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남편과 아내가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원하던 이 부부는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는 마녀의 집 정원에 탐스럽게 자란 상추(라푼첼)를 보고 너무 먹고 싶어졌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마녀의 정원에서 상추를 뽑아다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며칠 후 아내는 또다시 상추가 먹고 싶어 괴로워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다못해 다시 한 번 마녀의 정원으로 상추를 뽑으러 갔다가 그만 마녀에게 들키고 말았다....

▲ 동화는 호러에서 시작되었다. 

위 이야기는 1812년 12월 25일 첫 선을 보인 독일 그림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12번째 이야기의 시작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등장한 그림 형제의 이 책은 전 세계 독자들이 어린 시절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직접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책의 표제에서 볼 수 있듯 그림 형제도 민담의 전달과 수용은 가정에서 우선되어야 하며, 그 대상은 어린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어떤 경우라도 고대의 민족적 자산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야콥 그림(Jacab Ludwig Karl Grimm)의 신념은 편집의 중요 원칙이기도 했다. 그러나 1812년 출간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은 너무 재미가 없었으며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이 책의 출판을 고대하던 이들로부터도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원문을 훼손한다는 야콥 그림의 우려에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적 요구에 따라 빌헬름 그림(Wilhelm Karl Grimm)의 주도하에 7차례 증편과 개편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1815년의 2집부터는 민담에 알맞은 어법과 통속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문구 등 대중의 언어와 행동을 수용하는 민담양식들이 점점 구체화되었다. 1857년 최종적으로 빌헬름 그림의 아들 헤르만 그림(Herman Grimm)에 의해 200편의 민담과 열 편의 어린이 성담이 수록된 지금의 최종본이 출간되었다.

▲ 그림형제의 12번째 이야기: <라푼첼>

옛날에 한 남편과 아내가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원하던 이 부부는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는 마녀의 집 정원에 탐스럽게 자란 상추(라푼첼)를 보고 너무 먹고 싶어졌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마녀의 정원에서 상추를 뽑아다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며칠 후 아내는 또다시 상추가 먹고 싶어 괴로워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다못해 다시 한 번 마녀의 정원으로 상추를 뽑으러 갔다가 그만 마녀에게 들키고 말았다. 미녀는 처음에는 무섭게 화를 냈으나, 남편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상추를 가져가는 대신 아이를 낳으면 자신에게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드디어 아이가 태어나자 마녀는 아이에게 '라푼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데리고 가버렸다.
라푼첼은 아주 길고 예쁜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로 자라났다. 그러나 라푼첼이 열두 살이 되자 마녀는 소녀를 숲 속의 문도 계단도 없이 꼭대기에 조그만 창문 하나만 있는 높은 탑 안에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탑으로 올라갈 때면 밑에서 "라푼첼, 라푼첼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다오."라고 외친 후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타고 탑으로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속을 지나던 한 왕자가 라푼첼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탑 아래까지 왔다가, 마녀가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타고 탑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마녀가 돌아가자 왕자도 "라푼첼, 라푼첼.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다오."라고 외치자 라푼첼의 머리카락이 내려왔다. 왕자는 라푼첼의 황금 머리카락을 타고 탑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 라푼첼은 낯선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으나 두 사람은 금세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라푼첼은 왕자를 따라 탑에서 내려가기로 약속하고 왕자에게 탑에 올 때마다 자신이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 비단실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다리가 다 만들어지기도 전에 라푼첼은 마녀가 왕자보다 더 무겁다고 무심결에 말하는 바람에 왕자의 존재가 발각되고 말았다. 화가 난 마녀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그녀를 황량한 땅으로 쫓아버렸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마녀가 걸어놓은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탑 위로 올라온 왕자는 라푼첼 대신 마녀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다시는 라푼첼을 볼 수 없을 거라는 표독한 마녀의 말을 듣고 절망한 나머지 탑에서 뛰어내려 가시에 눈이 찔려 그만 장님이 되고 말았다. 왕자는 풀과 나무뿌리로 연명하며 라푼첼을 잃은 슬픔에 잠겨 황량한 벌판을 방황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간 곳에서 왕자의 아들과 딸 쌍둥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라푼첼을 만나게 되었다. 라푼첼과 왕자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았으며, 기쁨과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라푼첼의 눈물이 왕자의 두 눈에 떨어지자 왕자는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왕자는 기쁜 마음으로 라푼첼과 쌍둥이를 데리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

▲ <라푼첼> 속 모티프 알아보기

<라푼첼>은 1812년 야콥 그림에 의해 처음으로 그림 동화에 수록되었다. 처음에는 왕자가 일인칭 주인공으로 서술되어 있었으나, 야콥 그림은 이야기를 민담에 어울리는 구조로 개작했다. 특히 <라푼첼>의 특징적인 문구인 "라푼첼, 내가 올라갈 수 있도록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줘."의 서술문을 "라푼첼, 라푼첼.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다오."의 노래로 바꾸고, 이 민담의 발생 시기로 추정되는 10세기나 11세기에 어울리는 리듬을 수용해 구전 민담으로서의 특성을 강화시켰다.
또한, 독일어로 '상추'를 의미하는 '라푼첼(Rapunzel)'은 ‘상추를 먹으면 임신이 된다'는 민간의 속설을 연상시키는 소재로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설적이라는 초판본의 지적을 받아들여 <라푼첼>의 경우에도 어린이를 고려한 언어와 문체상의 통일을 기하기 위한 수정이 이루어졌다. 1812년 판본에서 라푼첼은 "왕자와 즐겁게 지내던 어느 날, 이상하게 자신의 옷이 껴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빌헬름 그림은 1819년 판본부터 전후 문맥상 아무런 논리적 설명 없이 라푼첼의 임신 사실을 드러내는 이런 직접적인 어구 대신 "왕자와 라푼첼이 아내와 남편처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표현으로 수정했다. 또 두 사람의 비밀도 라푼첼 스스로 "고텔 부인, 당신은 젊은 왕보다 더 끌어올리기가 어렵군요."라고 말함으로써 라푼첼의 순진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사건의 진행을 유도하는 문장으로 수정했다.

여성의 머리카락은 여성성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특히 금발과 관련된 이미지는 최고의 여성성으로서 그림 동화의 여자 주인공들을 인증하는 표시로 폭넓게 수용되었다. '라푼첼'의 머리카락은 그림 동화에 등장하는 모든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자 주인공들을 한데 묶는 황금색 끈이라고 할 수 있다.

외견상으로 라푼첼을 괴롭히는 사람은 마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이를 포기한 사람은 아버지이다. 오히려 어린 라푼첼을 아름답게 키운 인물은 마녀였다. 그림 동화의 많은 이야기에 마녀가 등장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 마녀가 주인공을 죽이거나 갈 길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주인공을 돕거나 목표를 향해 곧바로 나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곤 한다.

 

<이 기사는 뮤진트리와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그림형제 독일민담

이혜정

뮤진트리 2010.01.21


정다운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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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4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한국 총 실업률은 3.5%이지만, 청년 실업률은 그 2배 이상인 8.3%에 달한다. 88만원 세대,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어렵게 취업하는 졸업예정자),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등의 신조어에서도 이러한 청년층의 취업한파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청년층 중에서도 취업 한파를 더욱 심하게 느끼는 계층이 있다. 바로 “순수 인문”을 전공한 학생들이다.
 



