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하지는 않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21세기북스, 2003) 라는 책이 나오면서  ‘칭찬’의 중요성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부모가 칭찬하면 할수록 학습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은 입증되었다.

그러나, 정말 모든 ‘칭찬’이 좋은 효과를 가져다 줄까? 그렇지 않다. 잘못된 칭찬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여기에 관해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칭찬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캐롤 드웩 교수>

캐롤 드웩 (콜롬비아대학 교수, 심리학자)는 약 20년간 아이들의 학습동기에 관한 연구를 했다. 드웩 교수는 뉴욕 지역의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에는 “똑똑하다”, 다른 집단에는 “열심히 노력했다”고 칭찬한 다음 단계별로 문제를 풀게 했다. “똑똑하다”는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어려운 문제가 풀리지 않자 문제 풀기를 회피했고, 사실 자신은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같은 상황에 부딪혔을 때, 다양한 풀이법을 사용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칭찬은 어떻게 해야할까?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칭찬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칭찬의 효과를 높여주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상대의 장점에 집중하라.

누구에게나 장점은 반드시 있다. 그 장점을 파악하려면 먼저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 없이는 좋은 칭찬이 나오기 어렵다. 

② 구체적으로 칭찬하라.

뜬금없이 “대단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하고 막연하게 칭찬하면 상대방은 “저 사람이오늘 이상하네, 오늘 왜 이러지?” 하고 불안해 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행위, 모습, 인상 등에 대해 구체적인 표현으로 칭찬하라.

③ 상대가 잘한 그 순간에 즉시 칭찬하라.

칭찬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시간이 지나서 나중에 칭찬하기가 머쓱해질 수 있다. 칭찬하려는 순간 상대방이 곁에 없는 경우, 전화나 메모지를 사용해서 칭찬하자. 칭찬하고 싶다는 생각이 날 때는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칭찬한다.

④ 제 3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칭찬하라

당신이 칭찬하려는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을 칭찬하면 결국 그 칭찬은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칭찬을 받은 사람은 대면해서 칭찬을 받은 것보다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 칭찬하라.
상사나 동료가 결과만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사람들은 결과가 나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업무에 대해 결과뿐만 아니라 일을 수행하는 자세도 칭찬하자. 

칭찬은 결국 실행이다. 혹자는 말한다. “상대방이 잘하는 것이 보여야 칭찬을 하지.” 혹은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칭찬이 되냐?”라고. 그렇지만 어떤 점이라도 마음에 드는 부분을 애써 찾아서 일단 칭찬을 해 보고 나면 상대방이 좋게 보이기 시작한다. 즉, 일단 칭찬하고 나면 마음도 움직여서 상대방이 더 좋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어색해도 익숙해지면 최고의 효과를 발휘해 줄 것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마음 코칭

신호주

책이있는마을 2010.06.21

조애리 기자 (joaeri80@gmail.com)





연극연출가 리더십
당신은 어떤 타입
 

허정무 감독은 공을 차지 않는다. 하지만 승리의 영광도 패배의 책임도 그에게 가장 많이 돌아간다. 단체 스포츠, 영화제작, 오케스트라 연주, 회사 운영까지, 여럿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일 때는 항상 전체를 조율하고 감독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국가대표팀 감독과 주식회사 CEO, 영화감독의 업무는 차이가 크지만,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다. 리더와 구성원 개개인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개인은 자기 한 사람의 역할을 걱정하지만 리더는 전체를 걱정한다. 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나기 쉽다. 리더는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고, 개인에게는 이것이 불쾌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구성원과 리더 사이의 관계맺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위화감과 스트레스가 조직 전체를 지배하고 만다.

 

세계적 연극 비평가 케네스 M. 카메론은, 연출자가 배우들과 관계맺는 방식을 타입별로 분류했다. 이 분류는 비단 연극뿐 아니라 어떤 조직에도 적용할 수 있다.

 

꽉 막힌 부모같은 연출가 : “내가 하라는 대로 해!”

권위주의적인 연출가는 공연 전체를 강력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가장 빠르게 성과를 낸다.

단점 : 창조적인 배우를 억압하고 소외시킬 우려가 있다. 종종 끝없이 강의를 해대는 교수같이 굴기도 한다.

 

종교 지도자같은 연출가 : “내 방식대로 따라와 준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공명하게 될 거야.”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연출가는 공연에 대한 비전뿐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으며, 배우를 같은 목적을 가진 영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든다. 종종 뜻깊고 헌신적인 추종자들이 뭉쳐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단점 : 추종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냥 어이없게 보인다. 그 사람이 주역일 경우엔 문제가 심각하다.

