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에서 방영하는 슈퍼스타Kⓒ 엠넷> 

《슈퍼스타K》. 케이블 방송(Mnet)에서 방영하는 스타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음악을 사랑하고 가수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작년에 처음 시즌 1이 방송되어 무려 71만3,503명이 지원하는 등 방송 기간 내내 화제를 뿌렸으며, 최종회 시청율은 한국 케이블 방송사상 최고인 8.47퍼센트였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이번 해에 새롭게 시작된 시즌 2는 오디션 모집 66일 만에 지원자 100만 명을 넘기며 총 134만 명의 지원자를 모았다. 지원자들은 온라인 및 전화로 진행되는 1차 예선 심사와 연예 관계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현장 예선을 거치게 되며, 예선을 통과한 본선 진출자들을 대상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본선 서바이벌을 펼쳐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우승자에게는 상금과 음반∙뮤직비디오 제작, 그리고 기획사들과의 계약 연계라는 탐나는 혜택이 주어진다.

작년 《슈퍼스타K》 우승자인 서인국씨는 올해 5월 첫번째 미니 앨범으로 각종 음악차트 1위에 오르며 공중파 방송에서 화려하게 연예계 데뷔 신고식을 치뤘다. 슈퍼스타 K는 대형기획사에 가려져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연예계 바깥을 맴돌던 이들에게 그간 혼자 갈고닦은 칼끝을 꺼내어 마음껏 휘둘러볼 수 있는 장이다. 그런 만큼, 지원자 누구도 소홀히 준비하거나 실수를 해서 기회를 헛되이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는 《슈퍼스타K》, 공략의 요점은 무엇일까?

‘동방신기, 윤미래, 김범수, 박신양 등 톱스타들의 노래 선생님으로 유명하며, 《슈퍼스타K》 공식 보컬 트레이너이기도 한 박선주씨가 그 포인트를 알려준다.

 
뮤직스타일리스트 박선주의 Best Of Song Tip
《슈퍼스타K》공략법

1. 노래는 기본, 다른 재능은 옵션
《슈퍼스타K》 는 노래만 가지고 승부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이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다른 재능까지 연마해두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끼를 보여주기 위해서 노래를 소홀히 하면 절대 안 된다.

2. 자기만의 목소리 색깔을 어필하라
모든 오디션이 그렇듯이, 슈퍼스타K 또한 새로운 목소리를 찾는다.
여기서 새로운 목소리란 특별한 톤과 테크닉이다. 다른 사람의 노래를 그대로 따라하지 말고 자신만의 노래로 어필해야 한다.

3. 악기를 다룰 때는 신중히
악기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악기에 확실한 자신이 없다면 그냥 노래에만 전념하자. 또한 노래를 할 때 심사위원의 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세상 누구도 감동시킬 수 있다. 노래의 목적은 결국 감도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4. 선곡은 자신의 이야기와 어울리는 곡으로 하라

자신의 상황과 맞는 노래를 선택하라. 아니면 빠르거나 비트가 있는 노래도 나쁘지 않다. 단, 랩은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면 시도하지 마라.

5. 프로페셔널하고 자신 있게 맞서라.
심사위원들 대부분이 내로라할 만한 가수와 스타들이다. 그러다보니 막상 철저히 준비를 했어도 주눅이 들거나, 심하게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은 단지 당신보다 먼저 시작하고 먼저 성공했을 뿐이다. 그러니 프로페셔널하게, 당당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들 앞에 서라. 그들은 결국 당신의 또 다른 경쟁자일 뿐이다.


온갖 스펙 따지는 요즘 세상에, 노래 하나로 스타가 될 수 있는 길, 하나만 죽어라 잘해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흔치 않다. 그래서 《슈퍼스타K》 는 단순한 노래자랑이 아니다. 자신의 노래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가수가 되길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꿈의 무대다.


<이 기사는 (주)위즈덤하우스와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박선주의 HOW SONG

박선주

위즈덤하우스 2010.07.20


정다운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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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애연가, 흡연론을 외치다
정조에게 '경고' 먹었던 괴짜문인 이옥, '담배의 경전' 저술하며 흡연예찬 펼쳐

이제는 담배도, 담배 피우는 사람도 천덕꾸러기인 세상이다. 금연 건물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규제책도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서울시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버스정류소, 공원, 학교 앞 200m 등의 구역에서 흡연행위를 하면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애연가들은 '정류장은 몰라도 공원은 너무하다.'고 목소리를 내지만 무슨 소용이랴. 애연가들의 발붙일 곳은 사라져만 가고 있다. 냄새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구박당하는 건 기본이고, 직장이 통째로 금연 건물이라 할 수 없이 나가서 '한 대' 피고 오는 사이 '농땡이 부리는 사원'으로 찍히기 일쑤다. 건강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자기관리 안 하는 사람' 낙인이 붙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담배다. 애연가들은 오늘도 핍박에 항거하는 투사의 심정으로 '흡연은 문화다.'라고 되뇌며 불을 붙인다.
건강 바람 부는 요즘 세상엔, 외로운 애연가들에게 편이 되어 줄 이가 아무도 없으니 역사 속에서라도 동지를 찾아봄직하다.


<휴식. 이교익(李敎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름날 나무 아래서 쉬는 세 사람이 모두 담뱃대를 들고 있다. 담뱃불을 붙이는 사람, 쌈지에서 담배를 꺼내는 사람, 대통에 담배를 담는 사람의 태도가 모두 재미있다. 생활 속에 파고든 담배의 위력을 느끼게 한다.ⓒ 휴머니스트>

조선의 문인 이옥(李鈺)은 엄청난 애연가에다 발랄한 괴짜였다. 유학자들의 딱딱한 글쓰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형식 없는 소품체(小品體)의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는 심지어 국왕이 출제한 문장 시험에서까지 이런 글쓰기를 구사했다가, 정조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엄명과 함께 문체를 고칠 때까지 과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정지당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어찌나 담배를 좋아했는지, 절에서 담배를 피우다 핀잔을 들은 사연을 소재로 <담배 연기>라는 소품문을 짓기도 하고, 담배를 의인화한 '남령장군'이 등장하는 <남령전>이라는 가전소설도 썼다. 결국은 그것도 모자라 총 4권에 걸친 '담배의 경전'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담배의 유래에서 시작해서 재배법, 피우는 법, 담배 용품, 가짜담배 판별법까지 담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담배 매니아가 쓴 조선시대 담배의 문화사인 셈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백미는 다양한 흡연 예찬이다. 이옥은 담배 피우는 데에도 이치가 있다며 이 책에서 일곱 가지 담배의 효용을 주장했다.

