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가 세계문화유산? ‘악의 문화’도 문화다


아우슈비츠. 나치 독일의 악명높은 강제수용소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교육에서 가장 먼저 제기되어야 할 요구는 다시는 아우슈비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우슈비츠는 어떤 곳이었을까?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도르노는 독일인의 모든 교육이 아우슈비츠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많은 독일인이 그 말에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

아우슈비츠가 독일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남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폴란드 사람들에게서는 오슈비엥침(Oświęcim)이라고 불린다. 별다른 특징 없는 이 작은 도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나치 독일이 이곳에 세운 강제수용소들 때문이다. 흔히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부르는 나치 강제수용소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가 아니었다. 주 수용소 역할을 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제1수용소)와 악명높은 가스실이 있는 살인공장으로 가동되었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제2수용소), 그리고 강제노역의 본거지였던 아우슈비츠-모노비츠 수용소(제3수용소)가 모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통칭되고 있다. 

원래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남부에서 작센 독일 지방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서, 이미 1916년부터 추수철이 되면 작센 지방으로 일하러 가는 폴란드 농업노동자들을 위한 수용소가 있던 곳이었다. 이런 교통의 이점에 주목한 나치 독일은 1939년 폴란드 침공 직후 체포한 유대인들을 이 수용소에 임시로 수용했다. 이듬해인 1940년, 나치 독일은 이곳의 시설을 확장하여 폴란드의 저항운동 가담자들을 수용하는 정치범 수용소로 만들었다. 그게 제1수용소이다. 제1수용소에는 나치 친위대(SS)건물과 살인실험을 위한 연구동이 있었다. 

유대인 절멸정책을 수립한 이후, 나치 독일은 다시 아우슈비츠 시에서 북서쪽으로 3km쯤 떨어진 작은 마을 비케르나우에 네 개의 가스실을 갖춘 절멸수용소를 세웠다. 폭증하는 시체를 감당하기 위한 화장장도 차례차례 증설되어 6개까지 세워졌다. 시체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가스실과 화장장 사이를 엘리베이터로 연결하는 일체형 처리시설도 마련되었다. 이 같은 시설을 통해, 아우슈비츠-비케르나우에 도착한 수감자들이 살해당해 한 줌의 재로 변하기까지 길어야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학자들은 살인의 문명화, 절멸의 기계화라는 말로 이를 표현하기도 한다.

가까운 모노비츠에는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헐값에 활용하기 위해 제3수용소가 세워졌다. 모노비츠에는 합성고무를 생산하는 이 게 파르벤(I.G.Farben) 공장을 비롯해 수많은 군소공업 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제3수용소 외곽에는 다시 40여개의 소규모 수용소가 있어 탄광, 철공소, 공장 노동에 필요한 사람들을 수용했다. 

이렇듯 아우슈비츠는 격리수용, 생산, 절멸의 기능이 어우러진 복합수용소였다. 나치스가 유럽 전역에 세운 수천 개 수용소의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이 점령한 유럽 전역에서 모두 130만 명이 아우슈비츠로 끌려왔으며, 이들 가운데 20만 명만이 목숨을 부지했다. 110만 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이들 가운데 90만 명은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직행하거나 총살되었고 나머지 20만 명은 질병과 영양실조,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대우, 생체실험으로 희생되었다. 110만 명의 희생자 대부분은 나치 독일이 절멸의 대상으로 선언한 유대인이었고, 집시와 슬라브인,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정치범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폴란드 정부는 이 살인의 현장에 국립박물관을 세웠으며, 매년 7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2007년 6월 27일, 아우슈비츠에 설치된 세 개 수용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근대 서구 문명의 문제점을 이곳보다 더 잘 설명해줄 역사적 장소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아우슈비츠라는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기억의 처소로서 남아있다. 아우슈비츠는 선조들의 범죄, 선량한 사람들의 희생, 인간악의 무한함에 대한 부담스러운 기억 위에, 그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많은 이들이 기울여온 엄청난 노력에 대한 기억까지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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