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말: 이 글은 20년 동안 이루어진 프레디 머큐리와의 인터뷰 및 무수한 자료를 토대로 편집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가 뮤지션으로 활동한 전 기간에 걸쳐 이런저런 자리에서 직접 털어놓은 생각과 의견들이다. 프레디의 견해는 당연히 나이가 들면서 의미 있는 변화를 거쳤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변화들이 그의 이야기에도 반영되었다. 지금부터 독자들이 읽는 것은 전부 프레디가 직접 한 말이다.

 

 

보기 드문 순간. 뮌헨의 뮤직랜드 스튜디오에서 프레디가 열창하는 모습. 《원 비전》을 녹음할 때다.  

그렇다, 난 게이다. 온갖 짓을 다 해봤다. 하지만 여자와 하듯 남자와 사랑에 빠지진 못한다. 게이 파트너를 찾으려고 작정하고 외출하지도 않는다. 이 세계에선 진실한 친구를 찾거나, 그런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게이도 많고 여자들도 많다. 나이 든 남자들도 많다! 나에겐 5년 동안 동거한 메리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고 남자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폭넓은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가능한 멀리까지 가보려는 것일 뿐이다.


난 평범한 인간이다.
나도 그저 한 인간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난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이가 무대 위 나의 페르소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나의 참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다. 모두 나의 명성∙스타덤과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내 뜻과 반대로 된다. 난 관계를 원하지만 항상 그것과 싸워야 한다는 걸 느낀다. 내가 괴물을 만들어 낸 모양이다. 관계를 맺으려면 무대 위의 나를 인정해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 그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분리하기가 무척 어렵다. 내 인생에도 몇 번의 로맨스가 있었지만 다 슬프게 끝났다. 진정한 누군가를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들이 널 원하든, 팝 스타 프레디 머큐리를 원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성공했다고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말할 때도 있다. “아냐, 오늘은 슈퍼스타가 되기 싫어. 나 혼자 길거리에 나가 보고 싶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유명인이 되고 나면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저기요, 나도 실은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말하기 힘든 법이다. 



                               1986년 고양이 티파니와 함께. 프레디는 첫 솔로 앨범 《미스터 배드 가이Mr Bad Guy》를 
                               어머니도, 
아버지도, 누이동생도, 퀸 동료들도 아닌 바로 자신의 고양이에게 헌정했다. 
                                     "이 앨범은 내 고양이 제리에게 바친다. 또 톰과 오스카 그리고 티파니에게도,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머지는 다 꺼져라." 


난 상처를 입더라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마음속에 앙금을 품고 지내는 사람은 아니다. 배신당하는 그 순간 내 첫 반응은 이렇다. “나쁜 새끼, 나한테 걸리기만 해 봐라!” 하지만 그것도 차차 희미해져서 결국은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럴만한 가치도 없다. 가까운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모른 채 넘어갈 수 있었냐?”라고 묻는다.
글쎄, 난 원래 잘 속기도 하지만……멋진 사람이니까.


혹시 내 노래 <리빙 온 마이 오운>을 들어 보았는가?
그건 바로 나다. 혼자서 살아가되 즐길 줄 아는 것.
내가 스캣 창법으로 노래하는 중간 부분에도 그런 내용이 살짝 나온다. 다들 누군가 날 좋아하고 내 생활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 사실 난 세계를 돌아다니고 호텔을 전전하며 살아야 하고 그건 대단히 외로운 삶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그건 내가 선택한 삶이다. 이 노래는 지하방이나 그런 여건에서 자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노래가 아니라, 혼자 살아가는 ‘나’의 삶을 다룬 노래다. 그러니까 날 돌봐 주는 사람들이 한 무더기 있다 해도 결국은 그들 모두 가버리고 나 홀로 호텔 방에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불평하는 건 아니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니까. 곁에서 내 성공을 지켜 준 사람들 역시 외로울 수 있고, 그들 또한 혼자서 살아갈 수 있겠지. 난 그저 혼자 살아가면서 신나게 즐기고 있다는 말을 하는 거다. 이제 다들 이해가 되겠지?


난 마찰도 꽤 많이 빚는 편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만큼 쉬운 사람이 못 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순 있지만 함께 살긴 굉장히 힘든 상대다. 날 참고 견딜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가끔씩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내 욕심이 지나친가 보다. 난 그저 뭐든지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을 뿐인데,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난 사랑이 무척 많고, 주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많은 걸 요구하지만 그 보답으로 많이 베풀기도 한다.
 

 

             뮌헨의 스튜디오에서 휴식을 취하며.  스크램블 게임에 한번 빠졌다 하면 프레디도 카메라를 피할 재간이 없다. 
                                      이때 퀸의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이었는데, 현장의 카메라 팀은 어쩔 수 없이
                                                             퀸의 녹
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대개 퀸은 엄격하게 비공개로 작업을 했다. 


난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있다.
성욕도 왕성하다. 닥치는 대로 동침하니까 마음대로 갖다 붙이시라! 내 침대는 여섯 명이 자도 될 만큼 아주 널찍하다. 난 성가신 문제에 휘말릴 일이 없는 것을 더 좋아해서 극도로 문란할 때도 더러 있었다. 한동안 아침마다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서 오늘은 누구하고 할까 궁리하며 지내기도 했다. 난 굉장히 밝히지만 이제는 많이 가린다. 난 원하는 건 모두 얻고 싶다. 안전한 것도 좋지만 자유롭고도 싶다. 지금은 오로지 혼자 살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그게 좋다. 전에는 혼자선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주변에 사람들이 꼭 있어야 했는데, 이젠 혼자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게 좋다.
난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 자유로움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너무나 즐겁게 지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지낼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사람은 누구나 변하기 마련이어서, 나와 같은 또래로 40대인 엘튼Elton John[영국태생의 가수이지 작곡가]처럼 갑자기 정착해서 아이들이 갖고 싶어질지 모른다. 엘튼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빨리 그렇게 된 것 같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할 줄 알았던 엘튼이 그렇게 될 줄 누구도 알 수 없었듯이 그런 일도 생길 수 있는 거다.

라이브 에이드 분장실에서 사진작가 데이비드 베일리David Bailey와 프레디가 함께한 영원히 남은
소중한 순간.
   그리고 같은 때 엘튼 존과 함께. 두 전설이 같이 있다니! 

난 음악과 결혼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했다. 그럴 시간도 없겠지만 어쨌든 음악과 결혼하진 않았다. 음악은 내 일이고 직업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지는 않더라도 내 직업이다. 난 음악을 생계 수단으로 여긴다. 난 철저히 낭만적인 사람이고 사랑과 사람들과 결혼했다.