이옥이 말하는 일곱 가지 담배의 쓰임새
첫째, 밥 한 사발을 배불리 먹은 뒤에는 입에 마늘 냄새와 비린내가 남아 있다. 그때, 바로 한 대를 피우면 위(胃)가 편해지고 비위(脾胃)가 회복된다.
둘째, 아침 일찍 일어나 미처 양치질을 하지 않아서 목에 가래가 끓고 침이 텁텁하다. 그때, 바로 한 대를 피우면 씻은 듯 가신다.
셋째, 시름은 많고 생각은 어지러우며, 하릴없이 무료하게 지낸다. 그때, 천천히 한 대를 피우면 술을 마셔 가슴을 씻은 듯하다.
넷째,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간에 열이 나고 폐가 답답하다. 그때, 서둘러 한 대를 피우면 답답한 기운이 그대로 풀린다.
다섯째, 큰 추위가 찾아와 얼음이 얼고 눈이 내려 수염에도 얼음이 맺히고 입술이 뻣뻣하다. 그때, 몇 대를 연거푸 피우면 뜨거운 탕을 마신 것보다 낫다.
여섯째, 큰비가 내려 길에는 물이 넘치고 습기로 눅눅하여 자리와 옷에는 곰팡이가 핀다. 그때, 여러 대를 피우면 기분이 밝아져서 좋다.
일곱째, 시구(詩句)를 생각하느라고 수염을 비비 꼬고 붓을 물어 뜯는다. 그때, 특별히 한 대를 피우면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시가 절로 나온다.

<연경, 담배의 모든 것(휴머니스트)> 중에서

 
여기 덧붙여 '언제 담배가 가장 맛있나'를 이야기하면서 드는 예시는 그야말로 폭소를 부른다.

"대궐의 섬돌 앞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서 있다. 엄숙하고도 위엄이 있다. 입을 닫은 채 오래 있다 보니 입맛이 다 떨떠름하다. 대궐문을 벗어나자마자 급히 담뱃갑을 찾아 서둘러 한 대를 피우자 오장육부가 모두 향기롭다.(...) 이는 당해본 자만이 알리라."

사장님, 전무님 앞에서 잔뜩 긴장하다가, 브리핑 룸을 나서자마자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뒤지는 오늘날의 샐러리맨들과 다르지 않다. 200년 전의 이옥과 현대의 애연가가 만난다면, 생각도 환경도 다 다르지만 담배를 화제삼으면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유명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는 경비중에 마주친 남북 군대가 대치한 상황에서 양측 지휘관끼리 말없이 담배를 한 개피씩 교환하고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건강에 나쁘네 사회적 문제네 해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담배의 멋과 효용. 그중의 제일은 '피워본 사람들만 아는' 공감대의 효용이 아닐까.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이옥 | 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2008.01.14


정다운, 이진의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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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한 남편과 아내가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원하던 이 부부는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는 마녀의 집 정원에 탐스럽게 자란 상추(라푼첼)를 보고 너무 먹고 싶어졌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마녀의 정원에서 상추를 뽑아다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며칠 후 아내는 또다시 상추가 먹고 싶어 괴로워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다못해 다시 한 번 마녀의 정원으로 상추를 뽑으러 갔다가 그만 마녀에게 들키고 말았다....

▲ 동화는 호러에서 시작되었다. 

위 이야기는 1812년 12월 25일 첫 선을 보인 독일 그림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12번째 이야기의 시작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등장한 그림 형제의 이 책은 전 세계 독자들이 어린 시절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직접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책의 표제에서 볼 수 있듯 그림 형제도 민담의 전달과 수용은 가정에서 우선되어야 하며, 그 대상은 어린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어떤 경우라도 고대의 민족적 자산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야콥 그림(Jacab Ludwig Karl Grimm)의 신념은 편집의 중요 원칙이기도 했다. 그러나 1812년 출간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은 너무 재미가 없었으며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이 책의 출판을 고대하던 이들로부터도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원문을 훼손한다는 야콥 그림의 우려에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적 요구에 따라 빌헬름 그림(Wilhelm Karl Grimm)의 주도하에 7차례 증편과 개편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1815년의 2집부터는 민담에 알맞은 어법과 통속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문구 등 대중의 언어와 행동을 수용하는 민담양식들이 점점 구체화되었다. 1857년 최종적으로 빌헬름 그림의 아들 헤르만 그림(Herman Grimm)에 의해 200편의 민담과 열 편의 어린이 성담이 수록된 지금의 최종본이 출간되었다.