                           <취업 포털 사이트 ‘잡 코리아’에 올라온 4년제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모집 공고들>

취업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모집공고들을 보면, ‘상경계열 전공자’를 뽑는다는 글은 있어도 ‘인문계열 전공자’를 뽑는다는 글은 거의 볼 수 없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인문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역사학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박사과정 졸업 후 취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길은 물론 교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수직이 충분히 많지 않으므로 결국 일부는 다른 직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 전문 분야를 살리면서 취직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공학 분야 같은 경우 굳이 대학이 아니라도 연구소나 일반 기업에 들어가서 자신의 전공을 살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문학 전공자들은 40대 중반이 되도록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느라 고생하며 모멸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다. 

취업시장에서 ‘인문대생’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서 훨씬 더 낮다. 그러나 정말 '인문학’ 전공이 취업에 불리하기만 할까? 대기업 임원, 방송국 PD, 금융권 임원들 중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인문학’을 전공한 것, ‘인문대’를 졸업한 것이 실무에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현 코오롱 신사업기획팀의 이수영 상무에게 ‘인문대생의 강점’에 대해 물었다.

 
Q: 인문대생이 회사에서 가지는 강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인문대생이 가지는 강점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인문'이라는 게 인간에 대해서 공부하는 거잖아요. 저도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많이 읽고 세미나를 하고 그랬던 것 같구요.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사고의 깊이와 폭, 이런 것들이 인문대를 다녀서 더 많이 훈련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Problem Solving이라고 하죠? 매일매일 해결해야 하는 어떤 문제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회사는 매일매일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때 정확하게 큰 그림으로 보고 그다음에 깊이 있게, 정확하게 근본적인 핵심 이슈에 대해서 빨리 파악해서 해결하는 능력이 굉장히 많이 요구되죠. 그런 사고 능력,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아주 많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CEO들에게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경영학 책을 읽는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고 역사책, 철학책, 소설책 이런 것들을 읽는다고 하죠.
 
Q: 딱 원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상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A: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경영에서 요구하는 능력은 리더십하고 창조적 사고 능력이에요. 왜냐하면 나 혼자는 일을 못하거든요. 여러 사람들이 같이 해야만 되는 것이고, 나 혼자 하면 천년만년이 돼도 못합니다. 조직, 즉 여러 사람이 같이 일하는 조직에서 여러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끌어주는 능력, 그게 리더십입니다.
 
매일매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이것은 이런 규정이 있어서 안 됩니다"라고 얘기를 하면 그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겠죠.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서 이렇게 보면 이렇게 해결할 수 있잖아요"라고 이야기를 해줘야죠.
 
그게 바로 창의성입니다. 회사에서 원하는 인간상은 리더십하고 창의성인데 그게 있어야 문제가 해결되고, 문제가 해결이 되면 사업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안 돼"라고 하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게 사업이라는 거죠.
 
리더십과 창의성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일하게끔 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나갈 수 있는 인문학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와서 그런 부분들을 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서 가장 원하는 사람이죠.


즉 기술적 능력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능력도 충분히 회사에서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적 능력은 토익점수나 자격증같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문학적 능력은 어떻게 길러질까?

인문대 출신(불어불문학 전공)으로서 금융계에 진출, 외환은행 부행장과 해외사업본부장까지 지낸 노찬 이수화학㈜ 상임고문은 사회 진출을 생각하는 인문대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사회가 원하는 인문대생, 갖추어야 할 자질이 있다
 
우선 대학시절에는 전공에 충실해야 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전공에 올인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에 나가서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를 미리 속단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인생은 지금 20대의 여러분이 상상하는 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공에 충실하지 않은 인문대생은 그 가치가 떨어진다
어느 회사에서 독일 현지법인에 파견할 직원을 뽑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독문과 출신의 직원이 응모를 했는데 "독일어 시 하나를 암송해보시오"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런데 그 직원은 단 한 편의 시도 암송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떤 인상을 받았겠는가? 연이어 물어보니 단지 독문과를 졸업했을 뿐이지 독일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독일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무늬만 독문과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독문과 출신을 보낼 필요 없이 경영대 출신 중에서 독일어를 조금 할 수 있는 직원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둘째, 외국어 서적을 최소 1만 페이지는 읽어야 한다. 

 
1만 페이지라고 하면 언뜻 그 분량이 잘 와 닿지 않을지 모르나, 300페이지짜리 책 33권으로 대학 4년 동안 1년에 8권 정도 읽는 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문대 졸업생 중에는 1만 페이지는커녕 1,000페이지도 읽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이 상당수 있으며 심지어는 500페이지도 채 읽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을 본 적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인문대를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인문대 출신이라는 장점을 포기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최소한의 권고량이다.       

                 
                   <다양한 분야의 외서들>
 

셋째, 목표를 정하고 일정한 금액의 돈을 모아보기를 권한다.
인문대생은 공부하는 분야의 특성상 돈, 경제, 경영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돈을 주제로 이야기하기를 썩 즐기지 않는다.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뭔가 통속적이고 저급한 주제로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문대생도 경제, 경영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결국은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대생이 경제나 경영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돈을 모아보는 것이다.

물론 "나는 등록금도 내가 벌어서 학교도 간신히 다니는데 무슨 돈을 모아 보란 말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당신 같은 경우야말로 돈을 모아보아야 한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벗어나려면 돈과 정면승부를 해야 하며 대학시절의 경험은 그것이 실패의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평생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실용만을 강조하고 있다. 대학조차도 취업률로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순수 인문’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문대’만의 장점을 살려 취업을 준비한다면, 바늘구멍 같다는 취업문도 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인문의 스펙을 타고 가라

이동진|주경철|표민수|이수영|노찬

사회평론 2010.05.12


조애리 기자 (
joaeri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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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여름방학이 시작되지만, 고3은 쉴 틈이 없다. 수능 100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능 100일 전 이라고 하면, 남은 시간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애매한 기간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문제풀이나 다양한 독서보다 암기과목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많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언어영역은 이 시기쯤 되면 포기하기도 한다. 이제 언어영역은 공부를 하건 안 하건 결국 점수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기하기에 수능에서 언어영역의 비중은 높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는 어떻게 언어영역 공부를 하면 좋을까?  EBS및 비상에듀
에서 언어영역을 가르치고 있는 추마에(추경문 선생님)은 이렇게 제안한다.

"수능 1교시는 언어영역, 80분 동안 총 50문제를 풀게 됩니다. 그 중에서 지문을 가지고 푸는 문제가 38문제 정도 되죠. 이 중에서 21문제 정도가 비문학입니다. 소위 말하는 독해 문제에서도 비문학이 문학보다 비중이 높은 편이죠. 게다가 독해가 아닌 쓰기, 어휘, 어법, 듣기 영역 문제를 모두 합치면 12문제(듣기 5문제) 정도인데 이 영역도 문학이 아닌 비문학 영역이기 때문에 실은 언어영역의 3분의 2가 비문학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비문학을 잡는 것이 언어영역의 승패를 가르게 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비문학을 잘 풀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 추경문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Q: 배경 지식이 없으면 비문학을 못 푸나요?

A: 비문학이 배경 지식 유무에 관계없이 지문, 문두, 답지만 잘 읽으면 누구나 풀 수 있습니다. 어려운 글을 많이 읽어 두고 배경 지식을 쌓는 게 도움이 전혀 안 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문 중심으로 공부하는 전략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큽니다. 우선 시간이 없는 고 3에게는 권하기 어려운 방법인 데다 배경 지식에 의존해 언어영역 비문학 지문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 자체가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수능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주제가 나올 거라 생각하고 평소에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Q: 그럼 평소에 어떤 연습을 해야하나요?