 

상담사같은 연출가 : “날 믿어. 뭐가 문제니? 나한테 다 얘기해 봐.”

배우의 내면에 깊게 간섭하는 연출가들도 있다. 인물의 깊은 내면 심리를 다루는 연극에서, 특히 배우의 자아와 주인공의 자아가 꼭 들어맞을 때 이런 스타일이 효과가 있다. 배우는 마치 심리치료사와 같은 연출가의 인도에 따라 차근차근 자신의 내면-사실은 주인공의 내면에 도달한다.

단점 : 여간 오지랖이 넓지 않으면 이런 연출가가 될 수 없다. 이 방법이 안 통하는 배우도 있다.

 

유혹하는 연출가 : “그레이트! 판타스틱! 넌 최고야! 이건 금세기 최고의 작품이 될 거야!”

정서적, 혹은 성적 매혹은 딱히 연출의 기술은 아니지만, 다들 본능적으로 이를 활용한다. (우리는 연기지도를 하다가 여배우와 결혼해버린 영화감독을 여럿 안다.) 연출가에게 애정과 의존심을 품은 배우는 작품에 충성과 헌신을 바친다.

단점 : 종종 서로에게 맹목적이 되어 자기들만 좋은 작품을 만든다. 비판이 사라지면 소통도 사라지고, 창조성도 사라진다.

 

한탄하는 연출가 :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군! 이걸 다 내가 해야 돼?”

연출가는 많은 고통을 겪는다. 공연에 대한 부담, 리허설의 스트레스, 스텝들간의 조율, 각 장면에 대한 고민, 고민, 고민연출가는 불평하고 애걸하고 때로는 감언이설로 부추기면서 동정심 많은 배우들에게서 열성을 이끌어낸다.

단점 : 연출가의 권위는 포기해야 한다.

 

활동적인 연출가 : “다같이 이 쇼를 즐기자!”

명랑하고 젊은 활동가는 모든 것을 즐겁고 재미있고 근사하고 감동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 방법은 어린이들, 초보자들, 아마추어들에게 영감과 정열을 불어넣을 수 있다.

단점 : 연극은 저마다 성질이 다르다. 진지한 배우들에게는 너무 일방적이다.

 

농부 같은 연출가 : “이 장면은 더 좋아질 수 있어. 난 알아.”

이 타입의 연출가는 완전히 유기적이고 덧붙여 좀 막연한 형태로 배우와 스텝들이 성장하기를기다린다. 재능이나 경험을 갖춘 배우와 함께라면 더없이 창조적인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단점 : 연출가의 대책없는 태도가, 혹은 대책 그 자체가 많은 배우들에게 좌절과 분노의 원천이 된다.

 

그냥 얼간이 : “잘해봐 좀.”

대개 리허설 홀에 내내 주저앉아 있다. 그리고 무대 감독에게 불평한다. 연출은 너무 모호해서 배우들은 좌절한다. “왼쪽으로 약간 움직여.” “애증섞인 표정을 지어봐.” 이 비슷한 지시를 내린다. 잘 모르더라도 그대로 따라 하는 게 낫다.

 

 

어떤 방식이든 문제가 있다. 카메론은, 좋은 연출가는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얼간이가 될 필요까지 있는 모양이다.) 조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관계가 한 가지 방식으로 제한되는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반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생산적인 관계의 기초는 리허설 전에 연출가가 기반 작업을 어떻게 해 두었느냐에 달렸다고 덧붙인다. 다양한 소통방식도 좋지만, 준비된 모습과 유능함, 성실함이 기본으로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구성원은 어떤 형태로든 리더에게 의존한다. 리더가 좀더 정확하고 확실할 수 있다면 더 좋다. 그리고 정확성과 확실성은 준비에서 태어난다.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연극의 즐거움

케네스M.카메론 | 이상우 옮김

예문 2006.08.16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서울동물원은 천연기념물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급 동물인 수달의 인공 증식에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2010년 5월 중순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다고 한다. 서울동물원에서는 올해 3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천연기념물 증식과 보존 사업을 진행하며 올린 첫 성과라고 자랑한다. 
살아 있는 동물인 수달의 증식에 국립 '문화재' 연구소가 참여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수달도 문화재라는 것일까? 