▲ 그림형제의 12번째 이야기: <라푼첼>

옛날에 한 남편과 아내가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원하던 이 부부는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는 마녀의 집 정원에 탐스럽게 자란 상추(라푼첼)를 보고 너무 먹고 싶어졌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마녀의 정원에서 상추를 뽑아다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상추 샐러드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며칠 후 아내는 또다시 상추가 먹고 싶어 괴로워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다못해 다시 한 번 마녀의 정원으로 상추를 뽑으러 갔다가 그만 마녀에게 들키고 말았다. 미녀는 처음에는 무섭게 화를 냈으나, 남편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상추를 가져가는 대신 아이를 낳으면 자신에게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드디어 아이가 태어나자 마녀는 아이에게 '라푼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데리고 가버렸다.
라푼첼은 아주 길고 예쁜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로 자라났다. 그러나 라푼첼이 열두 살이 되자 마녀는 소녀를 숲 속의 문도 계단도 없이 꼭대기에 조그만 창문 하나만 있는 높은 탑 안에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탑으로 올라갈 때면 밑에서 "라푼첼, 라푼첼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다오."라고 외친 후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타고 탑으로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속을 지나던 한 왕자가 라푼첼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탑 아래까지 왔다가, 마녀가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타고 탑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마녀가 돌아가자 왕자도 "라푼첼, 라푼첼.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다오."라고 외치자 라푼첼의 머리카락이 내려왔다. 왕자는 라푼첼의 황금 머리카락을 타고 탑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 라푼첼은 낯선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으나 두 사람은 금세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라푼첼은 왕자를 따라 탑에서 내려가기로 약속하고 왕자에게 탑에 올 때마다 자신이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 비단실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다리가 다 만들어지기도 전에 라푼첼은 마녀가 왕자보다 더 무겁다고 무심결에 말하는 바람에 왕자의 존재가 발각되고 말았다. 화가 난 마녀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그녀를 황량한 땅으로 쫓아버렸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마녀가 걸어놓은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탑 위로 올라온 왕자는 라푼첼 대신 마녀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다시는 라푼첼을 볼 수 없을 거라는 표독한 마녀의 말을 듣고 절망한 나머지 탑에서 뛰어내려 가시에 눈이 찔려 그만 장님이 되고 말았다. 왕자는 풀과 나무뿌리로 연명하며 라푼첼을 잃은 슬픔에 잠겨 황량한 벌판을 방황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간 곳에서 왕자의 아들과 딸 쌍둥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라푼첼을 만나게 되었다. 라푼첼과 왕자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았으며, 기쁨과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라푼첼의 눈물이 왕자의 두 눈에 떨어지자 왕자는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왕자는 기쁜 마음으로 라푼첼과 쌍둥이를 데리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

▲ <라푼첼> 속 모티프 알아보기

<라푼첼>은 1812년 야콥 그림에 의해 처음으로 그림 동화에 수록되었다. 처음에는 왕자가 일인칭 주인공으로 서술되어 있었으나, 야콥 그림은 이야기를 민담에 어울리는 구조로 개작했다. 특히 <라푼첼>의 특징적인 문구인 "라푼첼, 내가 올라갈 수 있도록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줘."의 서술문을 "라푼첼, 라푼첼.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다오."의 노래로 바꾸고, 이 민담의 발생 시기로 추정되는 10세기나 11세기에 어울리는 리듬을 수용해 구전 민담으로서의 특성을 강화시켰다.
또한, 독일어로 '상추'를 의미하는 '라푼첼(Rapunzel)'은 ‘상추를 먹으면 임신이 된다'는 민간의 속설을 연상시키는 소재로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설적이라는 초판본의 지적을 받아들여 <라푼첼>의 경우에도 어린이를 고려한 언어와 문체상의 통일을 기하기 위한 수정이 이루어졌다. 1812년 판본에서 라푼첼은 "왕자와 즐겁게 지내던 어느 날, 이상하게 자신의 옷이 껴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빌헬름 그림은 1819년 판본부터 전후 문맥상 아무런 논리적 설명 없이 라푼첼의 임신 사실을 드러내는 이런 직접적인 어구 대신 "왕자와 라푼첼이 아내와 남편처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표현으로 수정했다. 또 두 사람의 비밀도 라푼첼 스스로 "고텔 부인, 당신은 젊은 왕보다 더 끌어올리기가 어렵군요."라고 말함으로써 라푼첼의 순진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사건의 진행을 유도하는 문장으로 수정했다.

여성의 머리카락은 여성성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특히 금발과 관련된 이미지는 최고의 여성성으로서 그림 동화의 여자 주인공들을 인증하는 표시로 폭넓게 수용되었다. '라푼첼'의 머리카락은 그림 동화에 등장하는 모든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자 주인공들을 한데 묶는 황금색 끈이라고 할 수 있다.

외견상으로 라푼첼을 괴롭히는 사람은 마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이를 포기한 사람은 아버지이다. 오히려 어린 라푼첼을 아름답게 키운 인물은 마녀였다. 그림 동화의 많은 이야기에 마녀가 등장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 마녀가 주인공을 죽이거나 갈 길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주인공을 돕거나 목표를 향해 곧바로 나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곤 한다.

 

<이 기사는 뮤진트리와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그림형제 독일민담

이혜정

뮤진트리 2010.01.21


정다운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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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만점 사자가족, 표정연기 클로즈업
 

사자라고 하면 위엄있게 초원을 어슬렁거리거나, '으르렁'하고 입을 쩍 벌리며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는 모습부터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자는 의외로 애교 넘치는 동물이다. 고양이과 생물로서는 드물게 무리를 지어 살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장난치는 아기사자. 사진 이종렬. ⓒ글로연

초원의 강자인데다가, 무리 속에서 비교적 안전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긴장이 적은 탓일까, 가끔은 생각도 하지 못한 여유롭고도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백수의 왕이라기엔 지나치게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아빠사자. 사진 이종렬.ⓒ글로연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아기사자. 사진 이종렬 ⓒ글로연

사진을 촬영한 이종렬 씨는 이제까지 MBC·SBS에서 수십 편의 아프리카 관련 다큐멘터리를 기획 연출한 국내 최고의 아프리카 전문가. 아프리카와 초원을 사랑한 나머지 10년이 넘도록 아프리카 17개국을 돌아다니다 2005년에는 아예 가족을 이끌고 탄자니아로 이사를 해 버렸다.

사진가로서의 역량과 탄자니아의 야생을 널리 홍보한 점을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최근 세계에서 두 번째러 세렝게티를 비롯한 탄자니아 국립공원을 10년간 무상출입 촬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 십 년에 걸쳐 촬영한 사진을 모아 저서 '아프리카 야생중독'을 출간하기도 했다.