난 태풍이 지나간 후의 진정한 고요 같은 걸 원했다.
모두 내가 폭풍 같은 관계를 맺을 거라고 기대한다. 사실상 나는 대중매체 활동으로 먹고살고 있고, 누구든 그 일에 휘말리면 나처럼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난 항상 배의 선장이자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열심히 일했고 만인을 위해 심지어 무대 밖에서도 공연했는데 가끔은 그냥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다른 사람들이 하게 두자. 넌 그냥 너 자신을 찾아서 평범해지려고 노력하는 거야.’ 공연을 해야 한다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공연과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사람들에게 이제 지겹다고 말해.’ 그건 근사한 일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지겹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하지만 난 이제 그게 좋다. 지겨우면 지겹다고 말하고 다른 일을 찾아서 기분 전환을 한다.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즐겁게 해 주길 바란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지루하다고 말했다면 난 아마 미쳐서 안절부절못했겠지만…… 지금은 그게 좋다.


난 현재 맺고 있는 관계에 행복을 느끼고, 솔직히 그 이상을 바랄 순 없다.
일종의 위안이 된다. 그래, 그게 적절한 말이다. 우린 그걸 갱년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거기엔 요즘 내가 받은 그런 종류의 위안이 있다. 이젠 너무 열심히 애쓸 필요가 없다. 나 자신을 입증할 필요도 없다. 난 무척 배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꽤 따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근사한 일이다.

마침내 난 평생 찾던 둥지를 발견했고, 이 세상 어떤 빌어먹을 놈도 그걸 망치진 못할 거다.
 *1984년에 프레디는 짐허튼Jim Hutton[머큐리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허튼은 미용사로 1990년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았다.]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91년 프레디가 사망할 때까지 커플로 함께 지냈다.

                 

 "고맙습니다, 신의 축복을 받으시고 달콤한 꿈 꾸시길!" 
이 말은 프레디가 1977년에 런던에서 가졌던 얼스 코트 공연에서 무대를 떠날 때 던진 말이다. 
나중에 다른 콘서트에서도 비슷한 인사말을 많이 던지긴 했지만. 이 사진은 매직 투어 중 콘서트가
 너무
 순식간에 끝나자 프레디가 자신에게 푹 빠진 관중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하는 모습이다.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년 9월 5일~1991년 11월 24일)는 영국의 대중음악 가수이다. 퀸의 리드싱어로 4옥타브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재능있는 보컬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다. 최대의 히트 앨범 《어 나이트 앳 디 오페라 A Night at the Opera》(1975)에 수록된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는 9주 동안이나 영국의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그레그 브룩스 | 문신원 옮김

뮤진트리 2009.07.07

정다운 기자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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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우l건강] 왜 먹는 것을 못 참을까?

Knowhow 2010.07.16 23:58 Posted by NewsInBook

나는 왜 계속 먹을까? 식욕과의 전쟁

맛집, 야식, 디저트... 먹는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아침을 먹으면서 열 시에 먹을 도넛을 생각하고 있어요. 도넛을 먹는 동안은 점심에 뭘 먹을지를 생각하고요. 그리고 점심 뒤에 먹을 디저트를 생각해요."
"그 순간에는 피자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어요. 아무것도 피자만큼 내 관심을 온통 차지하지는 못해요."
어느 비만 환자들의 고백이다. 그러나 환자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설령 자제심을 발휘하여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시도 때도 없이 뇌를 자극하는 먹고 싶은 충동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다. 전 미국 FDA 국장 데이비드 케슬러는, 저서에 167cm에 54kg인 젊은 법대생 사만다와의 대화를 수록했다.
"음식이 앞에 있으면 나는 먹지 않으려고 끝없이 갈등해요.뭔가를 활동적으로 하지 않는 순간, 무엇을 먹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구요.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져요. 하루 종일 음식 생각만 할 수는 없잖아요. 살면서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음식 생각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다니 미칠 노릇이에요. 오늘 허쉬 키세스를 얼마나 먹었는지가 아니라 로스쿨을 생각해야 하는데도 말이에요."
우리는 먹는 것이 의지의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커리어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공과 부를 거머쥔 사람중에도 과체중으로 고민하는 이들은 많다. 왜 경쟁에서 이기고 승리를 거머쥐는 사람들마저, 접시에 담긴 조그만 무생물과의 전쟁에서는 종종 패배하는 것일까?


한도를 잃어버린 보상 체계 : 설탕과 지방의 위협

우리 몸은 섹스나 음식같이 생존에 필요한 것을 찾아다니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부추기는 셍물학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필요한 것을 얻으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 보상에 대한 기대로 우리는 끊임없이 예전 우리를 기분좋게 했던 것을 생각하고, 찾아다니게 된다.
물론 이러한 보상 충동에는 일정한 한도가 있어서, 어느 정도 채워지면 만족의 효용이 낮아지고 우리는 거기에 관심을 잃는다. 보통의 경우에는 그렇다.
데이비드 케슬러와 동료 연구자들은 고지방과 고당분을 동시에 함유한 ‘아주 맛있는 음식’이 뇌의 안정적 신호 체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반복해서 초콜릿 음료를 마신 쥐는 음료를 충분히 많이 마신 뒤에도 보상 충동을 일으키는 도파민 분비가 감소하지 않았다. 초콜릿 음료와 치즈맛 스낵을 번갈아 주면, 쥐들은 충분히 먹은 후에도 새로운 맛이 나는 음식 앞에서는 또다시 활발하게 도파민이 분비되어 음식을 섬취하려고 했다. 또다른 실험에서는, 음식 뿐만이 아니라 음식을 연상시키는 단서, 즉 식당의 간판이나 음식 사진 같은 것도 실제 음식과 비슷한 수준으로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자극에 굴복하여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은 그 순간의 즐거움을 기억하고 더욱 강한 보상 체계를 만든다. 다음번에는 더 큰 유혹이 찾아온다. 자극적인 음식들은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의 뇌 지도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점점 더 음식의 유혹에 순종적인 인간으로 세뇌한다.

 
 
인터넷 상에서 '야식 테러' 라고까지 불리는 사진들. 시각적 단서들의 유혹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하다.

악순환을 끊는 길 : 정신줄을 꽉 잡아라!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참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한번 잘못 들어버린 섭식습관도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습관도 고칠 수 있다. 데이비드 케슬러는 한번 굳어져 버린 습관을 깨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과 함께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1. 자신과 상황에 대한 인식 
 2. 먹는 것을 대신할 행동 
 3. 먹고 싶다는 생각을 대신할 다른 관점의 생각
 4. 지지자 

현대 사회는 좋지않은 식습관을 유발하는 단서들로 가득 차 있다. 그같은 단서들과 거기 흔들리는 자신을 똑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냈는가? 지금 이 순간, 오직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나 진리의 치맥(치킨과 맥주)만이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가? 유혹에 굴복하기 전에 잠시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내가 힘들고 괴로운 이유가 정말 치킨 한 조각이 없어서인지.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지방과 고당분 외의 다른 것으로 이 인생을 채울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지.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과식의 종말

데이비드 A. 케슬러 | 이순영 옮김

문예출판사 2010.02.25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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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l경제일반] GDP를 의심하라!

