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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l역사] 드라마 '동이', 진실은 이렇다

지식 2010.07.23 04:46 Posted by NewsInBook
 

장희빈하면 인현왕후를 떠올린다. 또 인현왕후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장희빈이다. 이처럼 우리의 머릿속에는 인현왕후 대 장희빈의 대결 구도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구도가 당시의 여인천하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인현왕후 대 장희빈의 대결은 어찌 보면 매우 '점잖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구도하에서 쌍방은 중전 자리를 차지하는 데 주력했을 뿐,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두 여인 사이에서 벌어진 두 차례 대결에서 잘 드러난다.

숙종 15~16년에 벌어진 제1라운드의 승자는 장희빈이었다. 이 대결의 결과로 인현왕후는 중전에서 평민으로 강등되었고, 장희빈은 후궁에서 중전의 자리에 올랐다. 4년 뒤에 벌어진 제2라운드에서는 거꾸로 인현왕후가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에는 인현왕후가 평민에서 중전의 자리로 복귀했고, 장희빈은 중전에서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구분

연도

승자

결과

인현왕후

장희빈

제1라운드

숙종 15~16년(1689~1690)

장희빈

폐위

중전 책봉

제2라운드

숙종 20년(1694)

인현왕후

중전 복위

희빈 강등

두 사람의 상대 전적은 1승 1패로 동점을 이루었지만, 승패로 인한 영향은 인현왕후 쪽이 훨씬 더 컸다. 제1라운드에서 장희빈은 후궁에서 중전으로 이동한 데 비해 인현왕후는 중전에서 평민으로 이동했다. 제2라운드에서 장희빈은 중전에서 후궁으로 이동한 데 비해 인현왕후는 평민에서 중전으로 이동했다. 장희빈의 이동 범주는 후궁↔중전이었지만, 인현왕후의 이동 범주는 중전↔서민이었다. 승패로 인한 충격이 인현왕후 쪽에 훨씬 더 크게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대결이 최종적으로 어느 한쪽의 몰락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양쪽의 공존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1패 뒤 복수의 1승을 거둔 인현왕후가 패자에게 잔혹한 쓴맛을 보여야 할 것 같지만, 실상 두 사람은 오랫동안 숙종의 처첩으로 공존했다.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나서도 장희빈은 계속해서 정1품 빈의 자리를 지켰다. 두 사람의 대결은 어찌 보면 의외로 '싱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비교하면 최숙빈과 장희빈의 대결은 달랐다. '최숙빈과 장희빈의 대결'이라는 표현이 좀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 간에는 그러한 구도가 실제로 존재했다. 그리고 이 구도는 인현왕후-장희빈 구도보다도 훨씬 더 치열한 양상을 보였다.
두 사람의 대결 구도는 얼마나 치열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최숙빈-장희빈 대결 구도는 목숨을 걸고 전개된 구도였다. 선제공격을 가한 쪽은 장희빈이었다. 『수문록』에서 이들의 첫 대결을 확인할 수 있다. 최숙빈이 숙종의 승은을 입은 뒤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 시기에 장희빈은 곤위(중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선대왕(숙종)이 베개에 기대어 조는 사이에, 홀연히 꿈에서 신룡이 땅속에서 나오고자 하되 나오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머리 뿔을 드러내고는, 울며 선대왕에게 말하기를 "전화, 속히 저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여기서 "신룡"은 태아를 가리키고, "땅속에서 나오고자 하되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한 느낌이 든 숙종은 장희빈의 처소로 곧장 달려갔다. 최씨와도 관계를 가진 적이 있지만 장희빈이 이미 두 번씩이나 자기 아들을 낳은 적이 있기에 혹시 장희빈에게 아이가 또 생겼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숙종은 장희빈의 처소에서 처음에는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장희빈도 멀쩡했다. 그런데 담장 밑에 있는 큰 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독이 엎어진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저 독은 어째서 거꾸로 세워 두었느냐?"라고 숙종이 묻자, 장희빈은 "빈 독은 본래 거꾸로 세워 둡니다."라고 대답했다. 숙종은 뭔가 이상했던지 환관에게 독을 똑바로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때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속에서 결박당한 여인이 나타났다. 선대왕이 크게 놀라 살펴보니, 얼마 전 밤에 가까이 했던 나인이었다.

폐비의 생일상을 차려 놓고 있다가 숙종에게 발견되어 승은을 입은 궁녀 최씨가 바로 독 안에 있었던 것이다. 숙종은 혹시라도 장희빈이 임신했을까 싶어 그리로 달려갔던 것이지만, 실제로는 최씨의 뱃속에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숙종이 나타나기 직전까지 장희빈은 최씨에게 어떤 신체적 고통을 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임금이 갑자기 나타나자 최씨를 얼른 독 안에 숨긴 것이다. 최씨가 인현왕후전의 나인이었던 데다가 숙종의 아이까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장희빈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손을 봐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을 것이다. 장희빈이 가한 신체적 고통은 비록 최씨의 목숨을 빼앗기에는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태아의 생명을 지우려는 시도로 보기에는 충분했다. 최씨 입장에서는 아이를 지우려는 행동이 곧 자기를 죽이려는 행동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최씨 입장에서는 장희빈이란 인물이 저승사자만큼 두렵고 증오스러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총 50부로 제작되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동이 속 최숙빈과 장희빈 

여기서 이런 의문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최숙빈-장희빈 대결이 그토록 필사적이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인현왕후는 다수 세력인 서인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희빈으로서는 인현왕후를 중전에서 내모는 것으로 그치고 더는 공격할 수 없었다. 만약 장희빈이 인현왕후의 목숨까지 거두려 했다면, 서인은 인현왕후를 보고하고자 결사적인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장희빈의 공격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점은 인현왕후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희빈이 비록 중인 출신이라 할지라도 그는 남인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인현왕후가 복위된 뒤에 서인이 장희빈을 후궁 자리에서 완전히 끌어내리지 못한 것도 장씨의 배후에 정치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숙빈-장희빈의 대결 구도는 그렇지 않았다. 최숙빈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장희빈이 처음에 최씨를 막 대했던 것은 그가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장희빈이 최씨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것도 최씨를 보호해 줄 정치 세력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장희빈에게 맞서기 위해 가진 것 없는 최숙빈 또한'극단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최숙빈

김종성

부키 2010.04.30

정다운 기자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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