 

하품하는 모습마저 귀엽기만 한 아기사자. 사진 이종렬. ⓒ글로연

 

'얼짱각'을 선보이는 아빠사자의 모습. 사진 이종렬. ⓒ글로연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였으며, 기사에 사용된 사진은 (주)하니커뮤니케이션즈와의 협의를 거쳐 수록하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아프리카 야생중독

이종렬

글로연 2010.06.10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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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되찾아온 신윤복 화첩

서화와 자기는 조선의 자존심이다 – 우리문화 지킴이 간송 전형필 


혜원전신첩》 중 <월하정인>,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간송 전형필, 김영사)

혜원 신윤복.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조선의 풍속과 아름다움을 한 화폭에 다 담아낸 이 천재 화가는 몇 년 전 드라마 ‘바람의 화원’으로도 소개되어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혜원의 그림 대부분이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팔려나갔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재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전신첩(간송미술관 소장)에는 우리가 아는 <월하정인>, <단오풍정>과 같은 혜원의 대표작이 30점이나 들어있다. 그러나 이 귀중한 화첩은 일제 강점기를 틈타 일본인 골동품상의 손에 들어가 현해탄 너머로 팔려가고 말았다. 그것을 직접 일본까지 건너가 되찾아온 사람이 바로 우리에게 간송미술관 설립자로 익히 알려져 있는 간송 전형필 선생이다. 소설가 이충렬 씨가 재구성한 일대기 '간송 전형필(김영사)'의 한 부분을 통해 그 때의 일화를 살펴보자. 


일본에 팔려간 ‘바람의 화원’

1934년 겨울의 일이다. 당시 간송 전형필 선생은 아직 이십 대 후반의 젊은이였지만, 이미 우리 미술품 보존사업에 뜻을 두고 사재를 털어 우리 고서와 그림을 사 모으는 중이었다. 간송은 일본 학자가 쓴 ≪조선의 건축과 예술≫에서 흑백 도판으로 소개된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발견했다. 수장자를 찾아보니, 개인이 아니라 도미타 상회였다. 간송은 미술품 중개인 신보 기조에게 도미타 상회에 대해 물었다.

“10여 년 전 도미타 씨가 진남포에서 경성으로 이사 와, 남대문 옆 문파밀 호텔 안에 도자기와 고서화, 민예품을 판매하는 조선미술품 진열관을 개설했습니다. 그때 초대받아 갔는데, 혜원 풍속화첩을 전시하고 있어서 몇 점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이 30점 정도 되는 화첩인데, 도미타 씨가 매우 아끼는 물건이라 팔려고 전시한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1930년 도미타 씨가 세상을 떠나고, 유품은 오사카의 야마나카 상회에서 일괄로 구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야마나카 상회는 이전 간송과 거래가 있던 곳이었다. 간송은 수소문 끝에 화첩이 야마나카 상회 오사카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고 거래를 타진했다. 하지만 상대가 부르는 값이 너무 셌다. 자그마치 5만 원이었다. 당시라면 경성에 기와집을 쉰 채는 살 수 있는 돈이다. 지나친 가격에 간송은 거래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야마나카 상회와 가격을 흥정해보기로 하고 신보와 함께 현해탄을 건너 오사카로 갔다. 야마나카 상회에서도, 값이 제법 나가는 화첩이어선지 사장인 야마나카 사다지로가 교토 본점에서 오사카까지 왔다.


현해탄을 건너 혜원을 찾아오다

화첩을 앞에 두고 간송은 넋을 잃었다. <월하정인>, <쌍검대무>, <상춘야흥>….. 당시 사회의 앞뒷면을 그린 아름다운 풍속화가 가득했다. 보존 상태도 완벽해서 채색도 어제 그린 듯 생생했다. 한 시간 가까이 화첩에 빠져든 후에야, 간송은 중개인 신보를 통해 흥정을 시작했다.



《혜원전신첩》 중 <상춘야흥>,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간송 전형필, 김영사)

그러나 흥정은 쉽지 않았다. 야마나카는 1만원을 내린 4만 원에서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고, 신보는 2만 원 이상은 힘들다고 했다. 흥정에 전혀 진전이 없자, 간송은 인연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마나카 선생, 시간을 너무 오래 뺏은 것 같아 송구합니다. 가격 조정이 안 되어 섭섭하지만, 눈이 크게 호사를 했으니 이번 여행이 헛되지만은 않았습니다그려.”

마음을 비운 간송이 담담한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하는 참이었다.
야마나카가 입을 열었다.

“전 선생,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장삿속에서 하는 말이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야마나카는 당시 일본 최고의 골동품상이었다. 그가 마지막 흥정을 제안한 것이다.

“이 화첩을 이렇게 오래 들여다본 분은 전 선생이 처음입니다. 저희 상점에서 수장한 그림을 이토록 사랑해주시는 분을 만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저와 전 선생의 인연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사실 저는 작년 말 전 선생이 석조물 몇 점을 낙찰받으셨을 때, 신보 씨를 통해 젊은 조선 청년이라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때 누군지는 몰라도 기개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일본으로 보내겠다는 사람만 봤지, 되사가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전 선생이라고 해서, 직접 뵙고 싶어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겁니다. 저는 전 선생이 화첩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이 화첩은 전 선생에게 가는 게 옳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선생, 서로 만 원씩 양보해서 3만 원에 이 화첩을 수장하시면 안되겠는지요? 만약 만 원이 부담되신다면, 전 선생이 편한 날짜로 정해 주시는 어음을 받겠습니다. 6개월이나 1년 후라도 좋습니다. 제가 더 이상 가격을 조정해드리지 못하는 것은, 제가 판단한 가치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니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만 원이면, 그림 한 점에 천 원, 요즘 가치로 3억씩 총 90억 원이다. 노회한 골동품상과 재력 있는 젊은 수장가의 팽팽한 기싸움이었고, 야마나카는 이제 간송이 제시한 액수와의 차액인 만 원을 외상으로 주겠다는 카드를 던진 것이다. 돈이 넉넉지 않은 수집가에게는 좋은 카드겠지만, 간송은 외상도 어차피 줄 돈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2만 원을 고집하면 흥정이 깨질 것은 불문가지였다. 

“야마나카 선생이 이렇게 양보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선생께 원칙이 있듯이, 제게도 외상을 하면서까지 수집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저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지요. 2만 5천 원을 준비해왔습니다.”

야마나카는 생각에 잠겼다. 간송의 마지막 카드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차액은 기와집 다섯 채 값으로 좁혀졌지만,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리고 3만 원이면 일본 수장가들 중에서도 살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간송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 선생, 풍속화첩의 수장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하하하. 대신 앞으로 저희 상회를 자주 이용해 주셔야 합니다.”

