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동 납치성폭행범 김수철이 범행 전 음란동영상 52편을 봤다는 보도가 나왔다. 많은 매체들이 일제히 이를 헤드라인으로 다루며 큰 관심을 보였으며, 이를 범행과 연결하는 해석도 많았다. 연쇄살인이나 성폭행범을 다룬 TV·영화 등은, 이와 같은 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대안을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동시에 범죄 수법을 가르치고 모방범죄를 부른다는 비판도 있다. 폭력적인 매체와의 접촉은 정말 폭력으로 이어질까? 이 해묵은 논쟁은 수없는 공방을 거치고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직 사건기자이자 형사사법학자인 한남대학교 이창무 교수의 견해를 소개한다.

 


영화나 TV가 범죄를 유발할까?

이창무(한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국내에서 지난 1996년에 개봉한 영화 <히트(Heat)>는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를 비롯한 할리우드 유명스타들이 대거 출연하여 꽤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단 작품으로, 요즘도 가끔 케이블TV를 통해 재방영되곤 한다. 그런데 <히트>는 영화에서만 히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히트한 작품이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빛은행 중랑교지점 은행강도 사건은 영화 <히트>가 교과서 역할을 했다.

이 은행을 털었던 4인조 은행강도들은 영화 <히트>를 여러 차례 보며 치밀한 범행계획을 세웠다.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듯이 범행 계획서까지 작성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범행에 사용할 자동차와 번호판을 훔치고, 군부대에서 소총과 실탄을 탈취하고, 은행 주변을 여러 번 사전 답사하고 나서 실제 범행에 들어갔다.


범죄 영화나 드라마를 본뜬 모방범죄들

2007년에 인천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은 유독 치를 떨게 만든 범죄로 기억하는데, 당시 숨진 초등학생의 아버지는 그해 상영된 영화 <그놈 목소리>를 언급하면서 "우리 아이가 사악한 모방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말했다. 경찰조사에서 유괴범은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지만, TV·신문 등의 각종 매체들에 실린 영화 소개나 동일 사건을 심층 보도한 TV 시사고발 프로그램 등을 통해 당시 유괴사건의 내용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꼭 <그놈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공중전화를 이용한다든가 약속장소를 수차례 바꾸든가 하는 수법이 모방된 것을 보면, 언론이건 영화건 간에 미디어가 범죄수법의 교사 역할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20명 넘게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영화 <공공의 적>에 나온 경찰신분증을 보고 신분증을 위조하고, 또 어떻게 하면 경찰 수사망에 걸리지 않을지를 연구했다고 실토한 바 있다.
영화나 TV를 본 뒤에 실제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이 외에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친구>가 8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을 당시, 이를 본뜬 모방범죄가 속출했다. 심지어 학교 교실에서 같은 반 친구를 칼로 찔러 죽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이 상영된 뒤에는 실제로 주유소를 터는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또 이미 10여 년 전의 사건이기는 하지만, 1994년에 아버지를 죽인 박한상도 귀국 비행기에서 영화 <드레스드 투 킬>을 보고 토막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CSI>, <크리미널 마인드>, <프리즌 브레이크>를 비롯한 여러 범죄수사드라마들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데, 이들 드라마는 특히 전문적이고 철저한 고증과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무기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일반 관람객이나 시청자들이 이 같은 범죄 영화·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얻는 반면, 범죄와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숙제를 떠안고 있다.
"범행 현장에 가면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요. 지문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저런 범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니까요." 오랜 범죄수사 경력을 자랑하는 어느 베테랑 형사의 말이다. "최근에 <CSI> 열풍으로 과학수사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 후유증이 정말 심각해요. 새로운 범죄수법은 물론이고 경찰의 수사기법까지 너무 자세하게 소개하니까 말이죠."
얼마 전에 붙잡힌 연쇄살인범 강호순 역시 몸싸움 과정에서 피해자의 손톱에 자신의 살점이나 머리카락이 낄 수 있다고 판단하여 피해자의 손톱을 모두 자르는가 하면, 경찰이 인터넷 검색내용을 조사하자 자신의 컴퓨터를 새로 포맷하기도 했다. 사건을 맡은 경기경찰청 폭력계장은 "마치 미국의 범죄수사드라마 <CSI>나 인터넷을 통해 범죄행동요령을 학습한 것처럼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중앙일보』2009년 1월 28일자 보도)


