴롭히는 사람은 마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이를 포기한 사람은 아버지이다. 오히려 어린 라푼첼을 아름답게 키운 인물은 마녀였다. 그림 동화의 많은 이야기에 마녀가 등장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 마녀가 주인공을 죽이거나 갈 길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주인공을 돕거나 목표를 향해 곧바로 나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곤 한다.

 

<이 기사는 뮤진트리와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그림형제 독일민담

이혜정

뮤진트리 2010.01.21


정다운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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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4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한국 총 실업률은 3.5%이지만, 청년 실업률은 그 2배 이상인 8.3%에 달한다. 88만원 세대,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어렵게 취업하는 졸업예정자),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등의 신조어에서도 이러한 청년층의 취업한파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청년층 중에서도 취업 한파를 더욱 심하게 느끼는 계층이 있다. 바로 “순수 인문”을 전공한 학생들이다.
 



                           <취업 포털 사이트 ‘잡 코리아’에 올라온 4년제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모집 공고들>

취업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모집공고들을 보면, ‘상경계열 전공자’를 뽑는다는 글은 있어도 ‘인문계열 전공자’를 뽑는다는 글은 거의 볼 수 없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인문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역사학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박사과정 졸업 후 취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길은 물론 교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수직이 충분히 많지 않으므로 결국 일부는 다른 직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 전문 분야를 살리면서 취직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공학 분야 같은 경우 굳이 대학이 아니라도 연구소나 일반 기업에 들어가서 자신의 전공을 살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문학 전공자들은 40대 중반이 되도록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느라 고생하며 모멸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다. 

취업시장에서 ‘인문대생’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서 훨씬 더 낮다. 그러나 정말 '인문학’ 전공이 취업에 불리하기만 할까? 대기업 임원, 방송국 PD, 금융권 임원들 중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인문학’을 전공한 것, ‘인문대’를 졸업한 것이 실무에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현 코오롱 신사업기획팀의 이수영 상무에게 ‘인문대생의 강점’에 대해 물었다.

 
Q: 인문대생이 회사에서 가지는 강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인문대생이 가지는 강점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인문'이라는 게 인간에 대해서 공부하는 거잖아요. 저도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많이 읽고 세미나를 하고 그랬던 것 같구요.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사고의 깊이와 폭, 이런 것들이 인문대를 다녀서 더 많이 훈련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Problem Solving이라고 하죠? 매일매일 해결해야 하는 어떤 문제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회사는 매일매일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때 정확하게 큰 그림으로 보고 그다음에 깊이 있게, 정확하게 근본적인 핵심 이슈에 대해서 빨리 파악해서 해결하는 능력이 굉장히 많이 요구되죠. 그런 사고 능력,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아주 많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CEO들에게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경영학 책을 읽는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고 역사책, 철학책, 소설책 이런 것들을 읽는다고 하죠.
 
Q: 딱 원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상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A: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경영에서 요구하는 능력은 리더십하고 창조적 사고 능력이에요. 왜냐하면 나 혼자는 일을 못하거든요. 여러 사람들이 같이 해야만 되는 것이고, 나 혼자 하면 천년만년이 돼도 못합니다. 조직, 즉 여러 사람이 같이 일하는 조직에서 여러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끌어주는 능력, 그게 리더십입니다.
 
매일매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이것은 이런 규정이 있어서 안 됩니다"라고 얘기를 하면 그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겠죠.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서 이렇게 보면 이렇게 해결할 수 있잖아요"라고 이야기를 해줘야죠.
 
그게 바로 창의성입니다. 회사에서 원하는 인간상은 리더십하고 창의성인데 그게 있어야 문제가 해결되고, 문제가 해결이 되면 사업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안 돼"라고 하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게 사업이라는 거죠.
 
리더십과 창의성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일하게끔 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나갈 수 있는 인문학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와서 그런 부분들을 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서 가장 원하는 사람이죠.


즉 기술적 능력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능력도 충분히 회사에서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적 능력은 토익점수나 자격증같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문학적 능력은 어떻게 길러질까?