재력과 열정이 있는 젊은 수장가를 고객으로 삼겠다는 골동품상의 계산, 이것이 야마나카가 간송에게 풍속화첩을 양보한 이유였다. 1934년 초겨울,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30점이 담긴 화첩은 이렇게 하여 간송 전형필의 수장품이 되어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왔고, 광복 후 조선시대 풍속화의 백미로 인정받아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이라는 이름으로 국보 135호로 지정되었다. 



《혜원전신첩》 중 <쌍검대무>,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간송 전형필, 김영사)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간송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신윤복의 작품들은 지금쯤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채 누군지 모를 일본 수집가의 창고 안에 잠자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면 소설, 드라마, 만화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바람의 화원’과 같은 소설과 드라마도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혜원의 작품은 이뿐이 아니다. 영화 ‘미인도’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혜원의 대표작 ‘미인도’ 역시 간송이 개인소장가에게서 인수하여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선조가 남긴 그림, 글씨, 책, 도자기가 조선의 자존심이라는 생각으로 미술품의 보전과 박물관 건립에 평생을 바친 간송 전형필. 그의 뜻을 이어받은 간송미술관에서는 지금도 우리 미술연구에 매진하고, 매해 5월과 10월 중에 일반을 대상으로 무료 전시회를 여는 등 한결 같이 문화지킴이의 길을 가고 있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여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간송 전형필

이충렬

김영사 2010.05.03


이진의 기자 (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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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에 대한 오해와 진실
초콜릿은 중독성이 있다! 없다?

초콜릿만큼 유혹적인 먹거리는 드물다. 그리고 초콜릿만큼 오해를 많이 받는 먹거리도 드물다. 슈퍼스타에게 가십과 루머가 따르는 것처럼 온갖 잘못된 소문에 휩싸여 있는 초콜릿. 그 진실을 파헤쳐 본다. 


오해 하나, 초콜릿은 중독성이 있다?
초콜릿은 중독성이 없다. 물론 차나 커피와 마찬가지로, 초콜릿에도 테오브로민이나 메틸크산틴(Methylxantin)과 같은 각성 효과를 지닌 물질이 들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초콜릿의 해당 물질 함유량은 무척 적기 때문에, 효과를 보려면 초콜릿을 엄청나게 많이 먹어야 한다. 설령 그만한 양의 초콜릿을 먹으려고 해도 얼마 먹기도 전에 물리고 말 것이다.
초콜릿의 큰 매력은 지방과 당분이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는 데 있다. 사람들은 그 맛을 즐기지만, 동시에 살이 찔 거라고 생각하고 초콜릿을 먹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수록 욕구는 더 커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초콜릿을 의식하고 갈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욕구는, 진짜 중독성이 있는 약물의 경우와 달라서 죄책감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대하면 금방 사라진다.

오해 둘, 초콜릿의 칼로리는 당분에서 나온다?
초콜릿의 칼로리는 대부분 지방에서 나온다. 50퍼센트 이상이 지방에서, 40퍼센트 정도만 당분에서 나온다.

오해 셋, 초콜릿은 영양가가 없다?
초콜릿에 당분과 지방, 칼로리가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은 대개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초콜릿에는 비타민 A, B₁, B₂를 비롯하여 철, 칼슘, 칼륨, 인이 들어 있다. 초콜릿 종류에 따라서는 이 영양소들이 사과 한 개나 요구르트 한 컵보다 더 많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우리가 통념상 초콜릿보다 더 몸에 좋으리라고 생각하는 식품들인데도 말이다.

오해 넷, 초콜릿은 이에 해롭다?

MIT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널리 퍼져 있는 선입견과는 반대로, 충치를 일으키는 물질에 섞어 동물 실험을 해본 결과 코코아 가루는 오히려 충치를 막아주는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오해 다섯, 초콜릿을 먹으면 여드름이 난다?
이것은 아마 초콜릿에 대해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오해일 것이다. 이 오해는 1960년 미국의 의학자 풀턴과 그 동료들의 실험을 통해 해소되었다. 그들은 수십명의 십대들에게 여러 주에 걸쳐 날마다 초콜릿을 물릴 때까지 먹였다. 그 청소년들 절반은 진짜 초콜릿을 먹었고, 나머지 절반은 맛과 모양은 똑같지만 초콜릿이 아닌 가짜 제품을 먹었다. 그 결과 초콜릿이 여드름에 미치는 효과는 제로였다.
물론 초콜릿의 어떤 성분이 다른 화학 물질과 작용하여 여드름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예외적인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초콜릿과 당분을 여드름의 주범으로 몰고 있지만, 이 둘은 범인이 아니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상식의 오류 사전 747

발터 크래머 | 박영구 옮김

경당 2007.03.30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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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l문화/예술] 박지성, 배후가 있다!!!

문화 2010.07.23 05:00 Posted by NewsInBook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56년 만에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표팀의 주장인 박지성 선수가 있었다. 박지성 선수의 장점을 말하자면, 남다른 돌파력과 골 결정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산소 탱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끝없는 체력이 첫번째로 꼽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박 선수도 어릴 적에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한다. 허약한 꼬맹이가 국가대표 산소 탱크가 되기까지는 본인의 피땀 어린 노력과 가족의 정성, 그리고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이야기 한 꼭지를, 박 선수의 아버지 박성종 씨가 들려준다. 


박지성 아버지가 밝히는 '산소탱크'의 비밀
지성이가 막 축구를 시작할 즈음, 나는 수원에서 우연히 고향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오랜만에 본 그의 아들은 몰라보게 커 있었다. 어린 시절 지성이보다 더 마르고 작았던 친구 아들이 어느새 훌쩍 키가 큰데다 체격도 아주 단단해 보였다. 

