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동물을 만난다- 상상동물원

 

                                              「해리포터」의 그리핀과 「나니아 연대기」의 켄타로우스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퍼시 잭슨의 번개도둑」까지, 판타지 영화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사자 몸통을 가진 그리핀, 반인반마 켄타로우스,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메두사까지.
2011년 6월 개관하는 울산박물관에서는 영국박물관 소장유물 가운데 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상상의 동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은「신화 속 동물」전시회를 개최한다. 영화 속, 그리고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온 상상의 동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 있는 박물관 개관 기념 전시회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유럽산 상상의 동물들이 모이는 것일까? 한국산 상상의 동물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2011년 6월에 유럽산 「신화 속 동물」들을 만나기 전에, 한국의 「신화 속 동물」들을 이 곳 상상 동물원에서 만나보자.
 
상서로운 동물 상상동물
고구려 사람들은 하늘세계에 사람 머리의 새나 짐승, 날개 달린 물고기나 사슴 같은 신비한 동물들이 살고 있으며, 이 상상의 동물들은 하늘에서 별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기린 - 평화로운 세계의 상징
 


유니콘처럼 외뿔이 달린 말이나 사슴처럼 그려진 기린은 세상에 성인이 태어나고, 세상이 살기 좋을 때 나타난다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전설의 동물이다.
삼실총 벽화, 무용총 벽화, 안악 1호분 벽화 등에 기린이 등장한다. 그러나 같은 기린을 상징하는 그림이지만, 외뿔이라는 큰 특징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천마, 비어 - 하늘을 숭상하는 상상동물 


하늘 세계를 달리고 또 날아다니는 말 천마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고기 비어. 고구려 사람들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까지 하늘을 날게 할 만큼 하늘 세계를 숭상했다.

양수, 천추, 만세 - 불로장생의 상징 


불멸 또는 재생(再生)의 상징인 고대 이집트의 상상동물 ’피닉스(phoenix)’처럼 불을 밟고 걸어 다니는 신비의 불새, 양수. 삶이 끝없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꿈이 불사조의 모습에 담겨 있다.
천추와 만세라는 상상동물도 새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 얼굴을 한 인면조 형태인 이들 역시,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길리 - 행운의 상징
 

독수리의 얼굴과 날개, 사자의 몸통을 지니고 있다는 그리핀과 반대로 동물의 머리를 달고, 새의 모습을 한 길리는 복과 행운을 누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상상동물이다.

유럽의 상상동물들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신비감을 주었지만, 고구려에서는 상서로운 징조를 주는 동물들로 생각되었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미리 가 본 북한유물박물관

전호태

한림출판사 2009.08.25

조애리 기자 (joaeri80@gmail.com)




신고

 


디아스포라(diaspora).
그리스 어로 ‘흩어진 사람들’을 의미하며, 우리말로는 이산(離散)이라고 번역한다. 고국, 가족,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처지를 말한다. 인류사에서 유대인들의 처지가 디아스포라의 전형이다. 한민족의 경우도 근현대사에서 디아스포라를 경험했다. 예컨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사람들과 재일교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이 명실공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한지도 수 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떠나고 들어오고 있다. 나나 내 가족이 어느날 이민을 결심해서 이주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이주자가 갑자기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제 디아스포라는 나와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대학교 남호엽 교수는 저술 <글로벌화와 다문화가정의 이해>를 통해, 디아스포라가 무엇인지, 디아스포라를 겪는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밝히고 있다.


디아스포라 주체와 정체성의 공간
-<글로벌화와 다문화가정의 이해> 중에서

근대사회는 이주의 시대이며,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이동은 자연스러운 삶의 형식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주 현상은 익숙한 곳의 테두리를 벗어나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과정이다. 이주자들이 낯선 곳에 직면하는 현실이 예사롭지 않다. 근대사회에서 이주 현상은 중립적이지 않고, 그 자체로 사회정치적인 과정이다. 이주 주체에게 새로운 공간은 뿌리내림과 정체성의 도전 장소이다. 특히 이주자들은 디아스포라(diaspora)의 처지에 있으며, 그(그녀)는 다문화사회의 소수자라고 말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주체는 분열적인 존재 양태를 보인다. 디아스포라 주체에게는 일상생활의 관행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국민 국가가 만든 제도들이 억압적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에게는 조국(선조의 출신국), 고국(자기가 태어난 나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의 삼자가 분열해 있으며 그와 같은 불열이야말로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라고… 다수자는 대부분 자신의 선조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에 '국민'으로 속해 있다. 즉 조국·고국·모국이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삼자의 지배적인 문화관이나 가치관은 서로 많이 다르고 자주 상극을 이룬다"(서경식 2007:114).

디아스포라 주체는 분열적인 자아를 가지며, 이것 때문에 삶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이 고통은 단지 심리적인 차원, 주관적인 정서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개입한다. 이른바 국민국가가 질서화한 일상생활의 관행들이 있으며, 이것은 디아스포라 주체들에게는 삶의 질곡이 되기도 한다.

