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지금 응웬옥뜨 열풍… 끝없는 벌판
2006년 베트남 작가협회 최고작품상 수상자. 감동의 성장소설 끝없는 벌판


놈들은 여자를 잡아채서 던지고, 흩뿌려진 쌀겨더미 위에 사정없이 처박았다. (…)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에 계속해서 발길질을 해댔다. 논바닥까지 다 타버린 흉작의 계절을 어떻게든 잊기 위하여, 곤궁기의 배고픔을 그렇게라도 잊기 위하여 놈들은 여자를 만만한 시빗거리 삼아 화풀이를 해대고 있었다. 무슨 새로운 건수가 생기지 않는 한 놈들은 눈앞의 재밋거리를 오래도록 즐길 것이었다. 놈들은 여자의 머리칼을 잡아채어 마른 풀을 한 움큼씩 베어내듯이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잘라냈다. 머리칼 끄트머리가 완전히 잘리면서 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떄, 여자는 틈을 놓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우리 거룻배로 뛰어들었다-



주인공과 남동생 디엔, 그리고 아버지는 거룻배를 집 삼아 베트남의 메콩 강 유역을 유랑하는 오리치기 가족이다. 우연히 지나치던 어느 촌락에서, 그들은 마을 남자들에게 린치를 당하던 여자를 도와주게 된다. 인적이라곤 없는 허허벌판에서, 여자는 오리를 치는 주인공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나는 무슨 일로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지 물었다.
“몸을 팔았어.” (…)
-남의 피와 땀, 눈물을 먹고 사는데 그렇게 두들겨 맞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니?
여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이 그런 대가를 치르는 게 마땅한 업보라 여기는 듯했다. “그런데 정말 운 좋게도, 그런 일 덕분에 너희들을 만나게 됐잖니. 이렇게 너희들과 함께 지내게 된 게 난 얼마나 기쁜지 몰라…” (…)
하지만 디엔과 나는 여자가 결국에는 지쳐서 이곳을 떠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자가 우리 곁에 머무는 시간은 언제나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유랑 생활에 지친 디엔과 주인공은 여자에게 마음을 온전히 열 수 없다. 두 사람에겐 어머니가 떠나버린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어렸을 때, 가난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옷감 장수가 가져온 붉은 옷감을 걸쳐보다 그 색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렇게 이상한 빨간 색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마당의 목부용(木芙蓉) 꽃보다도 붉고 핏빛보다도 더 빨간 빛깔이었다. 엄마는 우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뭐가 어때서 너희들은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그래?” 내가 말했다. “엄마가 너무 낯설어 보여요. 알아볼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엄마는 뛸 듯이 기뻐했다. “정말로?” 나는 너무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와 자식이 서로 낯설다는데, 어떻게 저리도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결국 옷감 장수와 정을 통하고, 디엔과 주인공 남매는 쌀 바구니 뒤에서 그 광경을 모조리 목격한다. 아이들에게 부정을 들킨 것을 깨달은 어머니는 옷감 장수를 따라 마을에서 도망친다. 아버지는 집을 불태워 버리고 좌절에 빠져 남매와 함께 유랑을 떠난다.
하지만 상처로 마음이 황폐해진 아버지는 남매를 냉랭하게 대할 뿐 아니라, 유랑하다 들르는 곳 마다 여자를 꼬셔내어 가정을 버리게 했다가는 바로 내치는 행동을 반복한다. 남매의 삶은 점점 외롭고 처절해져 간다.


아버지는 우리를 만성적인 결핍의 나락으로 계속 떠밀어 넣었다. 머물던 장소에서 떠날 때면, 우리가 지금 이주를 하는 것인지 도망을 가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인간사의 기본적인 권리를 모두 잃어버렸다. 배웅도 없었고 흔드는 손길에 마음이 일렁일 기회도 없었으며 뜰에서 갓 뜯어낸 채소 한 묶음, 바나나 한 다발 같은 농촌의 소박한 선물도 받지 못했다. “안녕히, 잘 가세요. 건강하시구요…” 그 정도의 살가운 당부의 말도 듣지 못했다. (…)
디엔이 웃음을 지었다. ‘어라, 우리 둘은 인-간-의-말-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나 봐.’ 디엔 녀석은 전혀 입술을 움직이지 않았지만, 나는 디엔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 상처 가득한 작은 가슴을 미친 바람이 채찍이 되어 후려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토록 외로움과 상실감, 가난만이 가득한 남매의 삶 속으로, 마찬가지로 상처받고 외로운 처지의 여자가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남매에게 애정을 보이고, 아버지에게 연심을 표시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고, 설상가상으로 조류독감이 유행하자 가족의 삶은 더욱 곤란에 처하는데…


소설 <끝없는 벌판>은 베트남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응웬옥뜨의 대표작이다. 출간 이틀 만에 초판 5천부가 모두 매진된 화제작이면서, 미풍양속에 반한다는 이유로 작가가 사상교육위원회에 소환되는 해프닝을 만든 문제작이기도 하다. 베트남 작가협회는 이 책에 2006년 최고의 작품상을 수여했다.

책을 펴고 몇 페이지 넘기다 보면 어째서 베트남 사회가 이 작품에 그토록 열광했는지 금세 이해가 간다. 작품 전체가 베트남 농민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고, 품으로 파고드는 듯 절절한 감정 묘사, 이야기를 감싸고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문장은 독자를 정신없이 몰입시킨다.
캐릭터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 디엔, 아버지, 여자의 네 인물들은 모두 상처받아 일그러져 있지만, 그 사연에 얽매이지 않고 국면마다 놀랍도록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물들의 다양한 면모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 그리고 기저에 깔린 절절한 연민이다.

때로 가난하다는 것과 외롭다는 것은 같은 말이다. 슬프다는 것과 남을 슬프게 만든다는 것이 같은 말이 될 때도 있다. 많은 이들이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응웬옥뜨는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저자의 바람 그대로 우리들의 가슴을 촉촉한 물방울로 적신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끝없는 벌판

응웬옥뜨 | 하재홍 옮김

아시아 2007.09.30


정다운 기자
(dawnin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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