       <EBS,비상에듀 추경문 선생님>
            
    

A: 스스로 출제 유형을 분석해 보는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먼저 해야 될 것은 출제 위원들이 무엇을 어떤 식으로 출제하는
가를 이해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언어영역 만점을 받고자 한다면 급소 찌르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어영역이 공부한다고 점수가 잘 올라가는 과목인가요? 대부분 공부를 해도 올라가지 않고 공부를 안 해도 떨어지지 않는 과목이 언어영역이라고들 하죠? 그래서 미치겠다고. 아무리 해도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수능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무슨 시험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수능 언어영역은 기출문제 분석이 가장 중요합니다.

Q: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것만으로 과연 점수가 오를까요?

A: 물론입니다. 「언어의 기술」의 저자인 이해황씨는 첫 수능 언어영역이 4등급이었다가 3수를 하면서 만점까지 올린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그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수능 기출문제를 반복했습니다. 문제집 푸는 것을 줄이고 수능 기출문제를 지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정ᆞ오답의 근거를 찾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서로 다른 유형/영역에서 도출된 해법들이 서로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언어영역을 꿰뚫는 패턴을 발견하고 나니 언어영역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언어 공부가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지문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일다 보니 독해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갔습니다."

기출문제에서의 출제 원리, 출제자의 의도 파악하기, 오답 피하기 등 문제집 100권을 푼다고 해서 언어 성적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수능 기출문제 및 평가원 모의고사 교육청 문제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풀어나간다면, 방학이 끝나고 나서 언어영역 성적이 눈에 띄게 올라갈 겁니다.

수능까지 약 100여일이 남았다. 언어영역을 포기하지 말고, 추경문 선생님이 제안하는 대로 기출문제에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100일의 노력이 언어영역 2등급을 1등급으로 올려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조애리 기자 (
joari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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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만점 사자가족, 표정연기 클로즈업
 

사자라고 하면 위엄있게 초원을 어슬렁거리거나, '으르렁'하고 입을 쩍 벌리며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는 모습부터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자는 의외로 애교 넘치는 동물이다. 고양이과 생물로서는 드물게 무리를 지어 살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장난치는 아기사자. 사진 이종렬. ⓒ글로연

초원의 강자인데다가, 무리 속에서 비교적 안전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긴장이 적은 탓일까, 가끔은 생각도 하지 못한 여유롭고도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백수의 왕이라기엔 지나치게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아빠사자. 사진 이종렬.ⓒ글로연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아기사자. 사진 이종렬 ⓒ글로연

사진을 촬영한 이종렬 씨는 이제까지 MBC·SBS에서 수십 편의 아프리카 관련 다큐멘터리를 기획 연출한 국내 최고의 아프리카 전문가. 아프리카와 초원을 사랑한 나머지 10년이 넘도록 아프리카 17개국을 돌아다니다 2005년에는 아예 가족을 이끌고 탄자니아로 이사를 해 버렸다.

사진가로서의 역량과 탄자니아의 야생을 널리 홍보한 점을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최근 세계에서 두 번째러 세렝게티를 비롯한 탄자니아 국립공원을 10년간 무상출입 촬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 십 년에 걸쳐 촬영한 사진을 모아 저서 '아프리카 야생중독'을 출간하기도 했다.

 

하품하는 모습마저 귀엽기만 한 아기사자. 사진 이종렬. ⓒ글로연

 

'얼짱각'을 선보이는 아빠사자의 모습. 사진 이종렬. ⓒ글로연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였으며, 기사에 사용된 사진은 (주)하니커뮤니케이션즈와의 협의를 거쳐 수록하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아프리카 야생중독

이종렬

글로연 2010.06.10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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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별로 공략하는 자전거 선택 가이드
나도 '자출족' 해볼까? 각양각색 자전거, 알고 고르자

건강과 즐거움,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해주는 취미인 자전거가 여전히 인기다. 지난 7월 18일, 서울에서는 ‘2010 하이서울 자전거대행진’ 행사가 열렸다. 광화문에서 올림픽대로까지, 자전거로 서울 중심을 가로지르는 이 행사에는 5000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자전거 보급에 열심인 것은 서울시만이 아니다. 최근 국토해양부는 전국 10개 혁신도시에 245㎞에 달하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고, 네이버에서는 기존의 길찾기 서비스에 ‘자전거길찾기’ 서비스를 추가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출족’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쯤 되면 초등학교 시절 이래 자전거라곤 만져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도, ‘나도 한번…?’하는 마음이 들 법하다. 더구나 자전거는 한번 배우면 타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오랫동안 타지 않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자전거 타기를 시작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은 다름아닌 자전거 구입이다. 그냥 적당히 키에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자전거를 고르려고 보면 어찌나 종류가 많은지 깜짝 놀라게 된다. 가격은 더 천차만별이다. 7~8만원 짜리서부터 수백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고가형 제품까지 다양하다. 추천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다 다르다. 결국 자전거를 사겠다고 마음을 먹고도, 몇 주씩 쇼핑몰만 클릭하며 허송하기 일쑤이다.
내게 맞는 자전거, 어떻게 고르면 좋을까? ‘스타일리시한 라이딩’을 주장하는 자전거 전문기자 장치선 씨의 글을 통해 알아본다.

내게 맞는 자전거, 용도부터 따져라
자전거를 고를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은 용도다. 그러고 나서 가격, 자주 이용하게 될 도로의 상태, 휴대성, 디자인 등을 고민하면 된다.

안전을 위한 투자가 필요한 MTB
산길과 같은 거친 도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데는 MTB(산악자전거, Mountain Bike, Mountain Terrain Bike)가 제격이다. 거친 길을 달리려면 바퀴가 굵고 림이 튼튼해야 하고, 타이어가 돌 사이에 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몸체를 구성하는 튜브들도 굵직해야 한다.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충격 여과 장치를 튜브에 덧붙일 수도 있다. 자동차의 서스펜션을 생각하면 되는데, 당연히 서스펜션을 갖춘 자전거가 서스펜션이 없는 자전거보다 비싸다. 서스펜션이 있는 자전거를, 풀서스펜션(풀쇼크) MTB라고 부르고, 서스펜션이 없는 자전거를 하드테일 MTB라고 부른다. 험한 산길에서는 풀서스펜션 MTB가 유리하다.
MTB도 등급이 있으며, 보통은 프레임과 부품의 등급으로 단계를 나눈다. 이때 주로 쓰이는 부품은 일제 시마노 제품인데 흔히 그 이름을 따서 '~급 MTB'라고 부른다.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알투스<아세라<알리비오<데오레<엘엑스<엑스티<엑스티알이다. 엑스티알이 최상급이라는 얘기, 데오레 급 이상부터 27단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SRAM사의 구동 부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데오레 급 MTB의 가격은 70만 원대에서 시작해 수백만 원에 이른다.
MTB는 초반부터 어느 정도의 '투자'가 필요한 자전거다. 산이나 험한 언덕길을 견디기 위해서는 프레임이 가볍고 강해야 하고, 기타 부품도 내구성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목숨과 직결되는 사안이니만큼 안전을 위한 투자는 필수다.

도시 주행에 적합한 하이브리드 MTB
초보자에게는 하이브리드 MTB도 적당하다. 하지만 MTB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산악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반적인 MTB보다 타이어도 얇고 몸체를 이루는 튜브도 날렵하다. 산악 지형보다는 도시 주행에 더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모양이 산악자전거처럼 생겼다고 산길을 달렸다가는 금세 망가지기 십상이다. SUV 자동차가 2륜 구동으로 험난한 산악길보다는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이 된 것과 비슷한 원리다. 