지성이는 태어날 때부터 유난히 몸이 약했다. 집에서 잘 놀다가도 갑자기 경기를 일으켜 수차례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아들에게 뭘 먹였기에 저렇게 키가 크고 야무진 체격을 갖게 된 것인지 너무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 비밀은 '개구리'에 있었다. 시골에서 살 때 친구는 몸이 약한 아들에게 종종 개구리를 잡아서 끓여 먹이곤 했다. 몇 년 동안 빠트리지 않고 개구리를 해 먹이는 걸 옆에서 지켜봤고, 지성이에게도 먹여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나는 '에이 어떻게?'하며 생각조차 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 아들을 본 순간, 지성이의 허약한 체질이 떠올랐고 운동을 시키려면 몸을 키우는 게 급선무란 사실을 절감했다. 게다가 당시 어느 잡지에서 씨름 선수들이 체중을 불리려고 개구리를 먹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개구리가 특효약이라는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결국 그 일 이후 나와 개구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개구리를 잡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주위에서 개구리가 많이 있는 곳을 알려주긴 했지만 막상 찾아갔을 땐 개구리 울음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하루는 고 정주영 회장이 만들어 놓은 천수만 간척지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가득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친구 10명과 함께 천수만으로 향했는데 손에 잡힌 건 고작 6마리뿐이었다.
급기야 지성이 할머니마저 개구리 잡기에 동참하셨다. 시골로 가야 개구리가 많다고 믿으신 어머니는 나와 함께 고향인 전남 고흥으로 향했다. 친척분한테 들은 얘기로는 논 옆의 수로에 중간중간 흙들이 쌓여 있는 곳을 들여다보면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들이 수십 마리씩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친척 아저씨의 정확한 정보 덕분에 우린 1백여 마리가 넘는 개구리들을 '생포'할 수 있었다. 깊은 잠에 취한 개구리들은 우리가 준비해 간 쌀 포대 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묵직한 쌀 포대를 들고 다시 수원행 기차에 오른 어머니와 나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몰려왔고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 후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났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번쩍 눈을 뜨게 되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객실 안이 난장판이었다. 여기저기 개구리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녔고, 사람들은 개구리를 보고 소리 지르며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듯한 표정이었다.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던 개구리들은 객차 안의 뜨거운 히터 바람에 무거운 눈꺼풀을 뜨게 되었고, 급기야는 덥고 답답한 쌀 포대에서 탈출하여 객차 안을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개굴개굴' '엄마얏!' '꺄악!' '에구머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너무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무슨 일부터 먼저 해야 좋을지 암담하기만 했다. 일단 개구리들을 잡아야 수습이 될 것 같았다. 좌석 밑, 창틀, 통로 등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객실 안을 마구 뛰어다니는 개구리들을 생포하기 위해 나도 개구리와 같이 뛰어다녔다.
때마침 그 객실을 지나가려던 역무원이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결국엔 나와 같이 개구리 잡기에 동참했다.
어머니는 역무원은 안중에도 없는 듯 손자의 '보약거리'들이 도망다니는 걸 보고 냅다 소리를 지르시며 "그거 손대지 말아욧! 우리 꺼란 말여!"하고 행여 다른 사람들이 개구리를 잡아갈까 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셨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며 모든 개구리들을 잡아서 자루에 집어넣자 객실은 비로소 이전의 평온함을 되찾게 되었다. 그런데 역무원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동물은 객실 내로 반입할 수 없다며 당장 개구리를 가지고 내리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다음 역에서 우린 내려야 했고,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이번엔 객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찬바람이 밀려드는 객실 밖에서 우리의 소중한 개구리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야 했다.
만약 그때 객차 안에 있던 승객들 중에서 누군가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당시 개구리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던 할머니와 아저씨가 박지성 할머니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슬며시 미소를 지을 것만 같다.
개구리는 잡기도 힘들었지만 그걸 먹기란 정말 고역이었다. 온 집 안이 개구리를 삶을 때마다 무언가 썩는 듯한 냄새로 진동했다. 그래도 지성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그 고약한 냄새를 꾹 참으며 개구리 즙을 먹곤 했는데 먹을 때마다 매번 투정부리기 일쑤였다. 아무리 키가 크고 체력이 좋아진다고 해도 개구리 즙에서 나는 냄새를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집 근처의 건강원에서 잡은 개구리들을 깨끗하게 가공해 냄새나지 않게 즙을 만들어주는 방법을 이용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먹인 개구리 즙은 지성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이어지다가 그 후론 더 이상 먹이지 않았다. 2000년 이후 개구리를 잡지 못하게 하는 법이 생겼기 때문이다.(편집자 주-현재 개구리 등 양서류를 포함한 야생동물을 허가 없이 포획했을 때에는 '야생동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됩니다.)
 

                                     똘망똘망한 눈빛을 빛내는 경기도 수원 세류초등학교 6학년 박지성 선수.
                     축구선수로서는 왜소한 체격이었던 박지성은 대학때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이 어린이는 9년 후 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이 되고  
                                        꿈의 구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산소탱크'란 이름으로 불리우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랑이 된다.
 

우여곡절, 파란만장한 개구리 잡기 스토리지만 그때의 고생 덕분에 지성이의 체격이 이전과는 몰라볼 정도로 단단하고 커졌다고 믿는다. 왔는지 궁금히 여기곤 하는데, 나는 90% 이상이 타인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개구리 덕분이었다고 확신하다.
만약 아이의 허약한 체력을 수수방관했다면, 축구 선수로 성장하길 바라지 않았다면, 지성이는 지금 지극히 평범한 사회인으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지성이가 운동이 아닌 공부를 택했다면 그 당시 난리법석을 피우며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운동을 하는 데 체력은 절대적이다. 지금은 개구리 즙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보약도 많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체력을 키울 수 있는 시대지만 지성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개구리 즙은 아이한테 최고의 보약이었다.
그 당시 가진 것은 없고, 지성이가 좋아하는 운동은 시켜야겠고,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부딪히는 일뿐이었다. 지금은 개구리보다 훨씬 좋은 보약을 쉽게 구해서 먹는 시대이기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던 당시의 간절함은 조금 덜 할지도 모른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게 몇 가지 있다면 그중 하나가 부모의 관심과 정성이 아닐까. 아이에게 쏟는 관심과 사랑만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성이가 속이 뒤틀릴 정도로 냄새가 고약한 개구리 즙을 먹으면서도 거부하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개구리를 잡아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보약은 개구리 즙뿐이었다.

