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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7 [생활/문화l문화일반] 조선의 애연가, 흡연론을 외치다


조선의 애연가, 흡연론을 외치다
정조에게 '경고' 먹었던 괴짜문인 이옥, '담배의 경전' 저술하며 흡연예찬 펼쳐

이제는 담배도, 담배 피우는 사람도 천덕꾸러기인 세상이다. 금연 건물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규제책도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서울시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버스정류소, 공원, 학교 앞 200m 등의 구역에서 흡연행위를 하면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애연가들은 '정류장은 몰라도 공원은 너무하다.'고 목소리를 내지만 무슨 소용이랴. 애연가들의 발붙일 곳은 사라져만 가고 있다. 냄새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구박당하는 건 기본이고, 직장이 통째로 금연 건물이라 할 수 없이 나가서 '한 대' 피고 오는 사이 '농땡이 부리는 사원'으로 찍히기 일쑤다. 건강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자기관리 안 하는 사람' 낙인이 붙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담배다. 애연가들은 오늘도 핍박에 항거하는 투사의 심정으로 '흡연은 문화다.'라고 되뇌며 불을 붙인다.
건강 바람 부는 요즘 세상엔, 외로운 애연가들에게 편이 되어 줄 이가 아무도 없으니 역사 속에서라도 동지를 찾아봄직하다.


<휴식. 이교익(李敎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름날 나무 아래서 쉬는 세 사람이 모두 담뱃대를 들고 있다. 담뱃불을 붙이는 사람, 쌈지에서 담배를 꺼내는 사람, 대통에 담배를 담는 사람의 태도가 모두 재미있다. 생활 속에 파고든 담배의 위력을 느끼게 한다.ⓒ 휴머니스트>

조선의 문인 이옥(李鈺)은 엄청난 애연가에다 발랄한 괴짜였다. 유학자들의 딱딱한 글쓰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형식 없는 소품체(小品體)의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는 심지어 국왕이 출제한 문장 시험에서까지 이런 글쓰기를 구사했다가, 정조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엄명과 함께 문체를 고칠 때까지 과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정지당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어찌나 담배를 좋아했는지, 절에서 담배를 피우다 핀잔을 들은 사연을 소재로 <담배 연기>라는 소품문을 짓기도 하고, 담배를 의인화한 '남령장군'이 등장하는 <남령전>이라는 가전소설도 썼다. 결국은 그것도 모자라 총 4권에 걸친 '담배의 경전'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담배의 유래에서 시작해서 재배법, 피우는 법, 담배 용품, 가짜담배 판별법까지 담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담배 매니아가 쓴 조선시대 담배의 문화사인 셈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백미는 다양한 흡연 예찬이다. 이옥은 담배 피우는 데에도 이치가 있다며 이 책에서 일곱 가지 담배의 효용을 주장했다.

이옥이 말하는 일곱 가지 담배의 쓰임새
첫째, 밥 한 사발을 배불리 먹은 뒤에는 입에 마늘 냄새와 비린내가 남아 있다. 그때, 바로 한 대를 피우면 위(胃)가 편해지고 비위(脾胃)가 회복된다.
둘째, 아침 일찍 일어나 미처 양치질을 하지 않아서 목에 가래가 끓고 침이 텁텁하다. 그때, 바로 한 대를 피우면 씻은 듯 가신다.
셋째, 시름은 많고 생각은 어지러우며, 하릴없이 무료하게 지낸다. 그때, 천천히 한 대를 피우면 술을 마셔 가슴을 씻은 듯하다.
넷째,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간에 열이 나고 폐가 답답하다. 그때, 서둘러 한 대를 피우면 답답한 기운이 그대로 풀린다.
다섯째, 큰 추위가 찾아와 얼음이 얼고 눈이 내려 수염에도 얼음이 맺히고 입술이 뻣뻣하다. 그때, 몇 대를 연거푸 피우면 뜨거운 탕을 마신 것보다 낫다.
여섯째, 큰비가 내려 길에는 물이 넘치고 습기로 눅눅하여 자리와 옷에는 곰팡이가 핀다. 그때, 여러 대를 피우면 기분이 밝아져서 좋다.
일곱째, 시구(詩句)를 생각하느라고 수염을 비비 꼬고 붓을 물어 뜯는다. 그때, 특별히 한 대를 피우면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시가 절로 나온다.

<연경, 담배의 모든 것(휴머니스트)> 중에서

 
여기 덧붙여 '언제 담배가 가장 맛있나'를 이야기하면서 드는 예시는 그야말로 폭소를 부른다.

"대궐의 섬돌 앞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서 있다. 엄숙하고도 위엄이 있다. 입을 닫은 채 오래 있다 보니 입맛이 다 떨떠름하다. 대궐문을 벗어나자마자 급히 담뱃갑을 찾아 서둘러 한 대를 피우자 오장육부가 모두 향기롭다.(...) 이는 당해본 자만이 알리라."

사장님, 전무님 앞에서 잔뜩 긴장하다가, 브리핑 룸을 나서자마자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뒤지는 오늘날의 샐러리맨들과 다르지 않다. 200년 전의 이옥과 현대의 애연가가 만난다면, 생각도 환경도 다 다르지만 담배를 화제삼으면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유명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는 경비중에 마주친 남북 군대가 대치한 상황에서 양측 지휘관끼리 말없이 담배를 한 개피씩 교환하고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건강에 나쁘네 사회적 문제네 해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담배의 멋과 효용. 그중의 제일은 '피워본 사람들만 아는' 공감대의 효용이 아닐까.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이옥 | 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2008.01.14


정다운, 이진의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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