알톤사의 하이브리드 자전거 RTC BETA-T ⓒ알톤

장거리에는 본격 여행용 자전거
MTB나 로드바이크, 미니벨로 모두 여행에 적당하다. 하지만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훨씬 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장기간 여행에 적합한 자전거는 사이클로크로스(Cyclocross)나 투어링 바이크다. 사이클로크로스는 말 그대로 산악 주행이 가능한 자전거로, MTB 몸체에 각종 로드바이크의 부품을 섞은 것이다. 속도를 내면서도 충격에 강한 여행에 적합한 자전거다. 장비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한 자전거를 원한다면 투어링 바이크가 좋다.

스피드를 즐기고 싶을 때는 로드바이크
자전거로 속도를 즐기고 싶을 때는 당연히 로드바이크다. 몸체를 이루는 튜브가 탄소나 알루미늄 소재라서 날씬하며, 당연히 가볍다. 타이어도 공기 튜브가 아닌 튜블라 타이어를 쓴다. 림에 붙은 스포크도 몇 가닥 되지 않는다. 모든 부품이 마치 '가벼워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부품을 이루는 재료도 흔한 철이 아니고, 제작을 할 때에도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가격은 당연히 비싸다.
로드바이크도 산악용과 마찬가지로 프레임과 부품 요소로 등급을 나눈다. 시마노 등급을 나열해보면, 소라<티아그라<105<울테그라<듀라에이스 순이다. 최근에는 소라 급보다 한 단계 아래의 입문 레벨도 나왔다.

가벼운 동네 나들이에 어울리는 '마실용' 자전거
요즘엔 자전거를 이용해 장을 보는 아줌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중년층 여성들은 몸을 앞으로 숙이는 MTB가 불편하다.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펴고 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험한 길을 달릴 필요도 없고 스피드를 낼 필요도 없다. 치마를 입고 편하게 타도 체인에 말려 들어가지 않고 기름이 묻지 않도록 체인에 커버가 붙어 있는 것이 좋다. 물이 고인 곳을 지나가도 옷에 물이 튀지 않도록 견고하게 생긴 흙받이가 앞뒤로 장착되어 있는 것이 편리하다. 시장에서 산 가벼운 물건을 실을 수 있는 바구니를 달기도 한다. 


알톤사의 싱글즈2607. 바구니가 달려 있다. ⓒ알톤

예쁘고 가벼운 미니벨로 고르기
자전거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들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면 미니벨로가 적합하다. 승용차 트렁크에 자전거를 넣으려면 자전거 바퀴의 지름이 20인치를 넘으면 안 된다. 물론 승용차가 대형이라면 26인치 크기의 접히는 자전거도 들어가지만 일반 승용차라면 20인치 이하의 모델이 적합하다. 또 승용차의 폭은 대개 1미터 70센티미터를 넘지 않기 때문에 반으로 접히는 자전거가 편한데, 일반 자전거에 비해 경첩이 있어서 조금 무겁다. 미니벨로의 무게는 9~15킬로그램인데, 가벼울수록 비싸다. 미니벨로는 귀엽고 깜찍한 모델이 많아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앞뒤쇽(충격 완화 장치인 서스펜션을 쇽 또는 쇼크라고 하는데, 앞과 뒤에 달릴 경우, 흔히 '앞뒤쇽'이라고 부른다)이 달린 미니벨로도 있긴 하지만, 무게가 더 나가서 휴대가 불편하다. 

 
작은 바퀴와 가벼운 무게가 특징인 미니벨로. 사진은 아팔란치아의 R2000. ⓒ삼천리자전거
 
내 몸에 맞는 자전거 찾기
어떤 자전거를 구입할지 결정했다면 이제 자전거를 내 몸에 맞춰보는 일이 남았다.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거나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게 정석은 아니다. 자전거를 주문하기 전에 먼저 오프라인 자전거 전문 매장을 방문해서 원하는 종류의 자전거를 죄다 타보기를 권한다.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내 몸에 자전거를 맞춰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보는 것과 '몸에 맞춰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안장에 앉았을 때 몸이 불편하다면 체형과 자전거의 구조가 잘 맞지 않는 경우다. 초보자들은 '원래 처음엔 이런 거겠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매장 직원에게 안장의 위치나 각도 조절법, 핸들의 위치 등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면 자신에게 맞는 자전거를 제대로 고를 수 있다.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고 자신의 몸에 직접 맞춰보는 일은 특히 레저용 자전거를 구입할 때는 반드시 필요하다. 단골 가게를 하나 정해두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도움을 받고, 수시로 자전거를 점검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그러면 자전거를 구입할 때 최종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점검해보자.

-안장에 걸터앉았을 때 양다리가 지면에 닿을 정도의 높이가 적당하다.

-핸들을 잡았을 때는 몸이 약간 구부린 자세가 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스틸보다는 가벼운 알루미늄 합금이 인기다.
-제품을 고른 뒤에는 도금이나 도장이 벗겨진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설명서와 보증서를 꼭 받아둬야 나중에 A/S를 받기 쉽다. 특히 초보자일수록 집과 가까운 곳에 A/S를 받을 만한 곳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구입한 뒤 1개월이 지나면 나사 풀림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제때 점검을 받아야 한다.
-브레이크 와이어는 2년에 한 번은 꼭 교환해주어야 한다.
-인터넷 중고숍에서 자전거를 구입할 때는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손해를 볼 위험이 있다. 같은 기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사양을 낮춘 자전거가 많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구입하더라도 가급적이면 직거래를 해서 자전거 상태를 직접 살펴보는 것이 좋다.
-A/S 유무를 잘 따져보자.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자전거를 많이 판매하고 있다. 수입 자전거도 꽤 많이 팔고 있는데, A/S 유무를 잘 살펴봐야 한다.

싼 것이 상책은 아냐... 관련용품 구입비도 예산에 넣어야
자전거를 처음 구입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가격 고민부터 시작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초보자라고 해서 예산을 너무 낮게 책정하면 안 된다. 무턱대고 고가의 자전거를 사라는 건 아니지만, 초보자에겐 좋은 자전거가 큰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전거의 가격은 십만 원대에서부터 무려 수천만 원대까지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일단 자전거 프레임이나 구성 부품의 재질, 무게, 내구성, 브랜드 가치를 따져봐야 한다. 프레임은 반영구적인 부품이고, 타이어나 브레이크 패드 등은 소모품이다. 짠돌이 고수들은 기본 부품을 갖추고 나서 나머지 부품들은 차근차근 업그레이드한다. 프레임을 좋은 것으로 구입하고 나머지 부품들은 이에 맞춰 하나씩 구입하는 식이다.
자전거를 구입할 때는 관련용품 구입비도 책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서 돈이 줄줄 새는 기분이 든다. 안전 장비나 필수 공구 구입비도 반드시 미리 책정해놓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자전거와 오랫동안 사랑에 빠지려면 이런 초기 비용에 인색하지 말라고 귀띔한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하이힐을 신은 자전거

장치선

뮤진트리 2009.10.22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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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무역 커피에 지불한 돈의 90%가 사라진다.

<수확한 원두를 옮기고 있는 엘살바도르의 농민들> 

전 세계적인 공정무역 붐을 타고, 스타벅스, 네슬러, 코스타 등 유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공정무역 참여를 선언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2010년 5월 8일~9일까지 세계공정무역의 날을 맞아 공정무역 원두인 ‘카페 에스티마’로 오늘의 커피를 판매했다. 

