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모헨조다로는 기원전 1500년경 사라진 인더스 문명의 도시이다. 그런데 이 유적지에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과 비슷한 수준의 방사능 함량을 가진 물질이 발견됐다면? 더욱이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서사시에 묘사된 고대의 전쟁에 흡사 핵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가 들어있다면…?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다.

파키스탄 신드(Sind) 지방 남쪽에는 반원형의 폐허가 있다. 이곳은 낮에는 강한 모래바람 때문에 눈조차 뜨기 어려우며, 밤이면 추위가 엄습하는 사막이다. 오랫동안 현지인들에게 '죽은 자의 언덕'으로 불렀던 이 폐허에서, 1922년 우연히 동물의 모습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자가 새겨진 몇 개의 석각 인장이 발견됐다. 그 후 60여 년 동안의 고고학 조사와 발굴을 통해 이곳이 기원전 2600년경 건설된 고대도시의 유적지, 모헨조다로(Mohenjo-Daro)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은 폐허가 된 모헨조다로 유적지 ⓒ예문

모헨조다로는 청동기시대 인더스 강 유역에 세워진 웅장한 도시였다. 독특한 점은 성벽과 공공건물, 일부 도로와 상하수도를 모두 불에 구운 벽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시규모로 볼 때 당시 인구는 약 40,000여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의 도로는 대부분 동서와 남북으로 열을 맞추어 곧게 뻗어 있으며 서로 교차한다. 수천 채의 집들은 바둑판처럼 정렬돼 있었다. 모든 집은 6~10개의 방과 정원으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 우물과 깨끗한 욕실을 갖추고 있었고, 잘 정돈된 배수구로 폐수를 내보냈다. 또한 외벽 안쪽에는 쓰레기 전용 배출구가 있어서 주민들은 이 통로를 통해 쓰레기를 바깥쪽 도랑으로 버렸다. 그 도랑은 다시 하수도 체계와 연결됐다. 이처럼 정돈된 오물 및 오수 처리체계는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도시는 문명발전의 중요한 지표이다. 일부 학자는 모헨조다로처럼 발달된 도시계획은 1,000여 년 뒤 고대 로마시대에서나 볼 법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모헨조다로가 한창 번성했을 무렵은 대다수 인류가 동굴에서 살거나 나무와 진흙으로 엮은 엉성한 집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모헨조다로에서 출토된 청동 인물조각상. 모헨조다로에서 발굴된 세련된 예술품들은 고대 인도인들이 우월한 문명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문

그러나 기원전 1500년 무렵 어느 날, 모헨조다로는 갑자기 모래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는 이곳 주민들이 짧은 시간 내에 도시를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모헨조다로 주민들이 도시를 버리고 이주했다면, 어째서 다른 곳에서는 비슷한 도시문명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이런 수수께끼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옛날 모헨조다로 지역은 넓은 인더스 강의 영향으로 초목이 무성하고 관개시설을 통해 드넓은 옥토가 있어 찬란한 인류문명을 꽃피웠던 곳이라고 한다. 후에 지나친 방목과 개간으로 생태균형이 파괴되면서 땅이 척박해졌고, 뜨거운 태양 아래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고 강한 바람이 잦아지면서 끝내 사막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만으로는 수만 명에 이르던 주민들의 실종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혹시 대지진 같은 재해가 도시를 파괴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어디에서도 지진 등 재앙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전염병이 주민들을 내몰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주민들은 왜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 같은 수준의 도시를 재건하지 않았을까? 이외에 다른 민족의 침략설을 제기한 사람도 있으나, 모헨조다로 같은 문명이 인근의 원시 야만족에게 정복당했으리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모헨조다로가 인도어로 '죽은 자의 언덕'을 뜻한다는 것이다. 혹시 이 이름 이면에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일련의 유골들은 이런 의문에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 길가의 유골들은 재난이 미처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발생한 듯 누워있었는데, 이 유골들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희생자들과 비슷한 정도의 방사선 함량이 검출됐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은 폐허에서 마치 원자탄이 터진 마냐 지상에 남아있는 충격파와 핵 복사열의 흔적을 찾아냈다. 유적에서 발견된 대량의 점토와 광물 파편을 분석해본 결과 섭씨 1,400~1,500도에서 용해된 것임이 밝혀졌다. 이런 온도는 당시의 제련기술로는 이를수 없는 수치였다.

모헨조다로 거리 곳곳에서 발견된 검은 유리덩어리들은 이러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유리처럼 결정화된 돌 파편들을 분석한 결과, 짧은 시간 내에 섭씨 1,500도 이상의 높을 열을 받았다 급속하게 식는 과정에서 고체화된 돌이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이 암석들은 핵폭발로 인해 발생한 고열이 주변의 암석을 녹여 만들어지는 트리니나이트(Trininite, Atomite 또는 Alamogordo Glass라고도 함)와도 매우 유사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고열을 발생시켜 지면에 흔적을 남기고 돌을 유리질화 시킬 사건은 단 하나, 핵폭발뿐이다. 

"구르카는 빠르고 강력한 비마나(전차의 이름)를 타고 브리시스와 안타카의 도시를 향해 단 한 발의 발사체를 쏘았다. 이 무기는 마치 온 우주의 힘이 응집돼 있는 듯, 태양의 만 배만큼 밝은 불과 연기의 백열 기둥을 솟구쳐 오르게 했다. …강력한 벼락, 거대한 죽음의 메신저는 브리시스와 안타카의 모든 사람들을 재로 만들어버렸다."
기원전 10세기경에 있었던 바라다족의 전쟁을 기록한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한 장면이다. 시는 당시의 전쟁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공중에서 폭발이 있었고, 곧 섬광이 이어졌다. 남쪽 하늘에서는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는데, 태양처럼 밝은 불빛이 하늘을 둘로 갈라놓았고, 집과 거리와 모든 생물이 이 갑작스러운 불길에 모두 타버렸다. …무서운 열기가 동물을 쓰러뜨렸고 강물을 끓게 했으며 물속의 고기들이 익어 죽었다. 시체는 마치 마른 나무처럼 타버렸고 머리카락과 손톱은 떨어져 나갔다. 날던 새는 공중에서 타죽었으며, 식물은 모두 오염됐다."
폭발로 인한 섬광, 밝은 불과 연기의 백열 기둥, 강물을 끓게 할 정도의 열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를 읽고 영화 속 핵전쟁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원자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조차 고대 인도 서사시에 나오는 이 기록이 마치 핵폭발 후의 상황 같다고 했을 정도이다.

 

역사 이전의 전쟁을 기록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여기에 묘사된 전쟁장면은 핵전쟁 장면을 연상시킨다. ⓒ예문

핵전쟁을 연상시키는 전쟁장면이 고대인들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면,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핵폭발 증거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도 없는 신화 속 전쟁들이 실재한 것이었고, 고대문명이 정말 핵폭발로 인해 일시에 소멸된 것이라면? 핵전쟁에 대한 위험성이 끊임없이 대두되는 21세기, 모헨조다로를 둘러싼 섬뜩한 추측과 마하바라타 속 전쟁 이야기는 과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주)예문과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발칙한 고고학

후즈펑 | 송철규 옮김

예문 2009.12.05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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