사회 2010.07.16 23:56 Posted by NewsInBook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나 수상을 선출하는 선거 공약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이다. 대한민국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대통령 후보 공약에는 집권 기간에 달성할 1인당 GDP 목표가 적혀 있다. 그것도 1번 혹은 2번 공약으로 쓰여 있다.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측정하기 위한 주요 경제 지표, 정확하게는 경제학의 지표였던 GDP가, 이제는 사람들에게 국부의 기준으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정치, 경제 등 사회 전 분야에서 GDP는 절대적인 지표가 되었다.
10년 전 한국 사람들은 국민 1인당 GDP가 2만달러가 넘으면 선진국 국민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민이 열심히 일하고 기업이 계속 성장한다면 GDP가 올라갈 것이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것이 우리가 GDP에 대해 갖고 있는 통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인당 GDP가 올라간다고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에는 한 가지 심각한 맹점이 있다. GDP는 돈을 벌기 위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모두 더한 것이다. 따라서 GDP에는 사람들이 일을 해서 만들어 낸 총가치 중에서 오직 돈을 벌기 위한 것만 포함된다.
민간 부문의 GDP는 국민들이 사고파는 모든 제품의 가격을 토대로 측정한다. 공공 부문과 비영리 부문에서는 생산된 제품의 비용을 토대로 측정한다. 공공 부문과 비영리 부문에서는 생산된 제품의 비용을 토대로 측정한다. 통계학자들은 모든 산업에서 생산한 총가치에서 투입 요소와 원자재의 비용을 제외하고 GDP를 계산한다. 이것은 투입 요소와 원자재의 생산에 들어간 가치가 중복 계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방식으로 생산의 각 단계에서 새로 만들어 낸 부가가치만을 더해 GDP를 계산한다. 

다시 말해 GDP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돈을 벌지 않는 일을 제외한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자의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대부분 보수 없이 가사노동을 하고 가족을 보살핀다. 하지만 가사노동을 가정부나 외식업체에 맡기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가사노동은 GDP에 포함된다. 그러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하는 가사노동은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돈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 역시 가치 있고 생산적이지만 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은 여성차별 때문에 주로 여성들이 한다. 따라서 GDP는 여성들의 경제적 기여를 낮게 평가한다. 이런 허점은 국민경제를 측정하는 데 커다란 문제가 된다. 불행히도 GDP는 순전히 쉽게 측정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이나 정책 담당자들에 의해 그 중요성이 과대평가되어 있다
 

GDP에 포함되지 않는 가치 있는 일은 무수히 많다. 반면 저녁 식사를 방해하는 텔레마케팅, 해로운 약품, 과도한 제품 포장, 무기 생산과 같이 인간의 행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행복을 파괴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일도 GDP에 포함된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숲과 강이 잘 보존되어 있을 때는 GDP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숲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골프장을 짓거나 강바닥을 파헤쳐 골재를 팔면 GDP는 껑충 뛰어오른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가치는 GDP에 조금도 반영되지 않는다.

 

더구나 GDP가 높다고 해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성장의 열매가 더 많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2009년 기준으로 IMF가 발표한 1인당 한국의 GDP는 16,450달러이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갓 태어난 아이들도 1년 동안 약 1960만원 정도를 번다는 이야기다. 4인 가구 기준으로 한 가정의 연 수입이 7천 8백만원 정도가 되고, 만약 아버지가 혼자서 돈을 번다면 월급이 650만원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한다. 학원비, 의료비, 생계비 걱정도 옛날에 없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0년 통계청 통계에 의하면, 1/4분기 소득 하위 10% 가구의 월 소득이 58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반면에 소득 상위 10% 가구의 월 소득은 1014만원이 넘었다. 하위 대비 상위 가구당 소득이 약 17배가 넘는다. 1인당 GDP는 2010년 세계 37위를 달릴 정도로 높지만, 상위 일부가 평균을 끌어올리고 있을 뿐 경제적 측면에서 만족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DP는 여전히 중요한 경제지표이다. GDP는 돈을 벌기 위해 생산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의미하며 다양한 곳에 중요하고 적절한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능력은 GDP의 크기와 직결된다.

따라서, GDP상승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 GDP 통계는, 적절히 관리한다면 인간의 행복 증진이라는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실 GDP와 인간의 행복은 불완전하지만 양(positive)의 상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얼마나 생산하는가와 함께, 생산한 제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가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또, GDP가 의미 있는 수치가 되려면 몇 가지 추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일의 가치는 오로지 인플레이션(inflation) 때문에 높아질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경제는 실질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다. 따라서 화폐 단위로 측정한 명목 GDP와 인플레이션 효과를 제외한 실질 GDP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이렇게 실질 가치와 명목 가치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경제 변수로는 임금과 이자율 등이 있다). 경제성장은 보통 실질 GDP의 증가로 측정한다.

 

인구 증가로 인해 GDP가 늘어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경제가 발전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가 간 성장률을 비교할 때는 반드시 인구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구 증가율이 거의 0퍼센트인 국가(유럽과 일본)는 실질 GDP가 약간 증가하더라도 생활수준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인구 증가율이 아주 높은 국가는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GDP를 인구로 나누어 1인당 GDP를 측정한다. 1인당 GDP도 실질치와 명목치로 나타낼 수 있다. 1인당 GDP는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개략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GDP 통계는 신중하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GDP를 번영이나 행복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와 국민은 GDP에 집착하면서도 그 숫자의 의미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GDP는 규모의 측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규모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사이 잃고 있는 것은 없는지, 조삼모사의 숫자놀음에 정신팔리기 전에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짐 스탠포드 | 안세민 옮김

부키 2010.03.19


이동준 대표기자 (timidbe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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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년 만에 인디언에게 사과한 미국 정부와 의회

미 정부의 약탈과 맞서 싸운 시팅불의 생애

 

2010 5 20, 미국 의회가 아메리칸 원주민 인디언에 대한 과거의 폭력행위와 잘못된 정책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이날 워싱턴에 있는 의회묘지에서 과거 인디언들에 대한 사과 결의안을 낭독했다. 이 결의안에는 과거 정부가 자행한 약탈행위와 잘못된 정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미국인을 대신해 사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브라운백 의원이 이 결의안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었다. 연방 상하원은 지난해가 되어서야 이를 통과시켰고, 2009 1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결의안에 서명했다.