공정무역 커피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커피 농부들에게 시장 가격보다 높은 ‘최소가격(minium floor price)’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제 3세계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데도 공정무역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공정무역 제품 값에 포함된 10%의 사회적 초과 이익 때문에 가능하다.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 재투자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공정무역이 이뤄낸 긍정적인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공정무역 제품 판매는 기업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상술이자 마케팅 전략일 뿐, 근본적인 변화로는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한 예로, 영국에 코스타(Costa)라는 커피 기업이 있다. 코스타는 커피 다이렉트라고 물리는 공정무약 브랜드에서 나오는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커피는 고객이 추가 10펜스(약 200원)을 더 내면 제 3세계 농부들에게 더 나은 커피 가격을 지불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200원이 과연 100% 제 3세계 농부들에게 돌아갈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다.

고객들이 공정무역커피에 지불한 돈의 90% 이상은 중간에서 사라진다. 커피 다이렉트는 물론 농부들에게 커피 1파운드(453g)당 40~55펜스(800~1100원) 사이의 프리미엄을 지불했다. 비교적 적은 이 프리미엄으로 농부들의 수입은 거의 2배로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커피 1잔을 만드는 데 드는 원두의 양은 약 7g, 즉 20원어치에 불과하다. 결국, 소비자가 낸 200원 중 180원은 코스타의 배를 불린 것이다.

같은 공정무역 슬로건이 붙어 있다고 해도, 실제로 공정무역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제품인지, 소비자의 요구에 떠밀려 유행처럼 만들어낸 상품인지 구별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내세우는 공정무역 기준이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공정무역이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라 진정한 사회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공정 거래 체계 안에서 적합한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윤리적 소비

박지희|김유진

메디치미디어 2010.02.25


경제학 콘서트

팀 하포드 | 김명철 옮김

웅진닷컴(웅진.com) 2006.02.05


조애리 기자 (
joaeri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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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A 1위국 핀란드의 전 교육청장, 에르끼 아호 교육을 말하다
개혁에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리더십이 필요... 교사 평가제도에 의존해선 안돼

지난 7월 1일과 2일, 전국에서 새로 당선된 교육감들의 취임식이 열렸다. 직선제가 시행된 이래 두번째로 탄생하는 교육감이다. 지난 임기 교육감이 선거와 업무수행 양쪽에서 비리와 오류를 보여준 사례가 있기에 새 교육감들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새 교육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 있는 수험 위주의 학습체제, 학생인권문제도 해결해야 하지만 학생들의 학력 향상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한국과 같은 무한 경쟁사회에서, 공교육을 통해서도 학생들의 학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신뢰를 쌓지 못하면 사교육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전인교육과 성적향상, 얼핏 보기에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과제이다.

하지만 이 두 마리 토끼를 당연하게 잡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핀란드. 유럽 변방의 작은 나라지만 3년마다 시행되는 PISA(국제학생성취도평가)에서 항상 종합 1위를 놓치지 않는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습 의욕도 높다. 특히 놀라운 점은 핀란드 학생들이 상위권 성적을 차지할 뿐 아니라 고득점자와 저득점자의 점수 차도 세계에서 가장 작다는 것이다. 사교육이나 기타 교육 지원을 받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간의 격차가 큰 우리나라와는 달리, 핀란드는 전국의 학생들에게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확립하고 있다는 뜻이다. 항상 교육개혁을 말하면서도 십 수 년 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핀란드 교육박람회 EDUCA 현장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20년간 핀란드 교육청장을 맡으며 핀란드의 교육개혁을 주도한 에르끼 아호(Erkki Aho)를 만나보자. 에르끼 아호는 교사로 출발하여 대학에서 교육심리학을 연구했으며, 1972년부터 1991년까지 핀란드 교육청장을 맡아 핀란드의 교육개혁을 계획하고 직접 실행에 옮긴 핵심 인물이다. 


"우리는 모든 개혁추진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형평성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에르끼 아호(Erkki Aho, 핀란드 전 국가교육청장) 인터뷰
대담: 안승문(스웨덴 웁살라대학 객원연구원)
일시 및 장소: 2008년 1월 25일, EDUCA 2008 교육축전 현장(헬싱키 컨벤션 센터)


안승문(이하 안): 우선 에르끼 아호 선생님의 경력을 간단히 말씀해주시지요.

에르끼 아호(이하 아호):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종합학교 교사로 시작했습니다. 그 후 수년간 이봬스킬라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 후 라하티 시에서 학교 심리사로 근무하다가, 1960년대 중반 헬싱키 소재 국가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교육청에서는 종합학교 제도의 시범 실시를 담당했습니다. 그 후 잠시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고 다시 1970년 교육청으로 복귀하여 1973년 국가교육청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중앙정부 개혁이 시작된 1991년까지 교육청장으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뒤에는 유네스코와 짧은 기간이지만 세계은행 등에서 여러 프로젝트에 대한 컨설팅을 했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지 오래됐고, 주변 정세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곤 합니다.


안: 핀란드에는 국가 교육 행정기관으로 교육부와 국가교육청이 있습니다. 이 두 기관의 관계와 역할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아호: 교육부는 입법준비, 교육전략 계획수립, 교육연구 개발계획, 교육부문 예산편성을 담당합니다. 교육청은 중앙정부의 전문적인 교육담당기관으로 커리큘럼 및 학습자료의 개발, 교사 재교육 등을 담당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를 지원합니다. 그래서 교육부는 정치적 차원에서, 국가교육청은 전문적인 차원에서 명확한 업무분담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두 기관은 긴밀히 협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국가교육청은 계획수립, 예산편성, 전략수립 등에서 교육부를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교육청이 단독적이거나 독립적인 정책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국가교육청은 본 행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가 차원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서 국제적인 교육 네트워크의 일부를 구성합니다.


안: 핀란드 학교교육의 목표를 간략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아호: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핀란드 학교교육의 목표는 경제적 측면에서 인력을 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도덕성, 사회성, 심미적 안목, 윤리의식 등 한 인간의 전반적인 개발을 지원합니다.

또한 교육의 목표가 자국 문화 및 타국 문화를 이해하고 다른 문화 간의 협력을 도모하는 문화적 인간을 기르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문화 간 교류가 활발한 만큼 이 점이 중요합니다. 핀란드는 특히 단일 문화국이어서 타 문화권 사람들, 타 문화를 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문화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안: 핀란드에서 해마다 열리는 교육축전인 EDUCA 2008이 있는 날, 핀란드 교육개혁의 산 증인이신 에르끼 아호 선생님을 만나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우선 EDUCA 2008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주시죠.

아호: EDUCA 2008은 핀란드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교육축전이자 현직 교사들을 위한 심화연수 프로그램의 하나입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대규모 행사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당히 긍정적인 경험들을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갈 것 같습니다.

교사, 학습자료 및 교재를 만드는 출판업자 등이 이곳에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행사는 현직 교사, 연구원, 출판업자, 모든 교육관계자들이 네트워킹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핀란드 곳곳에서 소규모 행사들도 개최되지만 본 행사는 전국 규모의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에서도 보실 수 있듯이, 매우 흥미롭고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지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 행사에서 교사들은 열심히 배우고, 비용 같은 것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불합니다. 이 행사는 계속해서 발전해왔고, 이미 핀란드에서는 전통으로 굳어진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핀란드가 본격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하게 된 역사적·사회적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아호: 먼저, 195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핀란드는 농경사회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급격한 변화가 시작되어, 경제구조면에서 산업 및 서비스부문이 증가하고 농업 종사자는 감소했습니다. 이 같은 경제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핀란드 경제가 서방경제에 통합되어갔습니다.