인문대 출신(불어불문학 전공)으로서 금융계에 진출, 외환은행 부행장과 해외사업본부장까지 지낸 노찬 이수화학㈜ 상임고문은 사회 진출을 생각하는 인문대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사회가 원하는 인문대생, 갖추어야 할 자질이 있다
 
우선 대학시절에는 전공에 충실해야 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전공에 올인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에 나가서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를 미리 속단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인생은 지금 20대의 여러분이 상상하는 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공에 충실하지 않은 인문대생은 그 가치가 떨어진다
어느 회사에서 독일 현지법인에 파견할 직원을 뽑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독문과 출신의 직원이 응모를 했는데 "독일어 시 하나를 암송해보시오"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런데 그 직원은 단 한 편의 시도 암송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떤 인상을 받았겠는가? 연이어 물어보니 단지 독문과를 졸업했을 뿐이지 독일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독일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무늬만 독문과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독문과 출신을 보낼 필요 없이 경영대 출신 중에서 독일어를 조금 할 수 있는 직원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둘째, 외국어 서적을 최소 1만 페이지는 읽어야 한다. 

 
1만 페이지라고 하면 언뜻 그 분량이 잘 와 닿지 않을지 모르나, 300페이지짜리 책 33권으로 대학 4년 동안 1년에 8권 정도 읽는 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문대 졸업생 중에는 1만 페이지는커녕 1,000페이지도 읽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이 상당수 있으며 심지어는 500페이지도 채 읽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을 본 적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인문대를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인문대 출신이라는 장점을 포기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최소한의 권고량이다.       

                 
                   <다양한 분야의 외서들>
 

셋째, 목표를 정하고 일정한 금액의 돈을 모아보기를 권한다.
인문대생은 공부하는 분야의 특성상 돈, 경제, 경영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돈을 주제로 이야기하기를 썩 즐기지 않는다.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뭔가 통속적이고 저급한 주제로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문대생도 경제, 경영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결국은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대생이 경제나 경영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돈을 모아보는 것이다.

물론 "나는 등록금도 내가 벌어서 학교도 간신히 다니는데 무슨 돈을 모아 보란 말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당신 같은 경우야말로 돈을 모아보아야 한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벗어나려면 돈과 정면승부를 해야 하며 대학시절의 경험은 그것이 실패의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평생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실용만을 강조하고 있다. 대학조차도 취업률로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순수 인문’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문대’만의 장점을 살려 취업을 준비한다면, 바늘구멍 같다는 취업문도 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인문의 스펙을 타고 가라

이동진|주경철|표민수|이수영|노찬

사회평론 2010.05.12


조애리 기자 (
joaeri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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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여름방학이 시작되지만, 고3은 쉴 틈이 없다. 수능 100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능 100일 전 이라고 하면, 남은 시간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애매한 기간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문제풀이나 다양한 독서보다 암기과목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많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언어영역은 이 시기쯤 되면 포기하기도 한다. 이제 언어영역은 공부를 하건 안 하건 결국 점수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기하기에 수능에서 언어영역의 비중은 높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는 어떻게 언어영역 공부를 하면 좋을까?  EBS및 비상에듀
에서 언어영역을 가르치고 있는 추마에(추경문 선생님)은 이렇게 제안한다.

"수능 1교시는 언어영역, 80분 동안 총 50문제를 풀게 됩니다. 그 중에서 지문을 가지고 푸는 문제가 38문제 정도 되죠. 이 중에서 21문제 정도가 비문학입니다. 소위 말하는 독해 문제에서도 비문학이 문학보다 비중이 높은 편이죠. 게다가 독해가 아닌 쓰기, 어휘, 어법, 듣기 영역 문제를 모두 합치면 12문제(듣기 5문제) 정도인데 이 영역도 문학이 아닌 비문학 영역이기 때문에 실은 언어영역의 3분의 2가 비문학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비문학을 잡는 것이 언어영역의 승패를 가르게 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비문학을 잘 풀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 추경문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Q: 배경 지식이 없으면 비문학을 못 푸나요?