모방범죄를 일으키는 네 가지 요인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범죄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를 감독한 제임스 캐머런은 "설사 모든 사람들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영화만 본다 해도 쇠톱으로 사람의 머리를 자르는 범죄는 발생할 것"이라고 항변한 바 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처럼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폭력과 전혀 상관없는 영화만 만든다고 살인이 없어지겠느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모방범죄는 영화나 TV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국의 학자 조지 컴스탁(George Comstock)은 범죄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모방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네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 효험성이다. 모방범죄가 생길 가능성은 영화나 TV에서 살인이나 범죄행위가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느냐에 달려 있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경찰이 출동하고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는데도, 결국 노마크, 딴따라 등의 범인들은 챙길 것 다 챙기고 스포츠카까지 타고서 유유히 사라진다. 오랜 기간 국민 위에 군림해 온 경찰이 온갖 망신을 다 당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 내지 고소함을 안겨주었을 수도 있지만, 처벌의 모습이 없는 영화나 드라마는 모방범죄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매우 크다.
둘째 요인은 정당성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의 범죄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따라 모방범죄의 발생 가능성이 결정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나라도 그렇게 했겠다', '잘 죽였어' 하는 생각이 들면서 범인의 행동이 마음속으로 정당화되면 모방범죄의 가능성이 커진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범인들은 하나같이 왜곡된 사회구조의 피해자들이다. '이유 있는 반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레옹>에서 레옹은 살인청부업자다. 부모 잃은 소녀 마틸다를 위해 경찰을 비롯하여 숱한 사람을 죽인다. 돈도 안 받고, 그래서 관객들은 레옹에게 더욱 끌린다. 프랑스 영화 <루지탕>에서 알랭 드롱 역시 은행을 털어 자신과 같은 집시들을 돕는다. 의적인 셈이다. 의리 있고 잘 생기고 멋있으니 따라 하고픈 생각이 드는 것이다.
셋째, 관련성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장면이 현실과 잘 맞아떨어질수록 모방범죄의 가능성은 커진다. 또 영화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과 자신의 입장이 비슷할수록 쉽게 모방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영화 <히트>에서 로버트 드니로는 이제 은행강도 생활을 접고 정착하려 했다. 마지막 한탕만 멋지게 하고서 뉴질랜드로 날아갈 계획이었다. 한빛은행 중랑교지점 은행강도들도 한탕을 노렸다. 로버트 드니로 일당이 준비한 것처럼 치밀하게 계획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은 은행으로 달려갔다. 총을 든 채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나 TV를 보는 관객의 민감성이다. 충동적인 성격의 관객일수록 모방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똑같은 영화나 관객일수록 모방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똑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는 그 안에 쏙 빠져들었다가도, 끝나고 나서 밝은 곳으로 나오면 다시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마치 폭약 심지에 불을 붙여주기만 기다리는 것 같은 태도로 영화나 TV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교도소에 들어가도 이런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TV방송이 시작되면서 범죄율이 급증했다