1962년 핀란드가 유럽자유무역연합에 가입하면서 시장은 더욱 개방되었습니다. 우리는 국제 경쟁에서 우리의 능력을 증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교육개혁을 추진하게 된 경제적 측면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둘째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은 모두 형평성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복지국가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 중 하나인 핀란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까지 핀란드의 교육제도는 독일처럼 조기에 인문 또는 직업학교로의 진학을 구분하는 제도였는데, 그렇게 11년의 교육기관을 거치면 학생들이 극단적으로 양분되었습니다. 이것은 민주적인 제도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좀 더 민주적인 학교제도를 마련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요컨대,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으로, 경제구조가 변화하면서 수준 높은 교육을 통해 산업 및 서비스 분야에서 종사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이 필요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복지국가 건설과정에서 민주주의와 형평성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진 것입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중반에 핀란드 의회가 종합적인 시스템에 바탕을 둔 민주적인 학교제도를 도입해 차별적 교육에서 벗어날 것을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교사들의 미래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구조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할 때에는 교사들이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교사들의 적극적인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먼저 구 제도 속의 모든 교사들이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새로운 제도로 옮겨갈 수 있게 했습니다. 즉, 교육제도의 개혁과 병행하여 교사조직을 개혁한 것입니다. 이렇듯 교사부문에서의 발전을 지원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로 인해 강력한 단일 교사 조직과 개혁에 대한 협상도 하고 계획도 세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 핀란드 교육개혁 추진 과정의 특징이나 교육개혁을 추진하면서 지향했던 중요한 가치를 든다면 어떤 것입니까?


아호: 핀란드는 197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중앙집권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국가교육청 및 교육부에서 도입계획을 수립했고, 5년에 걸쳐 핀란드 전역에서 새로운 제도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개혁은 북부지역부터 시작했습니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개혁이 가장 필요한 곳이 인구가 희박한 북부지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헬싱키는 새로운 제도를 마지막으로 도입한 도시였습니다. 즉, 라플란드지역(북유럽 최북부지역)에서 시작해서 5년에 걸쳐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마지막으로 헬싱키에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것이죠.

그래서 전국적으로 새로운 제도를 실시하게 된 때는 1977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중앙집권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다가 전국이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인 뒤로는 의사결정능력을 점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 단위 학교, 교사들에게 이양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좀 더 근본적인 사회개혁 및 교육개혁을 단행할 때에는 우선 중앙정부가 주도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개혁과정에서 직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뒤에 점차적으로 의사결정권을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에 넘긴 것이죠.

그러던 중, 1990년대 초에 핀란드가 매우 심각한 경제불황을 겪게 되었습니다. 모든 지방자치단체와 학교가 이 중요하면서도 심각한 경제불황의 위기를 극복해야 했던 것이죠. 그때 그들은 예산삭감을 비롯해 최상의 조치를 취할 능력이 충분히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국제평가의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좋은 결과를 도출했고 형평성의 가치와 개혁조항들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전반적인 개혁과정의 중심에는 항상 형평성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초기에 중앙에서 개혁을 추진하고 점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와 단위 학교로 의사결정권을 이양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개혁추진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형평성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안: 핀란드가 추진한 교육개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이나 배경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아호: 먼저, 9년제 종합학교 제도의 도입입니다. 종합학교 제도는 1학년에서 9학년까지의 모든 학생들이 어떤 차별도 없이 균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으로 매우 포괄적입니다. 종합학교는 완전한 무상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점심급식과 통학수단 제공은 물론 사회적, 물리적, 심리적 지원 및 상담을 제공하는 등, 진정으로 우리 어린 학생들의 전반적인 발달을 위해 최대한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종합학교라는 제도는 핀란드 교육성공의 으뜸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수준 높은 교사들입니다. 핀란드에서는 모든 교사들이 석사과정까지 밟기 때문에 교육수준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사들을 믿을 수 있고 평가를 통한 통제나 외부로부터의 통제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 말은 즉, 교사들이 창의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여유를 갖게 되고, 개인적으로 또는 학교 차원에서 함께 협력하여 해결책을 찾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사들은 내년 봄(학년말)엔 또  어떤 평가를 받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점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는 지속적인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혁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형평성, 민주주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매우 견실하고 연관성 있는 목표를 명확하게 수립했고, 국가와 지방 차원, 지역사회와 학교 차원에서 개혁을 추진하면서 이 목표를 일관성 있게 지켜왔습니다. 단순히 오늘날의 핀란드 교육제도만 보고, 우리가 좋은 학교를 갖추고 있고 학교에서 훌륭한 식사를 제공한다는 정도로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좋은 교육을 위한 토대는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에 걸쳐서 꾸준히 마련되어온 것이고 오늘날의 좋은 결과는 그처럼 오랜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우리는 혁명이 아니라 진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교사들은 항상 과거의 좋은 전통과 새로운 혁신을 접목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진화적인 발전, 진화적인 과정을 지향한 것이지요. 한편으로 보면, 좀 보수적인 접근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좋은 전통을 배우고자 해왔으니까요. 이렇게 좋은 전통을 익히고 학교에 적용해보면서 전통과 새로운 것을 접목한 것입니다. 즉, 급격한 변화보다는 전통과 혁신을 함께 추진해왔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연히 정치 차원에서의 강력한 합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는 작은 국가이고 보유자원도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은 모두 여기 우리 머릿속에 있죠. 나라 안에 있는 쓸 수 있는 모든 지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정당들이 적극적으로 교육개혁을 지원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토의와 논쟁도 있었고 자원이 부족하여 어려움도 있었지요. 하지만 의회 및 정당들 모두가 잘 교육받은 인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을 지원했습니다.


안: 한 나라의 교육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핀란드의 경험에 비추어, 교사들이 신뢰와 존경을 받는 가운데 책임 있는 교육개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아호: 핀란드에서 교직과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깊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핀란드 교육제도의 역사에 대해 설명드려야 합니다. 우리 핀란드에서는 항상 교사를 존경해왔습니다. 작은 시골도시에서 교사들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고, 도시에서도 초등학교 교사는 대단히 신망받는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 개혁을 시작했을 때 정치인과 우리 모두는 9년 과정의 종합학교가 교사들에겐 큰 도전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제도의 개혁과 동시에 교사양성제도의 개혁도 단행했습니다. 즉, 1960년대 중반 교육구조의 개혁을 시작할 때, 교사양성제도에 대해서도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목표로 한 것입니다. 교사가 신뢰와 존중을 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교사들이 수준 높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의 교육수준이 다른 직종 사람들보다 낮다면 이런 존경을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교사들에게 높은 교육수준을 갖게 하는 것이 첫 번째 핵심 사항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 핵심 사항은 종합학교로의 개혁 같은 교육개혁을 계획할 때, 정치인들이 교원단체와 긴밀하게 협의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사들이 개혁과정에 동참할 의지를 갖게 됐고 교육개혁을 바로 자신들의 개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학교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서 교사 자신들도 개인 차원에서 이 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게 된 것이지요. 다른 나라에서도 어떻게 하면 교직에 대한 존중과 교사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면, 교육개혁을 계획하는 단계나 교육과정의 개정 또는 학습자료의 개발 등 모든 개혁 추진과정에 교사들의 지식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핵심 사항은 평가제도에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평가제도나 통제 수단을 사용하면 교사들의 마음은 항상 평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찰 것이고, 평가결과를 급여와 연계한다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핀란드에서는 교사들의 급여수준이 충분히 높아야만 교사양성기관(대학)에서 더 능력 있는 젊은이들을 모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핀란드에서는 정부가 법과 규제로 교사급여를 결정하지 않고 교사조직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상과 합의를 통해 결정하게 함으로써, 교사들이 자신의 급여수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자신의 급여수준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참여한 것이지요. 급여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초반에 교육제도 개혁의 초창기에는 정부가 급여를 결정했지만, 교육제도를 개혁하면서 이와 연계하여 교사조직과 지방자치단체의 합의 아래 급여를 결정하도록 바꾸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가능하면 교육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개혁과정에 초기 단계부터 교사들을 동참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교사들이 개혁 추진 과정의 일부가 될 의지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또한 부모들이 안심하고 교사들에게 자녀를 맡기고 교사들이 좋은 교육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 신뢰의 바탕이 됩니다. 또, 부모들도 시간 날 때마다 교사들에게 연락하여 자녀에 대해 의논합니다. 정치인들 역시 교사들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학교에 예산을 제공할 때 교사들이 최적의 방법으로 예산을 쓸 것이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수많은 단계에서 교직 및 교사들의 전문적인 능력을 최대한 존중하게 할 수 있으며,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안: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핀란드와 한국의 교육자들이 자주 만나고 교류하면서 함께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한울림출판사와의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핀란드 교육개혁 보고서

에르끼 아호|까리 핏까넨|파시 살베리|강수돌|심상정 | 김선희 옮김

한울림 2010.05.31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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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가 함께 만드는 고무줄 탄알과 탄성권총

에너지도 변신한다.

