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들에서 눈먼 노숙자로, 노숙자에서 베푸는 삶으로...
이청준 소설<낮은 데로 임하소서> 속 실제 주인공, 안요한 목사의 삶과 세상

그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고생에 찌든 목회자의 삶도,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지는 성경 내용도 싫기만 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신학대학원에 들어갔지만, 결국 박차고 나와 세상에 뛰어들었다.
한때는 인생이 차곡차곡 풀렸다. 가정도 이뤘다. 그런데 나이 서른일곱에 갑자기 원인 모를 눈병이 그를 덮쳤다. 병원도 약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시력을 빼앗겼다. 때는 1975년,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순식간에 살 길이 끊어지고,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몇 번의 자살 시도도 실패로 돌아간 후, 그는 노숙자로 전락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본 새 빛
삶의 의미는 가끔 삶 그 자체보다 질기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 그에게 내밀어진 손은 높은 곳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수개월의 노숙 생활 끝에 흘러든 서울역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살아가던 고아 소년들이 그를 가족처럼 보살펴주었다.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의 외롭고 힘겨운 처지를 들으며, 그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온 과거의 삶을 한없이 후회했다. 

어느 날 그가 무심코 옛날에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말을 하자, 배움에 목말랐던 아이들이 그에게 매달렸다. “저희는 선생님이 필요해요, 저희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그는 그 순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준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고난이 모두 이를 위한 것이었다고 느꼈다. 구두닦이 소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편지로 해외 선교단체에 후원을 구해 겨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눈뜬 이들을 이끄는 귀감이 되다
1978년, 한국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아이들과의 약속대로 ‘진흥야간중학교’란 이름으로 야간학교를 시작,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맹인선교회를 설립하고 맹인들을 위한 잡지 ‘점자 새빛’을 발행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 노숙자,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았던 사람이 누구보다도 더 세상에 베푸는 사람이 된 것이다.

1981년, 소설보다 더 기구하고 감동적인 그의 인생 역정을 바탕으로, 한국 소설의 거장 이청준이 전기소설을 발표한다. 기독교 소설이면서 비기독교인에게도 폭넓은 호응을 얻고, 영화로 만들어져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을 받기도 한 실화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가 바로 그 작품이다. 그의 이름은 안요한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소명은 끝나지 않는다.
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가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으며 100쇄가 넘게 발행되는 동안, 그 주인공 안요한 목사 역시 꾸준하게 목회활동과 복지사업을 펼쳐왔다. 무작정 사업 규모를 욕심내는 것이 아니라, 맹인 부부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탁아소, 맹인 양로원 등을 세우거나 맹인성가대와 풍물단, 핸드벨연주단을 창단하는 등 시각장애인들이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업들이었다. 

시련도 있었다. 애써 입주한 회관에 화재가 나 건물이 홀랑 불타버리기도 하고, 시설을 세우는 과정에서 동네 주민들의 맹렬한 반대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함께 하는 이들이 있었고, 약해질 때 꺾이지 않도록 도와주는 스스로의 신앙이 있었다. “처음 시각장애인이 되고서 남의 집 대문 앞에서 구걸을 하던 때 생각을 하면 (지금은) 감사 외에 덧붙일 말이 없다”는 것이 안 목사의 말이다. 

최근 안 목사는 그간의 이야기를 모아 <낮은 데로 임하소서, 그 이후>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펴냈다. 안 목사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진흥야간학교와 새빛선교회를 설립한 이래 30년간 울고 웃었던 일들이 진솔한 신앙고백과 함께 꽉 들어차 있다. 몸 성하고 돈 가진 이들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30년을 한결같게 계속해온 그의 삶은 종교를 떠나 사람들을 숙연하게 한다. 다들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스펙을 쌓네 경쟁을 하네 하며 허덕이는 이 시대에, 안 목사야말로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홀로 빛을 보는 이인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여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그 이후

안요한

홍성사 2010.07.01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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