한민족의 수난사와 함께해온 수달

수달은 우리 민족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동물이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을 떠올려 보면 한국의 특산품으로 꼭 들어가는 것이 수달피다. 한국의 수달피라고 하면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지역 전체에서 최고의 상품으로 쳤다. 귀족들이 입을 수 있는 방한복 중에서도 패션 기능까지 갖춘 최고의 상품이었다. 

고려 때 몽골 장군 살리타이가 황제 오고데이 이름으로 고려 조정에 보낸 조서를 보자. 

"삼가 황제의 지시를 받들고 우리 사신 쇼마가 그곳으로 간다. 사신이 가거든 그에게 순종하라. 사신 링콩이 물품의 종목을 바칠 것이니, 응당 그에 대한 물품을 보내야 한다. 이 물품들은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금과 은, 의복은 많으면 말 2만 필에, 적으면 1만 필에 실어 보내야 한다. 우리 군사가 집을 떠난 지 오래되어, 입고 있는 의복이 다 해어졌다. 1백만 대군의 의복을 귀하가 짐작하여 보내야 한다.
특별히 보내는 물품 외에 진자라(眞紫羅) 1만 필을 지난번에 주기로 한 수달피 2백30 매와 함께 보내야 한다. 이번에 다시 좋은 수달피 2만 매를 보내고, 귀국의 좋은 말 중에서 큰 말 1만 필과 작은 말 1만 필을...(하략)"

수달피 2만 장이라고 하면 온 나라 장정들이 한 달 내내 수달 사냥에 매달려도 모자라는 양이다. 이러한 납세 요구는 고려 정권을 흔들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이 편지를 받은 고종은 몽골의 요구를 거부하고, 결국 전쟁이 시작되고 만다. 한반도를 침략했던 국가들에게 있어 수달피는 전쟁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 매력적인 노획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수달피를 요구해온 것은 몽골만이 아니었다. 상국에 바쳐야 하는 공물로도 수달피는 한몫을 톡톡히 했다. 수달에 대한 남획은 한반도 역사 내내 이루어져 왔다. 우리 민족이 약한 만큼 수달도 함께 수난을 겪어온 것이다. 



멸종 위기의 수달 : 산업화 그리고 4대강 개발

우포늪 지킴이로 유명한 경상대학교 강병국 교수는 저서 '낙동강 하구'에서 수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낙동강 하구에서는 16종의 포유류가 발견됩니다. 그 중 진귀한 포유류는 수달과 삵입니다. 수달은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 포유류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급입니다. 

어패류와 조류,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등을 먹고 사는 수달은, 야간에 활동하지만 사람의 방해가 없는 지역에서는 낮에도 활동하는 영리한 동물입니다. 수달은 물속에서 6~8분 정도 먹이를 사냥할 수 있습니다. 
낙동강 하구는 물고기가 많아 수달의 서식 환경이 좋은 편이지만 계속되는 개발과 일부 주민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아 동물 애호가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편 정부는 장마 속에서도 4대강 사업을 강행하여, 최근 낙동강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보와 수문이 들어섰다. 내년까지 낙동강에만 6개의 보가 들어설 예정이다. 낙동강 하구의 개발은 수달의 생존환경을 완전히 없앨 가능성이 크다. 한쪽에서는 강바닥을 파내고 강둑을 높게 쌓아 자연에 사는 수달을 죽이면서, 다른 쪽에서는 수달을 보존하겠다고 인공 증식을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한반도에 외교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수달의 수난은 그친 적이 없다. 그리고 온갖 정치적 이해가 엇갈린 4대강 개발로 인해 낙동강 수역에 사는 수달은 멸종 위기 동물이 아니라 아예 멸종 동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외세와 권력에 의한 수달의 수난사는, 민초들의 수난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현재까지도 줄곧 이어지고 있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

구종서

살림 2007.07.25

낙동강 하구

강병국

지성사 2008.10.13

이동준 대표기자 (timidbear@naver.com)




 


도움말: 이 글은 20년 동안 이루어진 프레디 머큐리와의 인터뷰 및 무수한 자료를 토대로 편집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가 뮤지션으로 활동한 전 기간에 걸쳐 이런저런 자리에서 직접 털어놓은 생각과 의견들이다. 프레디의 견해는 당연히 나이가 들면서 의미 있는 변화를 거쳤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변화들이 그의 이야기에도 반영되었다. 지금부터 독자들이 읽는 것은 전부 프레디가 직접 한 말이다.