누구든지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고무줄 탄알과 탄성권총.
손과 머리를 통해서 공감각적으로 사고하는 생활 속의 과학.

영화 속 카우보이처럼 멋진 총잡이가 되어 보고 싶다면 탄성권총을 만들어 보세요. 고무줄 탄알을 잘 날릴 수 있게 순서에 맞춰 붙이는 것 잊지 말고요. 

실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학의 재미에 푹 빠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탄성권총과 과녁을 만드는 법.
 

 

[설명서]




[실험 키트]
_총 도면
_오른쪽



_왼쪽



_과녁도면



[완성사진]



다 만들었다면 이제 권총을 쏠 차례에요. 과녁을 세워놓고, 총을 그 쪽으로 겨냥한 뒤 방아쇠를 당겨 보세요. 눈으로 관찰하기도 어려운 속도로 고무줄이 튀어 나가죠? 겨냥을 잘 했다면 고무줄 탄알에 맞은 과녁이 뒤로 쓰러지고, 고무줄 탄알은 땅으로 떨어질 거에요. 


√ 과학상식
 
충격량을 확인하는 실험. 충격량은 ‘운동량’의 변화량이랍니다. 운동량은 운동하는 물체의 질량과 속력을 곱한 값이에요.

 운동량= (운동하는 물체의) 질량 X 속력

그럼 당연히 질량이 크고 속력이 빠를수록 운동량이 커지겠죠?
그리고 운동량이 크면 그만큼 충격량도 늘어나지요.
만약 과녁보다 무거운 물체를 쓰러뜨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가까운 곳에서 쏘아서 과녁에 부딪힐 때의 속력을 높이거나, 더 무겁고 탱탱한 고무줄을 쓰면 된답니다.
여러분도 직접 고무줄의 종류를 바꿔가면서 탄성권총의 세기를 조절해보세요. 


 

 

<이 기사는 서울문화사와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과학도둑

송도수

서울문화사 2010.04.22


정다운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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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 듣기도 비법이 있다
인강만 듣고 명문대 간 학생들의 생생 수강노하우!


인강, 문제는 집중력이다
인터넷 강의가 대세다. 수능, 내신 대비는 물론, 외국어 능력시험, 자격증 시험, 운전면허나 회화 강의까지 인터넷에 개설되는 형편이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경우, 2010년 수능문제의 70%가 EBS교재에서 출제된다는 발표로 EBS인강의 중요성이 더 커진 상황이다.

그럴수록 강의를 ‘어떻게’ 듣느냐에서 성적의 등락이 갈린다. 인터넷 강의는 화면 너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실하게 집중하기가 어렵다. 다른 사이트를 클릭하고 싶어지는 유혹도 강하다.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다고 다 같은 공부는 아니다. 같은 인강 다르게 듣는 수강요령, EBS공부법 필자로 선정된 우수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본다.


중 3 겨울 방학 때 자신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는다 -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09학번 김은덕
인터넷 강의를 들을 계획이라면 중3 겨울 방학 때 자신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아라. <EBS 수능특강>의 경우 선생님 세 분이 강의하므로, 셋 중 어떤 선생님의 강의 구성과 전달 방식이 자신에게 맞는지 선택해야 한다. 중 3 겨울 방학이 가장 여유로울 때이므로 이 강의 저 강의 들어보며 시행 착오를 통해 과목별로 내게 맞는 맞춤 강사를 찾아둔다. 

복습은 없다고 생각하고 강의에 집중한다 – 연세대 행정학과 10학번 지혜민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 강의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중에 다시 들으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대강 넘겨 버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모르는 부분이 없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강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 강의는 보통 혼자서 자율적으로 듣게 되기 때문에, 혼자서도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를 찾아 정해진 시간에 듣는다. 좀처럼 집중하기 어려운 싫어하는 과목의 경우에는, 같은 강의를 듣는 친구끼리 서로 점검하고 노트를 공유하면서 서로 체크하여 긴장감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청취는 한 번에 한 강의씩 – 경희대 한의학과 08학번 소현주
인강을 한 번에 몇 강의씩 몰아서 듣다 보면 자연히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다른 싸이트를 드나들며 낭비하는 시간도 많아진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키자마자 바로 강의를 듣고, 강의가 끝나면 바로 컴퓨터를 끄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또한 청취에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1.2배속이나 1.5배속으로 속도를 올려서 듣거나, 미리 문제를 풀어 본 후 모르는 부분만 골라서 듣는 식으로 하여 한 강의를 듣는 시간을 재량껏 줄여본다. 청취 시간도 절약되고, 수업의 밀도가 올라가 오히려 집중하기 쉬워진다. 

나만의 강의 노트를 만들어라 – 서울교대 07학번 이세영
필기를 열심히 하면서 수업을 들으면 졸릴 틈도 없고 집중도 더 잘된다. 때로 필기가 강의를 따라가지 못하면 강의를 잠시 중단시킨 후 필기를 완성하고 강의를 다시 들었다. 이것은 필기를 완성하는 의미도 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의미가 더 크다. 강의 노트는 복습에도 아주 유용하다. 노트를 보면 강의 내용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라 짧은 시간에 강의를 다시 듣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또한 자신이 스스로 쓴 것이므로 필기돼 있는 부분 뿐 아니라 행간을 통해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다.

정해진 기간 안에 한 시리즈를 끝까지 듣는다 - 순천향대 의예과 08학번 박환희

인강으로 공부할 때는 구체적인 목표와 확고한 의지가 필수이다. 어느 기간까지 어떤 강의를 얼마만큼 듣겠다, 문제집을 얼마나 풀겠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작만 하고 흐지부지되기 쉽다. 그리고 힘이 들더라도 한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도 중요하다. 잘하는 건 과감히 넘어가고 이해가 안 가면 반복해서 듣는다. 무한 반복은 인터넷 강의의 장점이므로 이를 십분 활용한다.