서경식 선생은 일본에서 대학교수로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이다. 재일한국인으로 그는 해외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항상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여권의 재입국허가 기한을 확인해야 한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교육을 받고 세금을 내면서 학자로서 살아가고 잇는데, 해외에 나갔다가 입국할 때 '허가' 여부가 기한에 의해 조건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테니 설명을 덧붙이자면, 내 국적은 한국이기 때문에 나는 대한민국이 발행한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해외여행을 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나 자라고, 직장과 집이 있고, 가족과 친구가 사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내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일본 법무성의 '재입국허가'가 필요하다. 나는 일본에서 '특별영주'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돼 있다. 이것은 재일외국인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안정된 법적 지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입국허가 없이 일본 밖으로 나가면 다시 입국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원칙적으로 재입국허가 없이는 재입국할 수 없다."(같은 책 p.194)

국민국가는 안정된 질서를 추구하며, 애매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 즉 이미 정해져 있는 경계들 주변 언저리에 서 있는 주체들에게는 매우 억압적이다. 국민국가의 경계는 안과 밖의 구분이 뚜렷하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경계는 매우 차별적이다.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적인 이유이든 경제적인 이유이든 간에,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 상당한 통제 기제가 작동한다. 이 경우 경계는 절대 고정 불변의 상황인가, 통제 기제가 추구하는 의미의 질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존엄하게 해주고 있는가? 경계가 가변적이라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지향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전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통제 기제가 자연화된 것에 불과하다면, '해체'와 '재구성'이 가능하다면, 역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져본다. 사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모색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경식 선생은 왜 일본에서 태어났는가? 그의 부친은 왜 일본으로 이주했는가? 왜 그의 가족들은 고난의 인생을 살았는가? 이러한 문제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태평양 전쟁과 전후 일본사회의 성립, 한반도의 분단 등과 같은 역사적 국면들이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역학 기제가 자리한다.

서경식 선생과 가족들의 생애사는 주로 정치적인 문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표면화된다. 물론 디아스포라 현상의 근원에는 경제적인 차원들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의 팽창 과정 속에서 근대 사회는 모순이 응축 되었고, 이러한 상황이 개인사나 가족사에도 개입하고 있다. 그런데 디아스포라의 상황은 단지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디아스포라의 사례들은 인류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다문화사회의 전형으로 미국사회를 언급한다. 미국사회는 이주의 역사 그 자체이다. 원주민들이 사는 땅에 유럽 백인들의 이주가 있었고, 곧바로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이주했다. 특히 흑인 노예들의 이주는 비자발적인 선택 혹은 강제 이주의 상황인 만큼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 하여 'Black Atlantic diaspora' 상황이 발생하면서 다인종, 다종족, 다문화사회의 전형을 창출했다(Dwyer 2005: 501). 물론 20세기에 와서 수많은 아시아계 디아스포라가 미국 사회에 편입되기도 했다. 아울러 유럽의 경우도 다른 지역에서 이주 현상이 발생하였고, 디아스포라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이렇게 디아스포라는 소속감의 장소가 여러 곳이며 여러 경계들을 넘나드는 삶의 형식이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주체는 고정된 '뿌리들' 혹은 기원들에 도전하는 정체성을 가지며, 초국가적인 결속과 연결을 선호한다(Dwyer 2005: 501). 이렇게 디아스포라 공간을 사유하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직면하는 실체들 중 하나가 바로 경계(boundary)이다. 디아스포라 주체에게 현실은 항상 경계들의 등장이며, 이 경계들과 관계 설정이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즉 디아스포라 공간은 포함과 배제, 소속감과 타자성, '우리들'과 '그들'의 경계들이 경합하는 지점이다(Dwyer 2005: Fortier 2007: Crang 1998). 따라서 디아스포라 공간은 곧바로 정체성의 장소들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한다.

정체성의 장소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계를 확보하고 있다(Pratt 1999). 하나의 장소가 고유성을 가지려면 다른 장소와 관계를 설정하면서 차별화 계기가 있어야 한다. 차이나타운이 하나의 장소로서 독특함을 유지하려면 그 장소 내부에서 고유한 성질들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장소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자적인 경관들, 사회적 관행들이 있어야 한다.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그 장소에 자리한 경관과 관행들에 애착과 소속감을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경관과 관행들이 누군가에게 이질적인 느낌의 구조를 만든다면 그 사람은 외부자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장소는 일정한 차별화 전략의 산물이며, 그 장소는 영역화(territorialization) 과정이 작동한 결과물이다(Paasi 1997). 여기서 정체성의 장소는 공간 스케일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그 장소는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 고장, 우리 지역, 우리나라가 된다. 그래서 향토와 모국은 각각 지역적인 스케일과 국가적인 스케일에서 애착심을 야기하는 장소이다.

장소에 대한 애착은 장소감(sense of place)에 기초한다(Rose 1995).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애착이 가는 공간은 동일시의 장소감을 부추긴다. 나와 우리는 그 장소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디아스포라 주체들에게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주근로자로 와서 안산시 원곡동에 거주하는 사람은 그곳에 위치한 이슬람사원을 찾는다. 다문화마을로서 원곡동과 이슬람사원은 이주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생활공간이다. 그곳에서 단지 의식주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마음의 의지처가 필요하며, 그 역할을 종교시설이 해낼 수 있다. 그래서 안산시 원곡동은 다문화마을 특구로서 장소화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이슬람사원과 같은 경관들이 그곳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아울러 디아스포라 주체들에게 '배려의 정치'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바로 '장소의 정치'가 된다. 즉 다문화주체들이 소속감와 동일시라는 심리 기제가 발생할 수 있는 근거로서 장소 만들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에서 다문화장소의 탄생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다문화장소는 국토의 순결을 망치는 외래사조인가? 국토가 새로운 다양성, 역동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걸음 더 나아가 이미 한반도에 살아왔던 사람들은 다양한 이주의 결과물들이 아닐까?


남호엽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hynam@snue.ac.kr
이민자를 위한 <한국사회의 이해> 강좌 운영 실행연구」, 「초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에 나타난 다문화교육의 논리」, 「지역학습에 있어서 민족정체성과 지역정체성의 관계」 외


<이 기사는 (주)사회평론과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

이인재

사회평론 2010.03.22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