A: 비문학이 배경 지식 유무에 관계없이 지문, 문두, 답지만 잘 읽으면 누구나 풀 수 있습니다. 어려운 글을 많이 읽어 두고 배경 지식을 쌓는 게 도움이 전혀 안 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문 중심으로 공부하는 전략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큽니다. 우선 시간이 없는 고 3에게는 권하기 어려운 방법인 데다 배경 지식에 의존해 언어영역 비문학 지문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 자체가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수능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주제가 나올 거라 생각하고 평소에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Q: 그럼 평소에 어떤 연습을 해야하나요?




       <EBS,비상에듀 추경문 선생님>
            
    

A: 스스로 출제 유형을 분석해 보는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먼저 해야 될 것은 출제 위원들이 무엇을 어떤 식으로 출제하는
가를 이해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언어영역 만점을 받고자 한다면 급소 찌르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어영역이 공부한다고 점수가 잘 올라가는 과목인가요? 대부분 공부를 해도 올라가지 않고 공부를 안 해도 떨어지지 않는 과목이 언어영역이라고들 하죠? 그래서 미치겠다고. 아무리 해도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수능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무슨 시험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수능 언어영역은 기출문제 분석이 가장 중요합니다.

Q: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것만으로 과연 점수가 오를까요?

A: 물론입니다. 「언어의 기술」의 저자인 이해황씨는 첫 수능 언어영역이 4등급이었다가 3수를 하면서 만점까지 올린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그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수능 기출문제를 반복했습니다. 문제집 푸는 것을 줄이고 수능 기출문제를 지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정ᆞ오답의 근거를 찾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서로 다른 유형/영역에서 도출된 해법들이 서로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언어영역을 꿰뚫는 패턴을 발견하고 나니 언어영역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언어 공부가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지문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일다 보니 독해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갔습니다."

기출문제에서의 출제 원리, 출제자의 의도 파악하기, 오답 피하기 등 문제집 100권을 푼다고 해서 언어 성적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수능 기출문제 및 평가원 모의고사 교육청 문제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풀어나간다면, 방학이 끝나고 나서 언어영역 성적이 눈에 띄게 올라갈 겁니다.

수능까지 약 100여일이 남았다. 언어영역을 포기하지 말고, 추경문 선생님이 제안하는 대로 기출문제에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100일의 노력이 언어영역 2등급을 1등급으로 올려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조애리 기자 (
joari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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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만점 사자가족, 표정연기 클로즈업
 

사자라고 하면 위엄있게 초원을 어슬렁거리거나, '으르렁'하고 입을 쩍 벌리며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는 모습부터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자는 의외로 애교 넘치는 동물이다. 고양이과 생물로서는 드물게 무리를 지어 살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장난치는 아기사자. 사진 이종렬. ⓒ글로연

초원의 강자인데다가, 무리 속에서 비교적 안전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긴장이 적은 탓일까, 가끔은 생각도 하지 못한 여유롭고도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백수의 왕이라기엔 지나치게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아빠사자. 사진 이종렬.ⓒ글로연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아기사자. 사진 이종렬 ⓒ글로연

사진을 촬영한 이종렬 씨는 이제까지 MBC·SBS에서 수십 편의 아프리카 관련 다큐멘터리를 기획 연출한 국내 최고의 아프리카 전문가. 아프리카와 초원을 사랑한 나머지 10년이 넘도록 아프리카 17개국을 돌아다니다 2005년에는 아예 가족을 이끌고 탄자니아로 이사를 해 버렸다.

사진가로서의 역량과 탄자니아의 야생을 널리 홍보한 점을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최근 세계에서 두 번째러 세렝게티를 비롯한 탄자니아 국립공원을 10년간 무상출입 촬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 십 년에 걸쳐 촬영한 사진을 모아 저서 '아프리카 야생중독'을 출간하기도 했다.

 

하품하는 모습마저 귀엽기만 한 아기사자. 사진 이종렬. ⓒ글로연

 

'얼짱각'을 선보이는 아빠사자의 모습. 사진 이종렬. ⓒ글로연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였으며, 기사에 사용된 사진은 (주)하니커뮤니케이션즈와의 협의를 거쳐 수록하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아프리카 야생중독

이종렬

글로연 2010.06.10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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