자기주도학습의 필수요소가 된 인강, 기계적으로 수강하기보다는 전략을 갖고 적극적으로 길을 찾다 보면 내게 맞는 공부법은 꼭 있게 마련이다.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아낸다면 인터넷 강사 선생님은 화면에서 혼자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몇 미터 앞에서 강의를 하는 진짜 선생님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이제 학원은 필요없다. 비싼 학원비 때문에 고생하는 부모님에게 이만한 효도가 있을까?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여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EBS 공부법

EBS

서울문화사 2010.04.22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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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되찾아온 신윤복 화첩

서화와 자기는 조선의 자존심이다 – 우리문화 지킴이 간송 전형필 


혜원전신첩》 중 <월하정인>,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간송 전형필, 김영사)

혜원 신윤복.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조선의 풍속과 아름다움을 한 화폭에 다 담아낸 이 천재 화가는 몇 년 전 드라마 ‘바람의 화원’으로도 소개되어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혜원의 그림 대부분이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팔려나갔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재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전신첩(간송미술관 소장)에는 우리가 아는 <월하정인>, <단오풍정>과 같은 혜원의 대표작이 30점이나 들어있다. 그러나 이 귀중한 화첩은 일제 강점기를 틈타 일본인 골동품상의 손에 들어가 현해탄 너머로 팔려가고 말았다. 그것을 직접 일본까지 건너가 되찾아온 사람이 바로 우리에게 간송미술관 설립자로 익히 알려져 있는 간송 전형필 선생이다. 소설가 이충렬 씨가 재구성한 일대기 '간송 전형필(김영사)'의 한 부분을 통해 그 때의 일화를 살펴보자. 


일본에 팔려간 ‘바람의 화원’

1934년 겨울의 일이다. 당시 간송 전형필 선생은 아직 이십 대 후반의 젊은이였지만, 이미 우리 미술품 보존사업에 뜻을 두고 사재를 털어 우리 고서와 그림을 사 모으는 중이었다. 간송은 일본 학자가 쓴 ≪조선의 건축과 예술≫에서 흑백 도판으로 소개된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발견했다. 수장자를 찾아보니, 개인이 아니라 도미타 상회였다. 간송은 미술품 중개인 신보 기조에게 도미타 상회에 대해 물었다.

“10여 년 전 도미타 씨가 진남포에서 경성으로 이사 와, 남대문 옆 문파밀 호텔 안에 도자기와 고서화, 민예품을 판매하는 조선미술품 진열관을 개설했습니다. 그때 초대받아 갔는데, 혜원 풍속화첩을 전시하고 있어서 몇 점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이 30점 정도 되는 화첩인데, 도미타 씨가 매우 아끼는 물건이라 팔려고 전시한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1930년 도미타 씨가 세상을 떠나고, 유품은 오사카의 야마나카 상회에서 일괄로 구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야마나카 상회는 이전 간송과 거래가 있던 곳이었다. 간송은 수소문 끝에 화첩이 야마나카 상회 오사카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고 거래를 타진했다. 하지만 상대가 부르는 값이 너무 셌다. 자그마치 5만 원이었다. 당시라면 경성에 기와집을 쉰 채는 살 수 있는 돈이다. 지나친 가격에 간송은 거래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야마나카 상회와 가격을 흥정해보기로 하고 신보와 함께 현해탄을 건너 오사카로 갔다. 야마나카 상회에서도, 값이 제법 나가는 화첩이어선지 사장인 야마나카 사다지로가 교토 본점에서 오사카까지 왔다.


현해탄을 건너 혜원을 찾아오다

화첩을 앞에 두고 간송은 넋을 잃었다. <월하정인>, <쌍검대무>, <상춘야흥>….. 당시 사회의 앞뒷면을 그린 아름다운 풍속화가 가득했다. 보존 상태도 완벽해서 채색도 어제 그린 듯 생생했다. 한 시간 가까이 화첩에 빠져든 후에야, 간송은 중개인 신보를 통해 흥정을 시작했다.



《혜원전신첩》 중 <상춘야흥>,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간송 전형필, 김영사)

그러나 흥정은 쉽지 않았다. 야마나카는 1만원을 내린 4만 원에서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고, 신보는 2만 원 이상은 힘들다고 했다. 흥정에 전혀 진전이 없자, 간송은 인연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마나카 선생, 시간을 너무 오래 뺏은 것 같아 송구합니다. 가격 조정이 안 되어 섭섭하지만, 눈이 크게 호사를 했으니 이번 여행이 헛되지만은 않았습니다그려.”

마음을 비운 간송이 담담한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하는 참이었다.
야마나카가 입을 열었다.

“전 선생,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장삿속에서 하는 말이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야마나카는 당시 일본 최고의 골동품상이었다. 그가 마지막 흥정을 제안한 것이다.

“이 화첩을 이렇게 오래 들여다본 분은 전 선생이 처음입니다. 저희 상점에서 수장한 그림을 이토록 사랑해주시는 분을 만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저와 전 선생의 인연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사실 저는 작년 말 전 선생이 석조물 몇 점을 낙찰받으셨을 때, 신보 씨를 통해 젊은 조선 청년이라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때 누군지는 몰라도 기개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일본으로 보내겠다는 사람만 봤지, 되사가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전 선생이라고 해서, 직접 뵙고 싶어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겁니다. 저는 전 선생이 화첩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이 화첩은 전 선생에게 가는 게 옳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선생, 서로 만 원씩 양보해서 3만 원에 이 화첩을 수장하시면 안되겠는지요? 만약 만 원이 부담되신다면, 전 선생이 편한 날짜로 정해 주시는 어음을 받겠습니다. 6개월이나 1년 후라도 좋습니다. 제가 더 이상 가격을 조정해드리지 못하는 것은, 제가 판단한 가치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니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만 원이면, 그림 한 점에 천 원, 요즘 가치로 3억씩 총 90억 원이다. 노회한 골동품상과 재력 있는 젊은 수장가의 팽팽한 기싸움이었고, 야마나카는 이제 간송이 제시한 액수와의 차액인 만 원을 외상으로 주겠다는 카드를 던진 것이다. 돈이 넉넉지 않은 수집가에게는 좋은 카드겠지만, 간송은 외상도 어차피 줄 돈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2만 원을 고집하면 흥정이 깨질 것은 불문가지였다. 

“야마나카 선생이 이렇게 양보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선생께 원칙이 있듯이, 제게도 외상을 하면서까지 수집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저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지요. 2만 5천 원을 준비해왔습니다.”

야마나카는 생각에 잠겼다. 간송의 마지막 카드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차액은 기와집 다섯 채 값으로 좁혀졌지만,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리고 3만 원이면 일본 수장가들 중에서도 살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간송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 선생, 풍속화첩의 수장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하하하. 대신 앞으로 저희 상회를 자주 이용해 주셔야 합니다.”

재력과 열정이 있는 젊은 수장가를 고객으로 삼겠다는 골동품상의 계산, 이것이 야마나카가 간송에게 풍속화첩을 양보한 이유였다. 1934년 초겨울,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30점이 담긴 화첩은 이렇게 하여 간송 전형필의 수장품이 되어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왔고, 광복 후 조선시대 풍속화의 백미로 인정받아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이라는 이름으로 국보 135호로 지정되었다. 



《혜원전신첩》 중 <쌍검대무>,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간송 전형필, 김영사)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간송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신윤복의 작품들은 지금쯤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채 누군지 모를 일본 수집가의 창고 안에 잠자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면 소설, 드라마, 만화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바람의 화원’과 같은 소설과 드라마도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혜원의 작품은 이뿐이 아니다. 영화 ‘미인도’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혜원의 대표작 ‘미인도’ 역시 간송이 개인소장가에게서 인수하여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선조가 남긴 그림, 글씨, 책, 도자기가 조선의 자존심이라는 생각으로 미술품의 보전과 박물관 건립에 평생을 바친 간송 전형필. 그의 뜻을 이어받은 간송미술관에서는 지금도 우리 미술연구에 매진하고, 매해 5월과 10월 중에 일반을 대상으로 무료 전시회를 여는 등 한결 같이 문화지킴이의 길을 가고 있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여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간송 전형필

이충렬

김영사 2010.05.03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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