 

 

보기 드문 순간. 뮌헨의 뮤직랜드 스튜디오에서 프레디가 열창하는 모습. 《원 비전》을 녹음할 때다.  

그렇다, 난 게이다. 온갖 짓을 다 해봤다. 하지만 여자와 하듯 남자와 사랑에 빠지진 못한다. 게이 파트너를 찾으려고 작정하고 외출하지도 않는다. 이 세계에선 진실한 친구를 찾거나, 그런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게이도 많고 여자들도 많다. 나이 든 남자들도 많다! 나에겐 5년 동안 동거한 메리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고 남자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폭넓은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가능한 멀리까지 가보려는 것일 뿐이다.


난 평범한 인간이다.
나도 그저 한 인간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난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이가 무대 위 나의 페르소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나의 참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다. 모두 나의 명성∙스타덤과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내 뜻과 반대로 된다. 난 관계를 원하지만 항상 그것과 싸워야 한다는 걸 느낀다. 내가 괴물을 만들어 낸 모양이다. 관계를 맺으려면 무대 위의 나를 인정해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 그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분리하기가 무척 어렵다. 내 인생에도 몇 번의 로맨스가 있었지만 다 슬프게 끝났다. 진정한 누군가를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들이 널 원하든, 팝 스타 프레디 머큐리를 원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성공했다고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말할 때도 있다. “아냐, 오늘은 슈퍼스타가 되기 싫어. 나 혼자 길거리에 나가 보고 싶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유명인이 되고 나면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저기요, 나도 실은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말하기 힘든 법이다. 



                               1986년 고양이 티파니와 함께. 프레디는 첫 솔로 앨범 《미스터 배드 가이Mr Bad Guy》를 
                               어머니도, 
아버지도, 누이동생도, 퀸 동료들도 아닌 바로 자신의 고양이에게 헌정했다. 
                                     "이 앨범은 내 고양이 제리에게 바친다. 또 톰과 오스카 그리고 티파니에게도,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머지는 다 꺼져라." 


난 상처를 입더라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마음속에 앙금을 품고 지내는 사람은 아니다. 배신당하는 그 순간 내 첫 반응은 이렇다. “나쁜 새끼, 나한테 걸리기만 해 봐라!” 하지만 그것도 차차 희미해져서 결국은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럴만한 가치도 없다. 가까운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모른 채 넘어갈 수 있었냐?”라고 묻는다.
글쎄, 난 원래 잘 속기도 하지만……멋진 사람이니까.


혹시 내 노래 <리빙 온 마이 오운>을 들어 보았는가?
그건 바로 나다. 혼자서 살아가되 즐길 줄 아는 것.
내가 스캣 창법으로 노래하는 중간 부분에도 그런 내용이 살짝 나온다. 다들 누군가 날 좋아하고 내 생활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 사실 난 세계를 돌아다니고 호텔을 전전하며 살아야 하고 그건 대단히 외로운 삶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그건 내가 선택한 삶이다. 이 노래는 지하방이나 그런 여건에서 자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노래가 아니라, 혼자 살아가는 ‘나’의 삶을 다룬 노래다. 그러니까 날 돌봐 주는 사람들이 한 무더기 있다 해도 결국은 그들 모두 가버리고 나 홀로 호텔 방에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불평하는 건 아니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니까. 곁에서 내 성공을 지켜 준 사람들 역시 외로울 수 있고, 그들 또한 혼자서 살아갈 수 있겠지. 난 그저 혼자 살아가면서 신나게 즐기고 있다는 말을 하는 거다. 이제 다들 이해가 되겠지?


난 마찰도 꽤 많이 빚는 편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만큼 쉬운 사람이 못 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순 있지만 함께 살긴 굉장히 힘든 상대다. 날 참고 견딜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가끔씩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내 욕심이 지나친가 보다. 난 그저 뭐든지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을 뿐인데,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난 사랑이 무척 많고, 주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많은 걸 요구하지만 그 보답으로 많이 베풀기도 한다.
 

 

             뮌헨의 스튜디오에서 휴식을 취하며.  스크램블 게임에 한번 빠졌다 하면 프레디도 카메라를 피할 재간이 없다. 
                                      이때 퀸의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이었는데, 현장의 카메라 팀은 어쩔 수 없이
                                                             퀸의 녹
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대개 퀸은 엄격하게 비공개로 작업을 했다. 