 

16세기부터 미국에 급격하게 유입된 백인들은 원주민이던 인디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러왔고, 미국이 건국된 이후에는 정책과 국책사업의 미명하에 정부가 직접 침략과 약탈 행위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 명백한 만행에 대해 미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기까지는 2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미 정부의 약탈이 가장 격심했던 19세기, 그 시절 북미 대륙 수백만 인디언들의 삶과 죽음을 대표하는 인디언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시팅불(Sitting Bull)'이다. 그의 삶을 통해 미국의 인디언 침략의 역사, 그리고 폭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던 인디언들의 저항정신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수(soiux)족의 대추장, 시팅불

 

추방과 죽음을 싣고 온 대륙횡단철도

남북전쟁이 일어날 무렵만 해도 미국에는 약 30만 명의 인디언이 있었고, 그 중 약 20만 명이 대평원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 연방 정부는 이 땅을 멋대로 싼 값에 백인들에게 매각하고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여 백인들에게 서부 이주를 권장했다. 이렇게 하여 백인들이 대평원 지역으로 몰려들게 되자, 연방정부는 인디언 보호구역정책을 펼쳐 인디언들에게 정부가 정한 일정한 구역에 들어가 살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이 보호구역은 비좁고 황폐했으며, 연방정부가 설치한 인디언 사무국은 일부 백인들이 조약을 무시하고 보호구역에 침범하는 것조차 제대로 막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인디언들의 주 식량이던 들소 떼를 백인들이 마구잡이로 학살하여 멸종 위기에 몰아넣었기 때문에 대평원 지역 인디언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워졌다. 이러한 백인들의 횡포에 저항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시팅불(Sitting Bull), ‘앉아있는 황소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 추장이었다.


 


1869년, 미국 대륙횡단철도 개통식

 

‘느린 아이’, 인디언 전사가 되다.

시팅불은 수(Sioux)족 연합의 작은 부족이었던 헌크파파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팅불의 원래 이름은뛰어오르는 오소리였지만, 헌크파파 인디언들은 그를홍케스니느린 아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인디언들에게 느리다는 것은 사려 깊고, 주의 깊으며, 약간 고집 센 성격을 의미한다.

 

‘느린 아이가 용맹스런 인디언 전사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열네 살 때이다. 열네 살 때 벌어진 크로우족과의 전투에서, ‘느린 아이는 어린 나이였지만 전투에 합류해 상대방에게 첫 번째 타격을 가했다. 수족의 관습에서는 최후의 일격이 아니라 첫 번째 타격을 가한 사람이 전투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으로 공적을 인정받고 칭찬을 받았다. ‘느린 아이는 부족민으로부터 커다란 환영을 받았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진정한 전사로서 자신의 이름인타탕가-이요탕가(Tatanka-Iyotanka)’, 시팅불이라는 이름을 물려주었다.

 

재앙이 찾아오다

1851 9월 미국 정부는 대평원의 모든 인디언 부족을 노스플래트 강가의 래러미 요새에 모이게 한 뒤 조약을 맺었다. 래러미 조약의 목적은 미국과 인디언 부족 간에 평화를 확립하고, 부족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각 인디언 부족들의 영토 경계선을 확정했으며, 인디언 영토 내에 도로를 개설하고 미국의 군대 요새를 세우는 대신 백인의 도발 행위로부터 인디언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디언들은 조약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며, 조약 이행에 대한 의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인디언 부족 사이에서도 조약에 대한 이견이 많았는데, 시팅불은 이 조약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인디언들과 미군의 첫 전투는 1854년 황소 한 마리를 둘러싼 시비 때문에 벌어졌다. 미군 중위가 먼저 발포하자 인디언들은 반격하여 29명의 기병대를 전멸시켰고, 백인들은 이 사건을 그래탄 대학살이라 부르면서 인디언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그 결과 1855년 가을, 인디언들이미친곰이라고 불렀던 윌리엄 하니 대령이 인디언 마을을 공격해 87명의 인디언을 죽였다. 이로써 인디언과 미군 간의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1854년부터 1864년까지 인디언과 미군이 서로 학살하는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시팅불은 이 시기에 처음으로 미군과 전투를 벌였다고 추정된다.

 

애매한 평화협정과 전쟁을 부른 황금

여러 번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은 후, 미국 정부는 평원 인디언에 대한 정책을 바꾸어 그들과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노력했다. 미봉책에 불과하긴 했지만, 평화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1868년 북부 인디언들은 사우스다코다 주의대 수족 보호구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인디언들에게 이제까지의 유목 생활을 버리고 정착 농업의 길로 들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었으며, 미국 정부가 보호 구역 내에 철도나 도로 건설을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뛰어난 전사이자 사냥꾼이 시팅불은 도저히 래러미 조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는 백인과의 조약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시팅불은 보호구역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한 부족민을 이끌었다. 그 사이에도 미국의 서부 개척사업은 계속되어 1871년 철도 회사는 노던 퍼시픽 철도 건설을 계획하고 예비 조사에 나섰다. 1872 813일 시팅불이 크로우족을 상대로 전투를 계획하고 있을 때, 철도 측량사를 호위한 미군이 다가왔고, 인디언 전사들은 전투를 벌여 이들을 저지했다. 미군은 철도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미주리 강 상류 지역까지 군대를 강화시킬 목적으로 제 7기병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노던 퍼시픽 철도의 건설은 인디언의 공격 때문이 아닌, 1873년에 닥친 공황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른 사건이 충돌을 불러 일으켰다. ‘대 수족 보호구역내에 있는 블랙힐즈에서 황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공황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수많은 백인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블랙힐즈로 몰려들었다. 1868년 조약에 의해 블랙힐즈는 엄연히 인디언의 땅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하는 수 없이 군대를 시켜 백인 광부들을 막았지만, 목숨을 걸고 황금을 찾아 나서는 이들을 막기는 힘들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대 수족 보호구역밖에 있는 모든 인디언들에게 블랙힐즈 문제에 대한 협상을 위해 1876 1 31일까지 보호구역의 관리소로 집결할 것을 명령했다. 이것은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인디언 부족을 말살시키기 위한 명분을 만들려는 의도에서였다.

 

리틀빅혼 전투 - 7 기병대의 전멸

1 31일이 지나도 보호구역에 들어오는 인디언 부족이 하나도 없자, 쉐리던 장군은 인디언을 토벌하고 마을을 불태울 계획을 세웠다.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시팅불은 부족 회의를 소집해 강력한 방어전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인근 지역의 인디언 겨울 캠프와 보호구역에 전령을 보내 자신의 캠프로 집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수천 명의 부족이 몰려들었고, 일부는 보호구역에서 오기도 했다. 이 모임에서 시팅불은 모든 부족민의 추대를 통해 대추장으로 선출되어 총 지휘를 맡게 되었다.