범죄 영화나 드라마가 범죄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범죄를 저지를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갑자기 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있었는데, 범죄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서 이런 방법이나 기법을 사용하면 잡히지 않고 범행에 성공하겠구나 하는 믿음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범죄 영화나 드라마가 범죄의 동기요인으로 직접 작용한다기보다는 주로 범죄기법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범죄 영화나 TV드라마가 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미디어와 범죄의 상관성을 줄곧 연구해온 레이 슈레트(Ray Surette) 같은 학자는 영화나 TV가 어떤 형태로든 범죄에 확실히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설령 완벽한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 영화를 접하는 곳도 주로 TV라는 점에서, TV의 영향력은 더욱 중요하다. TV가 범죄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많이 연구되어왔는데, 그 가운데 특히 재미있는 것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캐나다, 미국을 비교 검토한 브랜드 센터월(Brandon Centerwall)의 연구를 들 수 있다. 남아공은 백인 지배하에 일찍이 서구화된 나라다. 그러나 놀랍게도 1975년 이전에는 그곳에 TV방송이 없었다. 흑백 인종갈등으로 인해 수십 년간 TV 도입을 제도적으로 막아왔기 때문이다. 1937년에 영국 BBC방송이 세계 최초로 TV방송을 시작한 이래 거의 40여 년간, 남아공에서는 TV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센터월은 미국과 캐나다가 남아공보다 수십 년 빠르게 TV방송을 시작한 점에 착안하여, 미국과 캐나다, 남아공의 범죄율을 비교했다. 이때 남아공의 흑인이 미국이나 캐나다의 흑인들과 상당히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비교대상은 오로지 세 나라의 백인들로 한정했고, 통계는 가장 정확한 범죄통계로 인정받는 살인율에 국한했다.

1945년에서 1974년 사이에 미국의 살인율은 93%, 캐나다의 살인율은 92%가 늘었다. 반면 TV가 없었던 남아공에서는 살인 범죄율이 오히려 7%로 줄었다. 이 기간의 경제성장은 세 나라 모두 비슷했다. 캐나다가 124%의 경제성장률을 보였고, 미국이 75%, 남아공은 86%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또한 살인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연령분포, 도시화, 술 소비량, 사형제도 여부, 총기휴대 합법화 여부 등의 모든 요소를 검토했지만, 세 나라 모두 큰 차이가 없었다. 유일한 큰 차이는 TV가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센터월은 보다 정확한 연구를 위해 미국의 지역별 살인율을 조사했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은 TV방송을 시작한 시기가 지역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TV방송을 먼저 시작한 지역의 살인율이 TV방송을 아직 하지 않고 있던 지역의 살인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센터월은 인종별 살인율의 변화 추이도 살펴보았다. 당시 미국 백인들은 흑인을 포함한 소수인종들보다 평균 5년 정도 TV 구입이 빨랐다. 미국에서 백인의 살인율은 1958년을 기점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의 살인율 증가는 4년 뒤에 나타났다. TV가 특히 아동기에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범죄율의 급격한 증가는 10여 년 정도의 지체효과를 지니게 된다. 미국이 상업 TV방송을 1950년에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범죄율이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TV는 분명 범죄를 촉진한다.

어린이들이 폭력성 강한 TV프로그램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면 폭력에 대한 저항심리가 약화되어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미국 뉴욕주립정신의학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소아기에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길수록 범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75년에 뉴욕 주의 어린이 707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TV시청 시간이 1시간 미만인 어린이들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전반까지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비율이 9.1%였지만, 시청 시간이 1~3시간인 어린이들이 나중에 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28%, 3시간 이상은 39.9%로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의 소아과 전문의 로버트 세지(Robert Sege) 박사는 TV의 위험성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TV는 행동을 모방하고 배우는 어린이들이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물론 TV방송이 범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TV방송이 없던 100년, 500년 전에도 범죄는 분명 존재했다. 이처럼 범죄와 TV의 완벽한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데는 무리가 따르지만, TV가 범죄의 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범죄 동기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TV방송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범죄 동기가 충분한 사람들에게는 범죄를 실행에 옮기도록 만드는 유혹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범죄 관련 내용이 TV를 통해 방영될 때 많은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보고 지나가지만, 일부는 '저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겠구나'라든가, '저러면 잡히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순간의 생각은 신념같이 굳어지고 결국 범행으로 이어진다.


대기오염을 이유로 모든 공장의 문을 닫을 수는 없는 것처럼, 범죄를 이유로 TV방송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설치하여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듯이, TV방송도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내용을 최대한 걸러내야 한다. 지금도 물론 시청자 감시 프로그램 등이 존재하지만, 시청률이 곧 신(神)인 현실에서는 아직 공허한 몸짓에 불과하다.


<이 기사는 (주)메디치미디어와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패러독스 범죄학

이창무

메디치미디어 2009.06.23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