난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있다.
성욕도 왕성하다. 닥치는 대로 동침하니까 마음대로 갖다 붙이시라! 내 침대는 여섯 명이 자도 될 만큼 아주 널찍하다. 난 성가신 문제에 휘말릴 일이 없는 것을 더 좋아해서 극도로 문란할 때도 더러 있었다. 한동안 아침마다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서 오늘은 누구하고 할까 궁리하며 지내기도 했다. 난 굉장히 밝히지만 이제는 많이 가린다. 난 원하는 건 모두 얻고 싶다. 안전한 것도 좋지만 자유롭고도 싶다. 지금은 오로지 혼자 살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그게 좋다. 전에는 혼자선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주변에 사람들이 꼭 있어야 했는데, 이젠 혼자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게 좋다.
난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 자유로움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너무나 즐겁게 지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지낼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사람은 누구나 변하기 마련이어서, 나와 같은 또래로 40대인 엘튼Elton John[영국태생의 가수이지 작곡가]처럼 갑자기 정착해서 아이들이 갖고 싶어질지 모른다. 엘튼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빨리 그렇게 된 것 같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할 줄 알았던 엘튼이 그렇게 될 줄 누구도 알 수 없었듯이 그런 일도 생길 수 있는 거다.

라이브 에이드 분장실에서 사진작가 데이비드 베일리David Bailey와 프레디가 함께한 영원히 남은
소중한 순간.
   그리고 같은 때 엘튼 존과 함께. 두 전설이 같이 있다니! 

난 음악과 결혼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했다. 그럴 시간도 없겠지만 어쨌든 음악과 결혼하진 않았다. 음악은 내 일이고 직업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지는 않더라도 내 직업이다. 난 음악을 생계 수단으로 여긴다. 난 철저히 낭만적인 사람이고 사랑과 사람들과 결혼했다.


난 태풍이 지나간 후의 진정한 고요 같은 걸 원했다.
모두 내가 폭풍 같은 관계를 맺을 거라고 기대한다. 사실상 나는 대중매체 활동으로 먹고살고 있고, 누구든 그 일에 휘말리면 나처럼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난 항상 배의 선장이자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열심히 일했고 만인을 위해 심지어 무대 밖에서도 공연했는데 가끔은 그냥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다른 사람들이 하게 두자. 넌 그냥 너 자신을 찾아서 평범해지려고 노력하는 거야.’ 공연을 해야 한다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공연과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사람들에게 이제 지겹다고 말해.’ 그건 근사한 일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지겹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하지만 난 이제 그게 좋다. 지겨우면 지겹다고 말하고 다른 일을 찾아서 기분 전환을 한다.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즐겁게 해 주길 바란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지루하다고 말했다면 난 아마 미쳐서 안절부절못했겠지만…… 지금은 그게 좋다.


난 현재 맺고 있는 관계에 행복을 느끼고, 솔직히 그 이상을 바랄 순 없다.
일종의 위안이 된다. 그래, 그게 적절한 말이다. 우린 그걸 갱년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거기엔 요즘 내가 받은 그런 종류의 위안이 있다. 이젠 너무 열심히 애쓸 필요가 없다. 나 자신을 입증할 필요도 없다. 난 무척 배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꽤 따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근사한 일이다.

마침내 난 평생 찾던 둥지를 발견했고, 이 세상 어떤 빌어먹을 놈도 그걸 망치진 못할 거다.
 *1984년에 프레디는 짐허튼Jim Hutton[머큐리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허튼은 미용사로 1990년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았다.]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91년 프레디가 사망할 때까지 커플로 함께 지냈다.

                 

 "고맙습니다, 신의 축복을 받으시고 달콤한 꿈 꾸시길!" 
이 말은 프레디가 1977년에 런던에서 가졌던 얼스 코트 공연에서 무대를 떠날 때 던진 말이다. 
나중에 다른 콘서트에서도 비슷한 인사말을 많이 던지긴 했지만. 이 사진은 매직 투어 중 콘서트가
 너무
 순식간에 끝나자 프레디가 자신에게 푹 빠진 관중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하는 모습이다.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년 9월 5일~1991년 11월 24일)는 영국의 대중음악 가수이다. 퀸의 리드싱어로 4옥타브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재능있는 보컬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다. 최대의 히트 앨범 《어 나이트 앳 디 오페라 A Night at the Opera》(1975)에 수록된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는 9주 동안이나 영국의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그레그 브룩스 | 문신원 옮김

뮤진트리 2009.07.07

정다운 기자 (dawninboo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