 

1876, 7기병대와 기번 부대 등, 600명의 병력이 시팅불의 캠프를 초토화시킬 목적으로 리틀빅혼 계곡에 접근했다. 그러나 지휘관인 커스터(George Amstrong Custer)는 인디언 연합의 수를 과소평가하여 성급하게 공격을 감행했을 뿐 아니라, 부녀자와 어린이가 함께 있는 캠프를 공격하는 우를 저질러 인디언 전사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게 만들었다. 여기에 병력을 분산시키는 등 전략적 실패까지 겹쳐, 리틀빅혼 전투는 미군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미국 최연소 장군의 자리에 올랐던 남북전쟁의 영웅 커스터를 포함하여 제 7기명대 210명이 전멸했다.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mstrong Custer, 1865)

 

7 기병대의 전멸은 백인들로 하여금 인디언에 대한 복수심을 불러일으켰고, 쉐리던 장군은 9천명 이상의 병력을 거느리고 인디언이 눈에 띄는 대로 공격을 가했다. 시팅불과 함께 리틀빅혼 전투를 치룬 크레이지 호스도 미군의 추격뿐 아니라 굶주림과 추위에 치쳐 1877년 항복했다. 이에 시팅불은 300명의 헌크파파족을 이끌고 캐나다로 건너갔다.

 

항복,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

시팅불의 캐나다 생활은 법적으로는 보장되었지만, 백인들의 무차별 남획으로 들소 떼가 거의 사라져 생계유지조차 힘들었다. 1881 7 19일 시팅불은 결국 187명밖에 안 남은 부족민을 이끌고 몬태나의 부포트 요새에서 항복을 하고 말았다. 1883 5 10, 2년간의 포로 생활에서 풀려난 시팅불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후까지 인디언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려고 노력했던 시팅불이었지만, 생애 마지막 6년 동안은 백인들의 세상을 더 많이 돌아다녔다. 인디언 대표로 미국의 공식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대평원의 생활을 담은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1888년에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대표하는 추장단 61명의 하나로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 국회에 발의된 토지분배법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1886년 버팔로 빌 코디(Buffalo Bill Cody)와 <와일드 웨스트 쇼>에 출연했을 당시의 시팅불.

 

1889 1 1일 파이우트 족의 신성한 인간인 워보카라는 사람이 계시를 받았다. 그는 기독교의 메시야가 인디언이 되어 지상으로 다시 내려오고, 인디언 부족들의 부활을 예언했다. 워보카는 이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싸움이 아니라 춤을 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춤을 유령춤이라고 불렀다. 시팅불이 이 예연과 춤의 효력을 믿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백인들은 보호구역의 인디언들이 유령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 백인들은 시팅불의 체포를 원했고, 1890 12 15일 새벽, '황소 머리'를 포함한 인디언경찰들이 시팅불을 체포하기 위해 그의 통나무집으로 몰려들었다.

체포 과정에서 경찰이 시팅불을 강제로 연행해 가려고 하자, ‘곰잡이가 윈체스터 장총으로황소머리를 쏘았다. ‘황소머리는 쓰러지면서 권총으로 시팅불의 가슴을 명중시켰다. 체포과정에서 생긴 우발적인 사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팅불은 자신이 그토록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동족의 손에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시팅불. 그는 끝까지 평화가 회복되기를 바랐다.

 

백인들의 무차별적인 침략에 대항애 용맹스럽게 투쟁한 인디언 추장들은 많이 있지만, ‘수족의 대추장시팅불만큼 오랜 기간 일관되게 백인에게 굴복하지 않고 용맹스럽게 투쟁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는 조상 대대로 살아 온 자신의 영토와 생활 방식을 지키기 위해 백인에 맞서 싸웠고, 끝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와 같은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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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 없
으면 식량도 없다.

 

1950년만 해도 미국의 평균적 가정은 수입의 20퍼센트를 식비로 지출해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10퍼센트밖에 쓰지 않는다. 수입에 대비해 식량 가격이 내려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으로 풍부하고 값싼 음식은 얼마 안 있어 사라질지도 모른다.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는 먼 이야기이지만 예전에는 친숙했던 불청객, 즉 기아는 우리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우울한 예측에 대한 많은 근거 중 네 가지 핵심사항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근거는 임박한 연료 부족이다. 세계의 석유 생산이 2010년쯤이면 정점을 통과하고, 북아메리카의 천연가스 채굴량은 이미 하강 국면에 들어섰으므로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의 시대는 갑자기 막을 내릴 것이다. 또한, 이들 사건은 미국의 석유 의존적인 식량 체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기아가 나타날 가능성의 두 번째 근거는 농부의 부족이다. 미국 농부의 평균 연령이 55세를 넘어 60세에 접근하고 있다. 35세 이하 농장 경영자의 비율이 1982 15.9퍼센트에서 2002 5.8퍼센트로 낮아졌다. 앞으로 20년 후에는 누가 식량을 얻기 위해 농사를 지을 것인가

 

세 번째 근거는 맑은 물이 점점 귀해진다는 사실이다. 미국 전체의 물 소비량 중 80퍼센트 이상의 맑은 물이 농업용수로 쓰인다. 미국 내 생산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과일과 견과, 채소를 생산하는 캘리포니아의 샌트럴 밸리는 여름 동안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전적으로 관개수에 의존한다. 그러나 관개수의 대부분을 제공하는 시에라 산맥의 적설량이 줄고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근거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 흔히 하는 말이 '지구 온난화'인데 우리가 직면할 문제는 온도의 상승보다 더 골치 아픈 '기후의 혼란'이다. 다시 말해 가뭄, 홍수, 강력한 태풍 등 예측 불가능한 여러 기후 현상이다

 

이 네 가지 근거 중에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부족한 연료 때문에 농업이 어려워지고 대규모 기아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농업은 기계와 화학비료, 종자의 화학적 개발 때문에 석유나 지하 자원 사용량이 많아진다. 당장 대부분의 비닐 하우스에는 난방 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그래서 우린 겨울에 딸기를 먹을 수가 있다. 석유값이 올라가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농업은 에너지 사용에 있어 공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문제는 천연 에너지 햇빛과 물을 기본으로 할 것 같은 농업에도 연관되어 있다. 지하수를 퍼올려 농업 용수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 에너지가 필수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공 에너지를 주로 사용하는 농업을 '산업화된 농업' 혹은 플랜테이션 농업이라고도 부른다. 이 에너지 먹는 괴물이 되어버린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탈산업화 농업' 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쿠바로 부터 배운다.

 

 특정 시기에 쿠바가 겪었던 경험은 가장 적절한 예에 속한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에 따라 쿠바는 값싼 석유 공급처를 잃게 됐고 석유 의존도가 높았던 산업화 농업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쿠바 지도자들은 즉시 농업의 소련식 산업화 모델을 포기하고 석유와 석유 제품에 의존하는 농법을 더욱 지역화된 노동집약적 유기 농법으로 바꿨다.