"(키가 작아서) 중학교에 못 가면 어쩌나 걱정이다. 이 일을 풀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밥을 많이 먹는 것밖에 없다. 엄마가 주신 것은 꼭 골고루 먹어, 덩치가 커지고 키도 커져서 축구를 더욱더 잘할 것이다.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 대학교, 국가 대표까지 갈 것이다."(1992년12월 15일, 박지성의 초등학교 5학년 일기 중에서)

올드 트래포드에서 지성이가 '산소 탱크'란 별명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개구리 사건이 떠올라 입가에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지금은 개구리 즙보다 훨씬 비싼 보약을 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개구리 즙에 담긴 우리 부부의 정성은 어떤 비싼 보약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이 기사는 (주)서울문화사와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가슴으로 꾼 꿈이 행복한 미래를 만든다

박성종

서울문화사 2010.06.07

정다운 기자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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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한 편의점의 내부 풍경>
 

최근 2~3년간, 편의점에서 도시락의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2010년 1월~ 3월, 약 3달간 도시락 매출은 작년 대비 293.7% 증가했다. 주로 2~30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아침 식사 대용으로 편의점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편의점 수는 현재 전국적으로 약 1만 4천 점포 이상으로, 이는 10년 전의 5배 이상이고, 매출액은 7배 이상 늘었다. 그리고 2009년의 편의점 판매 물품을 보면 삼각김밥, 도시락, 샌드위치 등의 후레쉬 푸드 상품이 5.5%를 차지하고 있고, 가공식품과 합하면 그 총 판매액은 35.5%에 달한다. (사단법인 한국 편의점협회 2010 편의점 운영 동향)
 
즉, 편의점에서 팔리는 상품의 1/3이 ‘첨가물’을 포함한 도시락 등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그 덕분에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를 통해 많은 첨가물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도시락 대용으로 많이 먹게 되는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아마 전날 밤에 산 삼각김밥을 식탁에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먹은 적이 있을지 모른다. 직접 만든 주먹밥이었다면 딱딱해졌을 게 분명한데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은 아무렇지도 않다. 아침에 나갈 때 두고 저녁에 돌아와서 먹어도 변화가 없다. 
또, 곰곰이 생각해보자. 문 달린 냉장고가 아닌 오픈되어 있는 선반에 놓고 팔아도 괜찮은 것일까? 라벨에는 분명히 보존온도 10도 이하라고 적혀 있다. 냉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오픈 쇼케이스에서 10도 이하로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일까? 게다가 유통기한은 하루 반나절 전후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주일정도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 3일쯤 방치해두면 형태만 무너져 내린다.
 
이상한 일이다. 냉장고에 넣지 않았는데도 음식이 상하지 않을 수 있다니. 일반적으로 냉장고에 넣지 않은 음식이 그리 오래갈 수는 없다. 요컨대 모든 것이 첨가물의 작용 덕분이다.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삼각김밥, 샌드위치, 도시락의 원 재료및 함량표> 


샌드위치는 총 80~100종류의 첨가물이 들어있다. 빵에는 반죽을 부풀리는 이스트푸드나 유화제 등 10~20 종류가 들어있으며, 햄에는 증량제, 결착제, 착색제 등 20~30종류가 들어 있다. 계란에는 착색료, 조미료, 장기간 보존을 위한 pH조정제 등 20~30종류가 들어 있으며, 참치 샐러드에는 조미료, 유화제, pH조정제 등 10~20종류가 들어 있다. 중복되는 것도 있지만, 각각의 재료를 합하면 80~100종류에 달한다. 물론 삼각김밥에도 첨가물이 20~30종류는 들어 있다. 속에 들어가는 음식에도 10~15종류는 들어 있으며, 흰 쌀밥에도 10~15종류는 있다.

 
그러나 원재료 및 함량에는 빵이나 햄, 쌀밥에 들어간 첨가물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다. 표시규정에 ‘혼합제제에 포함된 식품첨가물이 최종 제품에서 효과를 발휘하지 아니하거나 식품의 가공과정 중 첨가되어 최종제품에서 제거되는 식품첨가물의 경우에는 그 명칭을 표시하지 아니할 수 있다’ 라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업체용 식품에 많은 첨가물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우리 소비자들은 정보를 얻을 길이 없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평소 먹을 때는 몰랐다.”, “광고에서는 신선하게 만들어 파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즉석식품

아베 쓰카사 | 황미숙 옮김

국일미디어 2010.03.25

조애리 기자 (joaei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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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선악과, 정말 사과였을까?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그 정체는 종려수

아무리 종교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생명나무 이야기는 안다. 서구의 수많은 문학과 미술 작품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서에 따르면, 에덴 동산 한가운데에는 선악나무와 생명나무가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명했지만, 인간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그 열매를 먹고 만다. 이에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인간은 이제 생명나무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창세기 2:4-3:24)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아담과 이브.

선악과는 사과였을까?
유럽의 기독교 회화 전통에서는 대개 선악과를 사과나무로 그려왔다. 라틴어로 사과가 선악의 악과 같은 단어(malus)였기 때문에 그런 연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라틴 이전, 구약 성서의 시대에는 어땠을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과를 먹었을까?

성경 속에는 히브리어로 타푸아흐(아가 2:5, 요엘 1:12 외)라는 과일이 등장한다. 유럽 사람들은 이 단어를 전통적으로 사과라고 번역해 왔다. 하지만 어떤 연구자들은 성서 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사과가 재배되고 있었을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 이들은 이 단어를 살구나 귤 종류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미 기원전 13세기의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열매 달린 사과나무가 울창한 과수원이 그러져 있다. 사과가 기원전 4000년경 터키 지방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로 전해졌다고 하는 식물학자도 있다. 지금도 시나이 반도 내륙부에는 포도, 석류, 무화과 등과 함께 사과를 재배하는 곳이 있다. 선악과가 사과였다는 문헌상의 증거는 없지만,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창세기를 묘사하면서 사과 모양의 선악과를 상상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는 셈이다.


