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지구라는 학교의 학생이다
반듯하지 않은 인생, 만만치 않은 삶 속에서 찾아낸 웃음, 눈물, 감사


인간이란 경험을 통해 배우기 위해 지구라는 학교에 태어난 학생들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넉넉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태어나야만 행복하다는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일 뿐이다. 병으로 인한 고통, 가족과의 이별,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고통, 미움, 외로움과 서러움은 우리 인간에게 배움을 주기 위한 ‘교재’인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러한 배움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인생이 소중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괴롭고 힘들더라도 ‘지구’라는 학교 학생으로 태어난 것도 감사한 일일 것이다.

반듯하지 않은 인생, 만만치 않은 그 삶 속에서 우리 이웃이 찾아낸 ‘웃음’과 ‘눈물’ 그리고 ‘감사’라는 보석을 아래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다 보면 당신 또한 행복한 사람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웃음과 울음사이
박미선

그것은 진심(眞心)은 아니었다. 참 엉뚱한 말이기도 했다.
“오늘 가서 영영 돌아오지 마세요!”
아빠의 출근길에 엄마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음 다섯 살 꼬마아이가 건넨 배웅인사! 악동기질로 어른들을 웃게 하려 건넨 말이 너무 짓궂었던 걸까? 아빠가 멀어질 즈음 엄마가 내 머리를 심하게 내리쳤다.
“너 그것이 무슨 소리인 줄이나 알고 하는 거냐?”
너무 놀라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의 눈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져 있다. 엄마는 내가 아빠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저주의 말을 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엄마의 눈물을 보고 깜짝 놀란 난 그날 하루 종일 아빠가 무사히 되돌아오기를 빌었다. 그리고 그날 아빠가 돌아와 주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을까?

그 후 20년이 흐른 뒤 아버지는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몸져누우셨다. 아버지가 투병하시자 그동안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숨기고 싶었던 비밀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업실패로 재산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고 그 스트레스로 아버지는 병을 얻어 ‘죽음’을 마주하고 계셨다. 살고 있던 집 물건들에 분홍색 차압딱지가 붙으면서 어머니는 이 모든 상황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날이 정신 줄을 잃어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머니는 간신히 비틀거리며 침대로 걸어가시던 아버지의 등짝을 사정없이 때리면서 “어떻게 살라고, 다 정리해놓고 가라고!”라며 한참을 울면서 절규하셨다.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말기 암 환자로 가족도 못 알아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 보호받아야 할 분이신데 비겁하게 폭력(?)을 행사하다니!
그래도 난 어머니를 말릴 수가 없었다. 단 한 번의 등짝 폭력 사태는 이생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고받아야 할 무엇인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 뒤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는 아버지를 정성껏 간호하셨다. 난 이때를 회상하면 웃음과 애잔한 슬픔이 함께 밀려온다.
아버지는 말기 암 판정 3개월 후 한겨울에 돌아가셨다. 그 후 아버지에게 건축 자금을 빌려주었다 받지 못한 분이 남은 가족들에게 하소연을 하기 위해 찾아와 장남에게 책임을 묻겠다면서 장남 나오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셨다. 어머니는 장남인 오빠를 보호하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분이 집안 물건에 덕지덕지 붙은 차압딱지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되돌아가자 오빠가 휴지통에 무언가를 가지고 나오면서 한바탕 너스레를 떤다.
“아…. 방에 숨어 있는데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 거야. 그런데 마침 보니 휴지통이 있는 거야, 얼마나 다행이야? 허허.”
너무나 명랑하게 말을 해서인지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그냥 한참을 웃었다. 그 상황에서 ‘웃음’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멋쩍고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을까? 방으로 돌아가서는 각자가 눈물을 훔쳤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뒤 나는 14개월 아들 녀석의 ‘똥 덩어리’를 치울 때면 이때가 생각나 웃음과 울음이 함께 몰려온다.

아버지의 빚을 잔뜩 떠안게 된 어머니는 30년 전에 출가했던 친정으로 30년을 함께 했던 집안 가재도구들과 함께 귀환했다. 어머니 자식이었던 나도 함께 딸려서 말이다. 엄마는 생각보다는 씩씩해 보이셨다. 하지만 겨울에 한여름 옷을 입고 태연스럽게 외출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정신 줄을 놓으실까봐 걱정이 되어 외출 길에 함께 동행하곤 했다.

때마침 꽃집 앞을 지나는데 봄을 알리는 꽃들을 분양하고 있었다. 천원이면 살 수 있는 흔하디흔한 꽃 화분 앞에 어머니는 쭈그려 앉으셨다. 꽃을 바라보며 한참을 울던 어머니는 마침내 미소를 지으시며 꽃이 참 곱다고 하셨다. 꽃을 보는 안목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였지만 그날 본 그 꽃은 어머니 말대로 너무나 고와 보였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꽃 화분 3개를 사들고 외가댁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곱디고운 꽃 화분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렇게 따뜻한 새봄을 맞이하셨다. 난 이 사건을 ‘꽃 화분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난 ‘인생은 해피엔딩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삶이 이렇게 헝클어진 채로 마무리 되는 것이라면 아버지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며 참 많이도 우울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니었더라면 우리 가족이 ‘똥 덩어리’와 ‘흔한 꽃 한 송이’의 가치를 알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가 살아 놓고 가신 삶을 마주하며 우리 가족들은 참 많이도 달라졌다. 깊은 미소를 갖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참 장하신 일을 하신 것이 아닌가.
넓게 바라보면 인생은 해피엔딩으로 향해 가고 있지 않은가. 세대를 넘어가는 지난하고도 더딘 과정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비로소 부모란 온몸으로 자신을 희생한다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 뒤 난 아버지에 대한 애잔함이 깊이 올라와 크게 울었다. 한바탕 큰 통곡 뒤 난 아버지를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나에겐 참 많은 ‘울음’과 ‘웃음’이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삶에서 큰 울음이 있었던 때는 큰 웃음도 함께 왔던 것 같다. 어쩌면 울음과 웃음 본디 하나가 아니었을까?

내가 살아가는 힘은 울음과 웃음이 어우러진 그 순간에 있는 줄도 모르겠다. 은은한 미소와 함께 눈가에 잔잔한 눈물이 살짝 맺혀 있을 때가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난, 웃음 속에서 울음을, 울음 속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그리고 사람에게 이 웃음과 울음의 묘한 조화가 있음이 그냥 무작정 고마워진다.


지은이 박미선(1977년생, 고등학교 교사)
왜 사람들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미워하는지 궁금했다. 자신도 말이나 행동으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그러면서 ‘삶은 뭘까? 죽으면 어디로 갈까? 올바로 사는 길이 뭘까?’를 고민하며 거기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관련 서적을 많이 보았다. 그러다가 명상에 관한 책을 접하고 그 편안함과 시원함 때문에 명상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자신의 어그러진 성격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란 걸 명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앞으로 깊이 숨 쉬고, 시원하게 숨 쉬면서 참 재밌고 좌충우돌인 세상, 울고 웃으며 넉넉하게 지내고 싶다.



<이 기사는 도서출판 수선재와 협의를 거쳐 아래 책에서 발췌 작성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박은기

수선재 2009.07.14


정다운 기자 (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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