 

또한 쿠바 정부는 대형 국영농장을 분할하여 개인농장, 농업협동조합과 농산물 직거래 시장 등을 도입했다. 쿠바의 농부들은 소를 농사용 견인 동물로 키우기 시작했다. 쿠바 국민들 대부분은 기존의 식단을 채식중심 식단으로 바꿔 하루에 두 번 먹던 고기를 한 주에 두 번만 먹는 것으로 조정했다. 그들은 채소섭취를 늘리고(너무 많은 투자를 요하는 녹색혁명 곡물인) 밀과 쌀 경작을 줄여갔다. 또 옥상정원을 포함한 도시의 텃밭 농사를 장려하여 그 생산량이 도시 채소 소비량의 50~80퍼센트에 이르렀다.

 

초기에 쿠바는 많은 농부와 제대로 된 농업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모든 대학에 재빨리 농학 관련 과목들을 개설했다. 이와 동시에 농부의 임금을 엔지니어나 의사와 맞먹는 수준으로 인상했다. 어떤 때는 장려책도 썼고 더러는 강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도시에서 지방으로 이주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쿠바 농업은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쿠바인들은 평균 20파운드의 체중이 줄었으나 길게 봤을 때 국민의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 오늘날 쿠바는 저성장의 안정적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치품은 귀해도 먹을 것은 충분해졌다. 쿠바는 소규모 유기농업의 좋은 점과 순기능을 경험했기 때문에 설사 나중에 신 석유 자원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 새로운 분산화 저에너지 농업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

리처드 하인버그 | 송광섭 옮김

부키 2010.04.08

이재영 기자 (ypajy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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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업무 중에 꼭 잊어버리는 일들이 있다. 혹은 주요한 검토 사항을 놓쳐서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마치 영화 메멘토에 나오는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처럼 약속을 잊고 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은 비즈니스맨에겐 치명적인 위험이다. 총명탕이라도 먹어야 할까?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기억력 문제가 아니다. 현대 비즈니스의 현실 때문이다. 

노동이 분업화하면서 사람들은 여러 건의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직장은 여기다 멀티 플레이어 역할까지 요구한다. 한 가지 일만 하는 전문화된 노동자들은 이제는 구시대 노동자가 되어 버렸다. 기억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너무 많은 업무 정보가 들어오다 보니 일부는 기억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직장인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이 보조 기억장치를 사용해야 한다. 

누가 몰라서 안 적나요? ‘기록 열등생’들의 고충

문자가 태어난 이후로 가장 오래된 보조 기억 장치는 바로 메모이다. 메모는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야 하는 습관이다. 메모 업무가 아니라 '메모 습관'을 들이는 것은 현대 직장인에게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필수 덕목이다. 특히 유독 덤벙대는 사람들, 매번 약속을 잊고 마감을 어기는 사람들, 기껏 짠 계획을 사흘도 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변으로부터 ‘뭐든 적는 습관을 들이라’는 충고를 숱하게 듣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일수록 기록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비싼 돈을 들여 좋다는 다이어리를 사지만 처음 몇 페이지밖에 쓰지 못한다. 약속을 메모해 두어도, 어디에 메모했는지 잊어버린다. 때로는 메모한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기록 열등생’들을 위해, '메모 습관'을 들이는 비결을 알아보자.

기록하고 통합하고 휴대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과 ‘통합’과 ‘휴대’가 삼위일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저 기록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기록하고, 그 기록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어디든지 들고 다녀야 한다. 한 가지라도 빠지면 나머지 둘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만큼 세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다. 

1. 주저하지 말고 기록하라
계획과 일정 관리를 위한 기록은 소설을 쓰는 것 같은 작품 활동이 아니란 것을 기억하라. 뭘 써야 할지 오래 고민할 필요도, 보기 좋게 정리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기록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기록에 너무 열과 성을 다한 나머지 기록의 도움을 받아 정말 하려던 일에 쓸 에너지가 분산된다면 그야말로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결론을 낸 다음에 쓰려고 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맞춤법이 틀리든 글씨가 비뚤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팩트를 기록해 나가다 보면, 생각은 저절로 정리되고 자연스레 명확한 결론이 나온다.

2. 통합하라! 기록도 뭉쳐야 산다.
일정, 달력, 시간표, 사업 계획, 일기, 가계부, 아이디어 할 것 없이 통합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을 한곳에 모으라. 테크닉은 필요 없다. 그냥 모으기만 하면 된다. 매 순간 새롭게 쓰이는 기록들이 여러 곳에 굴러다니고 있으면 대체 무엇이 최신 정보이고 최신 일정인지 헷갈린다. 특히 변경이 잦은 거래처와의 미팅 약속 같은 것을 여기저기에 마구 적어놓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또한, ‘장기 계획’부터 ‘일일 일정’까지가 하나의 다이어리, 노트 등에 들어 있다면 상위 계획과 하위 계획 사이의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작은 일정을 잡을 때도 상위의 큰 계획을 수시로 확인하며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 있고, 계획을 진행하면서 최초의 결심과 목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데도 유용하다.

3. 예외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휴대하라!

다이어리든 수첩이든 한번 기록 통합을 위해 휴대하기로 했으면, 업무상 미팅이든, 개인적인 일을 할 때든, 집에서 쉴 때라도 늘 갖고 다니면서 계획을 실행하고 진행상황 및 결과를 기록해야 한다. 아무리 기록을 열심히 하면 뭘 하겠는가? 휴대하지 않으면 기록의 연속성과 통합 효과가 떨어지니, 결국 기록의 완성은 ‘휴대’다. 아무리 무겁든 아무리 크든 정말 가지고 다닐 마음만 있다면 어디든 가져갈 수 있다. 누구나 다 놀 때나 잘 때나 휴대폰을 바로 곁에 둔다. 기록장도 그렇게 해야 한다.

기록–통합–휴대의 삼위일체는 계획적인 생활과 실행을 위한 필수 인프라 구조를 이룬다. 자신에게 맞는 기록 방식, 자신의 업무 특성에 맞는 기록 관리, 자신의 스타일과 취향을 고려한 휴대 문제를 생각해서 기록 전용 도구를 마련하라. 그리고 당장 기록을 시작하라.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작심 후 3일

김일희

다우 2007.12.15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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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춤추게 하라