생명나무는 종려나무였을까?
이번에는 생명나무 쪽을 보자. 열매를 먹는 것 만으로 영생을 누리게 해준다는 나무, 생명나무를 이야기할 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나무를 연상했을까?
삼림이 거의 없었던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솟아오른 초록의 레바논 삼나무, 자양분이 풍부한 열매를 맺는 올리브나무, 삶의 기쁨을 상징하는 포도나무 등은 생명력의 상징이었음에 틀림없다.(호세아 14:6-8 참고) 이스라엘인들 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들인도 무화과나 포도, 석류 등을 생명의 신이 살고 있는 성스러운 나무로 그렸다. 한편,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에서는 예부터 종려나무가 생명력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나무였다. 똑바로 솟아 양옆으로 커다란 잎사귀를 펼친 종려나무는 그 모습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송이 모양의 열매가 익으면 참으로 달고 영양이 풍부한 과일이 된다. 구약성서에서도 종려나무는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유되기도 하고(아가7:8), 그 열매는 중요한 영양분 공급원으로 여겨졌다.(사무엘하 6:19 참고)

 
종려나무(windmill palm tree)

고대 서아시아 사람들은 이러한 종려나무를 도상으로 즐겨 사용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한복판에 종려나무를, 그 양옆에 동물이나 사람, 신령스러운 동물을 배치한 형태를 일반적으로 '생명나무 도상'이라 한다. 메소포타미아가 기원인 이 무늬는 기원전 2000년대 중엽부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도 전해졌다.

팔레스타인의 유적에서는 이스라엘 이전 시대 층에서 '생명나무'를 새겨 넣은 문양 토기나 인장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스라엘 시대에도 예루살렘 신전 본전의 벽이나 기둥에 종려나무가 조각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열왕기상 6:29 이하) 메소포타미아의 신전이나 궁전이 그랬던 것처럼 예루살렘 신전에도 종려나무가 실제로 심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시편 92:13-14)

또한 사마리아의 궁전 터에서 출토된 상아의 부조에는 신령스러운 동물(케루빔)이 지키고 있는 모습을 한 종려나무를 볼 수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종려나무 서식지
'생명나무 도상'은 단순한 장식 그림이 아니다. 신령스러운 동물이 나무를 지키고, 나무에서 흘러내리는 과즙을 동물들이 받아먹는 형태의 종려나무 그림에는 분명한 종교적•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양쪽에 배치된 동물들은 이 나무에서 생명력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종려나무는 생명을 기르는 성스러운 힘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배경에 비추어보면, 에덴동산에 심어져 있었다는 생명나무는 원래 종려나무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토기에 그려진 생명나무(므깃도, 후기 청동기 시대)(좌측)
생명나무 인장 문양(텔제롤, 철기시대)(우측)

덧붙여 말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초로 정복했다는 여리고는 다른 이름으로 '종려나무가 무성한 마을'이었다.(신명기 34:3) 예부터 종려나무의 재배가 활발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꿀'은 종려나무 열매에서 받아낸 당밀을 가리킨다고 여겨진다.

신화는 문화를 반영하고, 문화는 지역의 자연 환경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신화가 처음 전래될 때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수 천 년이 흐른 지금 종교나 신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눈으로 보는 성서의 시대

츠키모토 아키오 | 양현혜 옮김

홍성사 2010.06.30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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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여행갈 땐 시계를 두 개 챙겨라? 

태양과 함께 하는 문화, 에티오피안 타임

<105일의 아프리카> 저자인 황윤하 씨는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다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체크아웃이 3시라고 해서 마음 놓고 늦잠을 자고 있는데 호텔 직원이 문을 쾅쾅 두드린다.
“체크아웃 타임이 지났어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직 10시인데요?”
“에티오피안 타임이 있고 유러피안 타임이 있죠. 3시가 지났다고요. 하루 더 묵을 거에요?”

이야기인즉슨, 에티오피아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GMT 기준의 시간이 아니라 그들 고유의 에티오피안 타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기준으로는 자정이 0시, 하루의 시작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해 뜨는 시각인 새벽 6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보고 0시로 친다. 즉 윤하 씨의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들의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다는 뜻이다. 체크아웃 타임이 3시라는 말은 사실 우리 기준으로는 9시라는 거였다. 이후로 윤하 씨는 어딜 가서 시간을 물어볼 때 항상 한 마디 덧붙이는 버릇이 생겼다. “에티오피안 타임이에요, 유러피안 타임이에요?”

다른 것은 또 있다. 에티오피아의 버스에는 시간표가 없다. 버스가 몇 시에 출발하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버스가 정해진 시간에 떠난다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의 버스는 대부분 만차가 되면 아무 때나 출발하고, 버스가 간 다음에는 또 다른 차가 기다린다. 버스에 올라탄 뒤에도 출발할 때까지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흔하다.

아디스 아바바에서 아와사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 일이다. 버스에 탄 현지인들에게 아와사까지 얼마냐 걸리느냐고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는데, 어디선가 2시간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맞아 맞아, 2시간. 그 정도 걸렸던 것 같아.”
그 한 마디에 사람들은 모두 2시간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버스는 6시간을 내내 달리고 나서야 아와사에 도착했다. 윤하 씨에게 시간을 알려 준 사람들은 모두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옛날에는 우리도 24시간 1,440분을 따지며 살지 않았다. 12간지를 따라 하루를 열둘로 크게 나누고, 해의 움직임을 보고 대강의 시간만 어림했다. 해가 없는 술시부터 인시까지의 아홉 시간가량은 더 크게 다섯 경으로 나누어 헤아렸다. 그 시절에도 각이니 점이니 하는 보다 세분화된 시간 단위가 있었지만, 실생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해방 후 한동안 시간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는다는 의미로 코리안 타임이란 말이 유행했던 것도 외국인들과 시간 감각이 달랐던 탓이다.
이제는 코리안 타임이란 단어도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는 누구보다도 분초를 다투며 살고 있다. 서울 도심에는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버스가 오지만, 우리는 그 짧은 시간도 기다리기 초조해서 핸드폰으로 버스도착시간을 검색한다.
시간을 알고 싶을 때 시계 대신 해가 뜬 하늘을 바라보고,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조바심내는 대신 옆 사람과 느긋하게 대화와 웃음을 나누는 에티오피아 사람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잃어버린 우리 옛 모습을 본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출처로 하여 뉴스인북 편집단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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