무언가에 진정으로 사로잡힐 때, 삶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

성공하려거든 일에 미치라는 이야기를 한다. 몰입의 중요성도 자주 말한다. 하지만, 누구나 경험하듯이 몰입이란 것이 하려고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더구나 진정한 몰입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에 ‘빠진다’, 눈길을 ‘뺏긴다’, 취미에 ‘미친다’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한 가지만 파고들어 성공을 거둔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빠질 수 있을까?’ 하며 경탄 섞인 시선을 보낸다. 흔하게 몰입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우리는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몰입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 우리들에게, 이시이 신지가 전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 <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는 진정으로 몰입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한 남자가 있다. 직업은 레스토랑 서버. 사람들은 그를 ‘사로잡힌 남자’ 라고 부른다. 툭하면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그야말로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오페라, 삼단뛰기, 외국어, 곤충채집, 탐정놀이, 자수, 우표수집……. 한번 사로잡히면 밤낮으로 열중한다. 너무 빠져든 나머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직장에서 잘리기도 하고, 심지어 고소를 당하기까지 한다. 그래도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끊임없이 열정을 쏟은 결과 돈과 명예가 눈앞에 올 때도 있지만, 그것을 쥐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가 사로잡힌 것은 그 일 자체이지 거기 따라오는 혜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나 사회적 성공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몰입이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희생을 하고 열정을 불태운단 말인가? 단순히 몰입을 위한 몰입만으로도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대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웃음으로 가득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우리가 왜 사는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몰입이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괴로운 일에 가깝다.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 인생의 다른 부분은 잊혀지고 버려진다. 얻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는 데 이유가 없듯이,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데도 딱히 이유는 없다. 몰입의 순간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불쑥 찾아와 삶에 빛과 윤기를 더해준다. 이해득실이니 가능성을 따지며 두려워하기보다는 기꺼이 사로잡혀 주는 것 또한 즐거움이 아닐까.

아직 아무 데도 사로잡혀 본 적이 없다고? 그럴 리가! 누구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자기 삶에 몰입해 있다. 거기서 한 두 가지 더 무언가에 빠져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이유도 없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

이시이 신지 | 서혜영 옮김

다우출판사 2002.11.30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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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래동화 ‘콩쥐팥쥐’와 외국동화 ‘신데렐라’.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전래되어온 이야기지만, 깜짝 놀랄 만큼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계모의 구박을 받던 착한 소녀가 선녀나 요정의 도움으로 예쁜 옷을 입고 잔치에 가는 부분, 떨어뜨린 신발을 매개로 신분상승을 하게 되는 부분을 보고는, “어느 쪽이 표절한 거야?” 하고 묻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신데렐라와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는, 한국과 프랑스뿐 아니라 중국,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뉴기니 등 세계 각지에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주오대학 교수 나카자와 신이치의 말에 따르면, 전 세계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현재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것만도 45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어느 쪽이 ‘원조’가 아니라,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원형 신화’인 셈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이야기는 어느 것일까? 9세기 중국 당나라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실린 ‘섭한 이야기’이다. 유럽에서 최초로 <고양이 신데렐라>가 문자로 기록된 것이 1630년이니, 무려 800년이 앞선 셈이다.

대표적인 ‘원형 신화’ 신데렐라의 중국 버전, 섭한 이야기를 전문 소개한다.



중국에도 신데렐라가 있다? 인류 최초의 신데렐라, 섭한 이야기

진∙한(秦∙漢) 시대보다 더 옛날, 동(洞)이라는 지역에 오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첫 번째 아내는 딸 하나를 낳고 죽었는데 딸의 이름은 섭한이라 하고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가 죽자, 계모와 의붓동생은 섭한을 학대했다. 항상 험한 산에서 나무를 하게 하고 깊은 곳에서 물을 긷게 했다.
어느 날 섭한이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길이 두 치 정도의 빨간 지느러미에 눈은 금빛이었다. 섭한은 물고기를 죽이지 않고 몰래 그릇에 키웠다. 물고기는 나날이 자라 그릇보다 훨씬 커져서, 섭한은 집 뒤에 있는 연못 속에 물고기를 놓아주고 먹을 것이 남으면 바로 연못에 가서 물고기에게 주었다. 물고기는 섭한이 연못가에 가면 머리를 내밀고 물가로 나왔지만, 다른 사람이 가면 절대 나오지 않았다.

계모가 이 사실을 알고, 새 옷을 지어서 섭한에게 주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기특해서 너를 위해 새 옷을 지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른 동네 샘으로 가서 물을 길어오라고 했다. 섭한이 몇백 리나 떨어진 다른 동네 샘에 간 사이, 계모는 섭한의 옷을 입고 소매에 칼을 넣고 연못에 가서 물고기를 불렀다. 물고기가 섭한의 옷을 보고 머리를 내밀자, 계모는 물고기를 칼로 찔러 죽여서는 맛있게 요리해서 먹어버리고 뼈를 퇴비 아래 숨겼다.
해가 저물어 섭한이 돌아와 연못에 갔지만 물고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고기가 없어진 것을 안 섭한이 들에 가서 엉엉 울고있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울지 말아라. 네 어머니가 네 물고기를 죽였단다. 물고기 뼈는 똥 밑에 있으니까, 돌아가서 뼈를 잘 추려 방에 숨겨두렴. 그리고 원하는 것이 있거든 그 뼈에 빌면 뭐든지 그대로 이루어질 거야.”
섭한이 그 말대로 해보니 보석이든 옷이든 먹을 것이든 원하기만 하면 뭐든지 생겼다.
동 지역에 축제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어머니는 축제에 가면서 섭한에게는 마당의 과일을 지키라고 했다. 섭한은 어머니가 나가는 걸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물고기 뼈에 부탁해서 청록색 윗옷을 입고 금으로 된 신발을 신고 축제에 나갔다. 계모가 낳은 딸이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에게 언니하고 무척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계모가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섭한은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러다 신발 한 짝을 두고 갔다. 계모가 집에 돌아와보니 섭한은 마당의 나무를 안고 잠들어 있었다. 계모는 다시는 섭한을 의심하지 않았다.
섭한이 떨어뜨린 신발을, 동 지역의 어떤 사람이 주워다가 타한이라는 섬나라 왕에게 팔았다. 신발은 털처럼 가볍고 돌을 밟아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타한 왕은 그 신발을 사람들에게 신어보게 했지만 나라 안의 모든 부인들이 신어보아도 맞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신발을 판 동 지역 사람이 훔치거나 강도질을 해서 신발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해서 붙잡아 두고 혼을 냈지만, 결국 신발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는데 한 집에서 나머지 신발 한 짝이 나왔다. 이를 수상히 여긴 타한 왕이 곧바로 그 집을 뒤져 섭한을 찾아내서 신을 신겨보니 딱 맞았다. 섭한이 청록색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앞으로 나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았다. 섭한이 자초지종을 왕에게 이야기하자, 왕은 물고기 뼈와 섭한을 태우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계모와 의붓자매는 그 직후 돌에 맞아 죽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긴 동 지역 사람이 돌 구덩이에 묻어 주고 오녀총(懊女塚)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아이를 갖고 싶을 때면 이 무덤에 제사를 지냈는데, 딸을 원하면 반드시 들어주었다.
왕은 타한으로 돌아오자 섭한을 왕비로 삼았다. 왕은 욕심을 부려 물고기 뼈에 수없이 소원을 빌어 산같이 보석을 얻었는데, 1년이 지나자 더 이상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왕은 만약을 대비해 물고기 뼈와 구슬 백 석을 해안에 묻어 두었는데, 어느 날 저녁 바다의 조류에 쓸려가버렸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여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나카자와 신이치 | 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2008.05.01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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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운전자들이 여성 운전자들의 운전 실력을 비웃을 때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아줌마는 집에서 밥이나 하지!"
덕택에 한때 인터넷엔 재미있는 사진이 떠돌았다. 어느 여성 운전자의 차 뒤에 붙어 있는 초보운전을 알리는 글귀였다.
"밥하고 나왔습니다."
애교 넘치는 표현이지만 남자들의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남성의 교통사고 발생건수 여성의 5배... 누가 정말 운전 못 하나
남자들은 여성 운전자들이 남성에 비해 순발력과 공간인지능력이 떨어지고 반응속도가 느려 원활한 차량흐름을 방해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게 운전을 잘한다는 남자들의 교통사고율은 어떨까? 아시아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교통안전공단이 최근 2년간 발생한 교통사고 42만 7484건을 비교 분석한 결과 남성이 34만 8389건, 여성이 6만 6025건의 교통사고를 각각 일으켰다고 한다. 여성보다 남성의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5배 많은 것이다. 운전면허소지자 100명당 교통사고 발생건수로 비교해도, 남성은 1.13건, 여성은 0.34건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약 3.3배 교통사고 발생빈도가 높았다.

이 정도라면 남자들은 여성 운전자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교통사고는 많은 경우 남자들이 일으켰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왜 현실에서 운전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내가 더 잘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일까? 

낙관적 편견의 함정

한국 남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등에서 다수 운전자를 상대로 자신이 ‘평균적인 운전자’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절대다수가 '자신은 평균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모두가 평균 이상일 수는 없다. 누군가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다면, 비슷한 만큼 평균 이하의 운전자도 있어야 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인간의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 현상을 ‘낙관적 편견’이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은, 최소한 운전자에게는 우려할만한 일이다. 심리적 편견에 빠져 자신이 과속하거나 운전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을 모르는 운전자는 운전자 자신과 도로 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큰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교통법규 위반의 주범은 자기과신?
인간은 언제나, 그리고 특히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경우 낙관적 편견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같은 차에 탑승한 운전자와 동승자에게 교통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을 설문한 결과 동승자보다 운전자가 훨씬 더 낙관적으로 대답했다고 한다. 모두들 자신이 남보다 운전을 잘하고, 따라서 사고도 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가 안전벨트나 휴대전화 사용금지 같은 새로운 교통안전 규칙을 도입할 때마다 운전자들이 저항하고, 은근슬쩍 법규를 어기는 것이다. 

문제는 운전자가 그같은 법규 위반(예를 들어 운전 중에 휴대폰 통화를 한다든가)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과대평가하면서 정작 자신의 안전에 미칠 위험은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회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동은 규제해야 하지만 자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자신은 늘 예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가 발전해도 교통법규 준수 수준이 형편없는 것이다.

실력을 믿는 사람일수록 사실은 운전을 못한다
운전자가 자기 운전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바로 운전 실력을 정확히 평가할 실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콘웰대학 심리학자 저스틴 크루거와 데이비드 더닝에 따르면, 대부분의 운전자에게는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능력이 부족하다. 영문법을 잘 모르면 어법에 안 맞는 말을 하고도 어디가 틀렸는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차의 꽁무니를 바짝 쫓아갈 때의 위험성이나 교통법규를 잘 모르는 운전자는 다른 운전자의 운전 실력에 비해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한 그러한 행동을 함으로써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미국의 운전행동 모니터링과 안전운전 교육 서비스 회사인 드라이브캠(DriveCam)사의 부사장 델 리스크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자신은 눈에 띄는 사고를 낸 적이 없으니 모범 운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사고와 직결되는 위험한 운전 습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도로에서는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 이제까지 별 일 없었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평균 이상으로 운전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차를 몰고 있다. 그리고 ‘나는 잘하는데 남들이 문제다’ 라고 생각하는 자아도취 운전자들이 늘어날수록, 타협과 협력이 꼭 필요한 복잡한 도로는 점점 더 불쾌하고 난폭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트래픽

톰 밴더빌트 | 김민주 옮김

김영사 2009.10.30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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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값이 너무 올라서 이제 맞벌이 부부가 10년을 벌어도 30평이 넘는 집을 구매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도 하고 건설회사의 높은 분양가와 부당 이득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바로 당신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딘가에 '투자'하지 않고 일만 해서 돈을 모으는 것을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뒤떨어질 수 없다면서 높은 이자를 물더라도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고 한다. 혹은 아예 부동산 투기로 나서기도 한다. 집을 사려는 수요가 늘어나니 당연히 가격이 오르게 된다. 이렇게 오르는 집값 때문에 매장 임대료도 올라가고 물가도 올라간다. 학원 임대료가 높아지니 학원비도 올라간다. 월급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려워졌다. 물가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숨만 쉬어도 300이다.' 

숨만 쉬어도 300. 아무리 애를 써도 월 300만 원은 생활비로 들어간다는 2010년의 속담이다. 결국 우리가 자신만 생각해서 올려놓은 집값 때문에 다시 우리가 고생하게 된다. 우리 집값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집값이 올라갔기 때문에 이젠 월급을 모아서 집을 사기가 더 어려워졌다. 우리가 은퇴할 때까지 채무자로 살면서 집값을 갚아야 하는 처지로 만든 것은 바로 '우리'다. 나만 잘살자는 생각이 결국 나도 못 사는 현실을 만들었다.

나를 키우는 행복한 부메랑 – 관대함

이런 현실을 깨우치는 좋은 글이 있다. 1분 정도의 시간으로 당신의 생각과 우리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모두의 행복을 위해 고민을 시작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글이다. 

마을에서 가장 우수한 옥수수를 키우는 농부가 있었다. 그의 옥수수는 항상 맛이 좋았고, 마을에서 나는 것 중 최상품이었다. 그래서 마을 농작물 경연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우승을 독차지하였다. 경연이 끝날 무렵이면 그는 내년에 심을 씨앗 옥수수를 골라냈다. 그런데 그는 그 대부분을 자기 마을 농부들에게 다시 나누어 주었다.
“왜 나눠 주는 겁니까?”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 혼자 최고 품질의 옥수수를 갖고 싶지 않으세요?”
그러나 그 농부는 “이게 바로 나를 위한 일인걸요.”라고 대답하였다.
“내 옥수수는 벌과 다른 지역에서 부는 바람이 수분(受粉)을 시켜 주거든요. 그래서 만약 벌과 바람이 나쁜 옥수수 화분을 가져오면 내 것도 나빠지게 되죠.”

그 농부는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한 일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세상의 상호 의존성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박사가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다른 배를 타고 이 세상에 왔는지 모르나 지금은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다. 게다가 그 배는 아주 작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메리 제인 라이언 | 정선희 옮김

다우출판사 2003.12.15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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